[한국사] 서기 1~3세기 요동/한반도 정세의 재구성
감방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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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가 낙랑 멸망케함(서기 37)
2. 낙랑인 5천여 명 신라 망명(서기 37)
3. 화려/불내현이 신라 침입했으나 맥국이 막아섬(서기 40)
5. 백제가 마한을 병합
6. 백제사에서 낙랑 증발
7. 신라사에서 낙랑이 사라지고 낙랑을 대신해 백제 등장
8. 낙랑이 한나라 땅이 됨(서기 44)
9. 삼국사 고구려본기에는 한나라가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차지하여 살수이남이 한나라 땅이 되었다고 돼 있으나 후한서에는 이러한 군사행동을 한 기록이 없고 다만 한국의 염사 사람 소마시가 한나라 낙랑군에 찾아와 조공을 바치자 한 광무제가 한염사읍군에 봉하고 낙랑군에 예속시키고 사철마다 입조케 했다ㅡ하는 기록이 있음(서기 44)
10. 당시 한나라는 후한서, 무경십요, 삼국지 위서 등으로 볼 때에 왕망 이후 북경 동쪽은 오환 등의 이민족에게 수비를 맞겨두고 방치가 돼 도로가 끊길 정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곧 모용씨가 세를 잡고 난하 동쪽은 모용씨 천하가 되어갔다
11. 고구려 모본왕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서기 49)
12. 고구려 태조대왕 요서에 10 개 성 축성(서기 55)
13. 고구려 태조대왕 동옥저 정벌, 국경 개척, 동으로 창해, 남으로 살수(서기 56)
14. 고구려 태조대왕 한나라 요동의 6개 현 약탈(서기 105)
15. 고구려 태조대왕 예맥과 함께 한나라 현도군 습격, 화려성 공격(서기 118)
14. 고구려 태조대왕 121~122 한나라와 고구려 전쟁(서기 121~122)
ㅡ 한나라 참가군 유주자사, 요동태수, 현도태수, 부여 위구태
ㅡ 고구려 참가군 고구려군, 예맥, 마한, 선비족
15. 고구려 태조대왕 한나라 요동군 서쪽 안평현/서안평현 침입하여 대방태수를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노략질(서기 146)
16. 고구려 신대왕 재상 명림답부의 좌원대첩, 침략한 한나라군 수천 명 척살(서기 172)
17. 고구려 고국천왕 왕자 계수의 좌원대첩, 침략한 한나라군 수천 명 척살(서기 184)
18. 동한 멸망기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한나라 사람들 고구려 망명(서기 197~217)
19. 고구려 동천왕 요동군 서안평 습격하여 깨뜨림(서기 242)
20. 원위 명제가 비밀리에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한국에 파견하여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읍차에게는 읍장의 표식을 주어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함 (서기 240 전후)
21. 이렇게 진한 8국을 분할해 낙랑에 예속시키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소위 기리영 전투 발생하여 한국을 멸망시킴(서기 240 전후)
22. 고구려 동천왕 신라 북쪽(마두책) 침입(서기 245)
23. 원위 관구검의 침입, 낙랑태수 유무, 삭방 (대방) 태수 왕준도 같이 현도군에서 나와 고구려 침입(서기 246)
24. 백제 고이왕 이틈을 타서 진충을 시켜 낙랑군 변경 습격하여 백성 약탈(서기 246/백제사에 낙랑이라는 이름 240여 년만에 다시 등장한 시점)
25. 고구려 동천왕, 신라가 사신을 보내오매 서로 화친함(서기 248)
26. 백제 책계왕,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함에 대방이 구원을 요청하여 응하였으나 고구려가 원망하여 침입할 것이 두려워 아차성과 사성 보축 후 침략 대비
27. 한나라가 맥인과 함께 백제를 침입하여 책계왕 살해(서기 298)
28. 고구려 미천왕, 현도군 침입하여 백성 8천여 명 약탈(서기 302)
29. 백제 분서왕, 낙랑군의 서현/서쪽 현을 침략해 빼앗았으나 이후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숨짐(서기 304)
30. 고구려 미천왕, 서안평 습격하여 빼앗음(서기 311)
31. 고구러 미천왕, 낙랑군 습격하여 백성 2천여 명 약탈(서기 313)
32. 고구려 미천왕, 대방군 공격(서기 314)
33. 요동 사람 장통의 모용외 귀부(서기 314)
33. 고구려 미천왕, 현도성을 침공하여 깨뜨림(서기 315)
34. 모용외의 장수 장통이 고구려 침입(서기 319)
2. 낙랑인 5천여 명 신라 망명(서기 37)
3. 화려/불내현이 신라 침입했으나 맥국이 막아섬(서기 40)
5. 백제가 마한을 병합
6. 백제사에서 낙랑 증발
7. 신라사에서 낙랑이 사라지고 낙랑을 대신해 백제 등장
8. 낙랑이 한나라 땅이 됨(서기 44)
9. 삼국사 고구려본기에는 한나라가 바다를 건너와 낙랑을 차지하여 살수이남이 한나라 땅이 되었다고 돼 있으나 후한서에는 이러한 군사행동을 한 기록이 없고 다만 한국의 염사 사람 소마시가 한나라 낙랑군에 찾아와 조공을 바치자 한 광무제가 한염사읍군에 봉하고 낙랑군에 예속시키고 사철마다 입조케 했다ㅡ하는 기록이 있음(서기 44)
10. 당시 한나라는 후한서, 무경십요, 삼국지 위서 등으로 볼 때에 왕망 이후 북경 동쪽은 오환 등의 이민족에게 수비를 맞겨두고 방치가 돼 도로가 끊길 정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곧 모용씨가 세를 잡고 난하 동쪽은 모용씨 천하가 되어갔다
11. 고구려 모본왕 한(漢)의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서기 49)
12. 고구려 태조대왕 요서에 10 개 성 축성(서기 55)
13. 고구려 태조대왕 동옥저 정벌, 국경 개척, 동으로 창해, 남으로 살수(서기 56)
14. 고구려 태조대왕 한나라 요동의 6개 현 약탈(서기 105)
15. 고구려 태조대왕 예맥과 함께 한나라 현도군 습격, 화려성 공격(서기 118)
14. 고구려 태조대왕 121~122 한나라와 고구려 전쟁(서기 121~122)
ㅡ 한나라 참가군 유주자사, 요동태수, 현도태수, 부여 위구태
ㅡ 고구려 참가군 고구려군, 예맥, 마한, 선비족
15. 고구려 태조대왕 한나라 요동군 서쪽 안평현/서안평현 침입하여 대방태수를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노략질(서기 146)
16. 고구려 신대왕 재상 명림답부의 좌원대첩, 침략한 한나라군 수천 명 척살(서기 172)
17. 고구려 고국천왕 왕자 계수의 좌원대첩, 침략한 한나라군 수천 명 척살(서기 184)
18. 동한 멸망기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한나라 사람들 고구려 망명(서기 197~217)
19. 고구려 동천왕 요동군 서안평 습격하여 깨뜨림(서기 242)
20. 원위 명제가 비밀리에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한국에 파견하여 신지에게는 읍군의 인수를, 읍차에게는 읍장의 표식을 주어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함 (서기 240 전후)
21. 이렇게 진한 8국을 분할해 낙랑에 예속시키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소위 기리영 전투 발생하여 한국을 멸망시킴(서기 240 전후)
22. 고구려 동천왕 신라 북쪽(마두책) 침입(서기 245)
23. 원위 관구검의 침입, 낙랑태수 유무, 삭방 (대방) 태수 왕준도 같이 현도군에서 나와 고구려 침입(서기 246)
24. 백제 고이왕 이틈을 타서 진충을 시켜 낙랑군 변경 습격하여 백성 약탈(서기 246/백제사에 낙랑이라는 이름 240여 년만에 다시 등장한 시점)
25. 고구려 동천왕, 신라가 사신을 보내오매 서로 화친함(서기 248)
26. 백제 책계왕,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함에 대방이 구원을 요청하여 응하였으나 고구려가 원망하여 침입할 것이 두려워 아차성과 사성 보축 후 침략 대비
27. 한나라가 맥인과 함께 백제를 침입하여 책계왕 살해(서기 298)
28. 고구려 미천왕, 현도군 침입하여 백성 8천여 명 약탈(서기 302)
29. 백제 분서왕, 낙랑군의 서현/서쪽 현을 침략해 빼앗았으나 이후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숨짐(서기 304)
30. 고구려 미천왕, 서안평 습격하여 빼앗음(서기 311)
31. 고구러 미천왕, 낙랑군 습격하여 백성 2천여 명 약탈(서기 313)
32. 고구려 미천왕, 대방군 공격(서기 314)
33. 요동 사람 장통의 모용외 귀부(서기 314)
33. 고구려 미천왕, 현도성을 침공하여 깨뜨림(서기 315)
34. 모용외의 장수 장통이 고구려 침입(서기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