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생이닷컴-해외 네티즌 반응 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동아시아 게시판
메뉴보기
  • 해외반응 -
  • 뉴스 -
  • 영상자료 -
  • 유머/엽기 -
  • 커뮤니티 -
  • 팬빌리지 -

회원

로그인

06월 26일 (수)

[기타] 구당서 신당서 거리와 낙랑군

관심병자 조회 : 2,453
검색목록 목록

신당서 구당서의 거리 기록으로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자들이 있다.

대략 주장 내용을 살펴보면

군국지에 낙랑군이 낙양에서 5000 리

신당서에는 경사(장안)에서 평양이 5000 리

구당서에는 경사(장안)에서 평양이 5100 리

같은 장소 평양을 말하는 것이니, 평양이 낙랑군이라는 주장


또 구당서의 거리 기록에 경사(장안)에서 유주의 거리가 2520리

우리나라 사행록(약 300종)을 보니 조선(경성)에서 연경(북경 옛 유주)가 약3000리 에서 3200리 인데

경성에서 평양이 약 500리이므로 평양에서 북경은 약 2500리로 일정하다.

그러니 구당서 기록과 사행록 기록으로 보면 경사에서 평양의 거리는 약5000리가 일치한다.

그러니 평양이 낙랑군


뭐 이런 논리들이다.

맞다 구당서 신당서 약 5000리 혹은 5100리에 평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이 낙랑군이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구당서 신당서 거리가 맞는다고 평양이 낙랑군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거야 신당서 구당서 시절의 주장이고, 실제 거리로는 군국지 거리와 신당서 구당서 거리 기록이 말하는 거리는 다르다.

오히려 신당서 구당서의 거리 기록은 요동군 서쪽에 낙랑군이 있게 된다.

이것을 살펴보자.



구당서

고구려는 평양성에 도읍하였는데, 낙랑군의 옛땅으로 京師에서 동쪽으로 5100리 밖에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이르며,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고, 북쪽으로 말갈에 닿는다. 동서의 길이가 3100리이고 남북의 길이는 2000리이다.(『舊唐書』卷199上「列傳」第149 <東夷> "高麗者…其國都於平壤城, 卽漢樂浪郡之故地, 在京師東五千一百里. 東渡海至於新羅, 西北渡遼水至于營州, 南渡海至于百濟, 北至靺鞨. 東西三千一百里, 南北二千里.") 


신당서

고구려는 …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남쪽으로도 바다를 건너 백제에 이르며,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 영주에 닿고, 북쪽으로 말갈과 붙어있다. 그 나라의 도읍지는 평양성인데 장안이라고도 한다. 경사에서 5000리 밖에 있다.(『新唐書』卷220「列傳」第145 <東夷> "高麗…地東跨海距新羅, 南亦跨海距百濟, 西北渡遼水與營州接, 北靺鞨. 其君居平壤城, 亦謂長安城, 漢樂浪郡也, 去京師五千里.") 


신당서 지리지 하북도

구당서 지리지 유주대도독부


구당서 지리지 유주대도독부 거리 기록

 

 京師(장안) 기준

 東都(낙양) 기준

 구당서 내용

 안동도호부遼東郡故城置

한나라 양평/고구려 요동성

 4625리

 3820리

 경사(京師)에서 4625리를 가며 동도(東都)까지는 3820리이다.

 

유주대도독부

한나라 계현

 2520리

 1600리

 경사(京師)에서 동북쪽으로 2520리에 있으며 동도(東都) 까지 1600리이다. 

 

탁주(涿州)

 2400리

 1480리

 경사(京師)까지 2400리이고 동도(東都)까지 1480리이다. 

 

평주(平州)

 2650리

 1900리

 경사에서 동북으로 2650리 떨어져있고 동도까지는 1900리이다

 

계주(薊州)

 2822리

 1213리

 경사(京師)까지 2822리이고 동도(東都)가지 1213리이다

 

단주(檀州)

 2657리

 1844리

 경사(京師)에서 동북쪽으로 2657리이고 동도(東都)까지는 1844리이다. 

 

규주(嬀州)

 2842리

 1910리

 경사(京師)에서 동북쪽으로 2842리 떨어져있고 동도(東都)까지 1910리이다. 

 

영주상도독부

 3589리

 2910리

 경사에서 동북쪽으로 3589리 떨어져 있고 동도(東都)까지는 2910리이다.

 

거리 기록만 정리 한 것이다.

위 기록을 먼저 검토해보면


유주=계현=한나라와 같음

탁주=한나라 탁군

안동도호부=한나라 요동군

평주와 계주=장안 기준은 계주가 멀리 있고, 낙양 기준은 평주가 멀리 있음. 통상 평주 노룡 지역으로 볼 수 없어 기준점에서 제외

단주=유주의 북쪽 고북구 쪽에 있는 것이고

규주=옛 상곡군 지역


한나라와 같다고 하는 지역은 유주/ 탁주/ 안동도호부(요동군)

이 3개 지역을  보자

군국지가 낙양 기준으로 되어 있는데 구당서도 낙양 기준으로 되어있는 기록이 있으니 직접 비교가 가능하다

 

 구당서 낙양 기준

 군국지 낙양 기준

 비교

 유주

 1600

 2000

 군구지가 +400

 탁주-탁군

 1480

 1800

 군국지가 +320

 안동도호부-요동군

 3820

 3600

 군국지가 -220

요동군 비교를 보시라.

구당서가 군국지 보다 220리 길게 기록되어 있는데, 실질 거리는 구당서의 기록이 더 자세하다.

구당서의 거리 기록이 현대 도시 간 거리와 보다 일치한다.


표준 거리

당나라 1리= 559.8 m

후한   1리= 414 m


이상하지 않는가?

유주의 경우 당나라 표준 거리가 더 길기 때문에 당연히 더 작은 수가 기록된다.

탁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것이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도시간 거리는 구당서가 더 현대 거리와 더 가깝다.

그러면 구당서 요동군의 거리를 군국지 거리로 환산해보자


구당서 3820리 곱하기 559.8 m =2138.436 km


이것을 군국지(후한) 거리로 환산하면

2138.436 km 나누기 0.414 = 5165.3 리가 된다.


그러니 길이 같다고 해도 낙랑군은 구당서 기록대로 라면 요동군의 서쪽 165.3리 지점에 있게 된다.

그런데 군국지 시절과 당나라 시절은 가는 길이 달랐다.

시절이 다른 만큼 길은 후대에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다.

길을 감안하면 낙랑군은 요동군의 서쪽 165.3리 보다 서쪽으로 더 멀리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 보자.

후한과 당나라가 같은 장소 거리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각각 후한의 거리와 당나라의 거리로 기록된 것이다.

이 두 기록이 각각 잘 된 기록이라면 km으로 환산하면 어느 기록이 더 길까?

비슷하거나 후한의 길이가 더 길어야 정상이다.

왜?  후한(25년-220년)  당나라(618년 - 907년)으로 근 6백년 이상 차이가 나는데, 그사이 새로운 길이 생기거나 길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구당서 평양 5100리와 신당서 5000리가 정확한지 보자.

신당서는 지리지에 수도(낙양 장안)와 州와 郡의 거리 기록이 없고, 주나 군을 기준으로 주변의 거리를 기록하고 있고,

구당서는 주변의 거리기록이 없고 수도와 거리 기록이 있다.

구당서 안동도호부(요동군)의 기록으로 평양간 거리기록을 보자

안동도호부 경사(京師)에서 4625리를 가며 동도(東都)까지는 3820리이다.

경사(장안)에서 요동군이 4625리 라면 구당서에서 5100리에 평양이 있다 하는데,

그러면 요동군에서 475리 가면 평양이 나올까??

아니다. 475리는 압록강도 못간다.


요양시-평양시 직선거리는 332 km

 

압록강이 딱 중간 지점에 있는데,


조선시대 연행기사에는

평양-순안 50리→숙천 60리→안주 60리→가산 75리→정주 45리→곽산 30리→선천 40리→철산 45리→용천 30리→소관참(所串站) 40리→의주 35리→압록강 5리====515리


평양에서 압록강 거리가 515로 나와 있고, 압록강-요양시 거리와 압록강-평양시 거리가 같으면 대략 요양시에서 평양시 거리는 천리 전후 되는 거리이다. (조선 표준거리 1리= 561.96m 당나라 559.8m과 비슷함)


신당서 지리지 가탐도리기에는

(안동도호부에서) 동남쪽으로 평양성(平壤城)까지 800리이고

(안동도호부에서) 남쪽으로 압록강(鴨淥江) 북쪽에 있는 옛 안평현(安平縣)이었던 박작성(泊汋城)까지 700리이다

 압록강이 700리 라면 100리 정도 더 간 800리에 평양성이 있을 수가 없다.

가탐도리기의  요동군-평양 800리 설을 취한다 하더라도

구당서 경사(장안)에서 요동군이 4625리 더하기 800리는 5425리가 된다.


또 구당서 요동군 낙안기준 거리기록

3820리는 평양까지 800리 더하면 4620리가 되는데


5425리=장안 기준 요동군 거리기록에 가탐도리기 요동-평양 800리를 더한 거리

4620리=낙양 기준 요동군 거리기록에 가탐도리기 요동-평양 800리를 더한 거리

위 두개의 거리의 평균이 5022.5리 이다.

그러니 구당서 5100 리와 신당서 5000리가 대략의 거리인 것은 맞지만,

 장안 기준 구당서 평양의 거리는 5425리 이거나 그 이상이 되어야 맞다.


http://blog.naver.com/joymug/220674567538


댓글보고 요약한것.

구당서에 나온 고구려의 평양이 현재 한반도의 평양이 되기 위해서는 당시 당나라 거리단위로 최소 5425리 이상이 되어야 함.

즉, 구당서에 나온 고구려의 평양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님.

낙랑군도 한반도에 위치해 있지 않았다는것.


장안 - 고구려 평양 5000 리

장안 - 요동군 4620 리

요동군 - 압록강 북쪽 박작성 700 리

당서 기록과 당시 거리를 고려해서 장안에서 5000리면 고구려의 평양은 한반도 밖에 있다고 기록한것.


Marauder 17-06-01 22:03
아아 제가 잘못했군요... 첫구절에 낙랑이 낙양에서 5천리였군요
뒷부분만 보고있었네요.
다만 구당서에서 5천리라는 구절은 어떻게된거죠? 요동성이 바뀐건가요?
그리고 같은 책내에서 비교하지 않은건 아쉽네요...
Marauder 17-06-01 22:04
요동을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는건 사실 앞에 내용이 이해가가지않아서 글 끝부분을 보고 저 스스로 생각해봤습니다. 요동을 경유하고 안하고 차이가 엄청 커서 대충 길이가 오백리정도 차이가 나요. 아까말했는데 요동까지 가는대신 바닷길을 쭉 따라 오면 압록강 부근과 요동까지의 거리가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낙랑이 요동 서쪽 165.3리가 떠올라서 도대체 어떤식으로 계산되는건가 했네요....
Marauder 17-06-01 22:36
다른분들을 위해 제가 후한서의 기록을 신뢰하면 어떻게되나 확인해봤습니다. 한나라식 3600리는 당나라식으로 270리정도 되는것을 확인했습니다. 표에서는 영주상도독부보다 200리 가깝네요.
목련존자 17-06-02 08:19
Marauder님 말씀대로 거리를 재는 같은 '리'도 한대냐 당대냐에 따라서 몇십 미터씩 차이가 납니다.
관심병자님이 그거 조심해서 검산해 보셔야 될 것 같네요.
한대 기록과 당대 기록이 있으면 가능한 한 시대가 가까운 한대의 것을 쓰셔야 됩니다.

우리가 무심결에 한대 다음이 당대니까 시간적으로 간격이 얼마 안되는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사이에 수백년이나 공백이 있었다고 봐야 되거든요?
게다가 한나라는 한족의 나라지만 당나라는 선비족이 주체가 되서 세워진 나라죠.
문화인식이나 도량형 같은건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인프라도 50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만 탔지만
지금은 중부고속도로에 서해고속도로까지 생겼잖아요?
그런 점들도 충분히 감안하시면 더 완벽한 고증이 될 것 같네요^^;;
목련존자 17-06-02 08:32
그리고...

"구당서의 거리 기록에 경사(장안)에서 유주의 거리가 2520리
우리나라 사행록(약 300종)을 보니 조선(경성)에서 연경(북경 옛 유주)가 약3000리 에서 3200리 인데
경성에서 평양이 약 500리이므로 평양에서 북경은 약 2500리로 일정하다.
그러니 구당서 기록과 사행록 기록으로 보면 경사에서 평양의 거리는 약5000리가 일치한다.
그러니 평양이 낙랑군이 맞다!!"

강단의 "유사사학자"들이 대놓고 떠들어대는 이딴 헛소리에 흔들리실거 절대로 없다고 봅니다.
지난번 대방군 위치 관련 발표한 문성재라는 분이 자기 책에서 그러더군요.
중국 정사에 나와 있는 거리를 곧이 곧대로 믿으면 절대로 안된답니다.

"5천리"라고 나와 있는 정사의 거리는 지금의 거리 개념과는 상당히 차이가 크다는 거죠.
즉, 지금의 거리는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터널이나 교량이 만들어져서 거리 단축이 가능해졌지만
100년전만 해도 도로 인프라도 엉망이지만 터널이나 교량도 존재하지 않아서 한참을 돌아서 가야 했답니다.
따라서 고대의 "5천리"는 지금으로 따지면 그보다 1.5-2배 "적은" 거리(2500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군요.
그렇게 따지면
"낙양에서 낙랑까지 5천리"에서 낙랑은 그 위치가 평양이 아니라 요동 너머일 가능성이 높지요.
Marauder 17-06-02 09:34
문제는 위와같은 계산을 절대수치로 계산한게 아니라 비례수치로 계산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당나라기록을 믿을경우 요동성과 유주의 위치가 새로 비준되지 않는 이상 평양성의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많치가 않아요...
물론 이 자료에서는 계주거리가 잘못된듯한데(아마 12와 20이 바꼈을 가능성) 그건 둘째로 치고요
Marauder 17-06-02 09:44
애초에 지금 재야사학자들 논리대로라면 현 요동성이 평양이 되긴 하지만 이 경우 유주의 문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주가 베이징이라는 확실한증거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있다면 다른 모든 논리가 깨어져버리니까요.
 현대길로 따지면 서안에서 유주가  1000키로 유주서 요동까지 700키로인데 구당서길이를 재보니까 2500 vs 2100 정도죠. 물론 관내보다 관외가 길이 덜 정비되었을테니 그점을 조금 감안하면 현 요동과 비슷하게됩니다....
목련존자 17-06-02 15:46
국내 학게에서는 유주를 '시(city)' 개념으로 보지 않고 '성(province)' 개념으로 보지 않는지요?
그래서 거리계산 할때마다 번번이 안드로메다로 빠지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Marauder님께서 지적하신 내용만 유념해서 쓰시면
관심병자님 이 글이 아주 대단한 논문 감인 것 같습니다.
국내 학자들 논문 치고 지리고증 제대로 한 경우를 못 봤거든요.
관심병자님 화이팅 ^^;
관심병자 17-06-02 17:26
이글 제가 쓴거 아닙니다.
본문 아래쪽에 링크가 원글 출처 입니다.
정욱 17-06-02 09:49
지금 북경이 옛 고구려 평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록 PC버전 위로

Copyright © gasen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