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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0일 (토)

[통일] “(조선)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굿잡스 조회 : 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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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경극전(京極殿) 경조윤(京兆尹) 좌좌목씨(佐佐木氏)와 강기운 삼주 태수(江岐雲三州太守) 태선 대부(太膳大夫) 입도(入道)2907) 생관(生觀)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908)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909)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910)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911)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912)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913)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28권 4장 A면
【영인본】 9책 13면
【분류】 *외교-왜(倭)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keyword=%EC%84%B1%EC%A2%85+%ED%99%A9%EC%A0%9C


성종 32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7월 26일(을묘) 2번째기사
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일본국(日本國) 인백단 삼주 태수(因伯丹三州太守) 산명전(山名殿) 소필(少弼) 원교풍(源敎豐)이 양영 서당(亮瑛西堂)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고, 아울러 사서(四書) 각각 1건(件)씩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는 이르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3198)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3199)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3200)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3201)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3202)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3203)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3204)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3205)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3206)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는,
“활[弓] 2장(張), 백시 동대(百矢同臺) 1대(對), 대도(大刀) 10진(振), 관자 풍로(罐子風爐)·건명분(健茗盆) 2매(枚).”
이었다.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15장 A면
【영인본】 9책 42면
【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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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3198]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


[註 3199]경인년 : 1470 예종 원년. ☞


[註 3200]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


[註 3201]전사(專使) : 특사(特使). ☞


[註 3202]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


[註 3203]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


[註 3204]조연(助緣) : 절을 지을 때에 돈이나 재물로 도와 주어 인연을 맺는 일. ☞


[註 3205]포금(布金) : 베나 돈. ☞


[註 3206]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keyword=%EC%84%B1%EC%A2%85+%ED%99%A9%EC%A0%9C
 
 
 

굿잡스 13-09-07 00:39
중종 45권,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6월 11일(병술) 2번째기사
세견선 허용에 관한 일본 사신의 상소문

예조가 아뢰기를,
“일본 사신들이 친히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고 싶어 하는데, 객인(客人)이 상소를 함은 사례에 어긋나는 것이라 계달(啓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나라의 사신이 상소하는 예가 없었으니, 막아야 한다.”
하였다. 그의 상소에는,
“일본 국왕전(日本國王殿)의 중[僧] 대원(大原)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백 번 절하며 말씀드립니다. 우리 성문 신무(聖文神武)하신 금상 황제 폐하(今上皇帝陞下)께서 즉위하신 이래 만물(萬物)들이 제 스스로 뜻하는 대로 되어지며, 비가 와야겠다 하면 비오게 되고 볕이 나야겠다 하면 볕이 나게 되었습니다. 신이 진실로 간직한 바가 있어, 공구(恐懼)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기에 삼가 광화문(光化門)에 나아가 소(疏)를 올려 주문(奏聞)하오며 삼가 성지(聖旨)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했고, 그의 사(辭)에는,
“임종(林鍾)11016) 의 음률(音律) 속에 예법(禮法) 맡은 예조의 안내를 받아, 괴청(槐廳)11017) 의 그늘로 해서 다행히 보필(輔弼) 맡은 재상들을 접하게 되었으니, 지금 동쪽에서 온 중을 가엾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임금께 주달하여 들어주게 되고, 더욱 유익할 길을 강구(講求)하여 정히 서로 소득이 있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빕니다.
금상 황제 폐하께서는 삼왕(三王)의 위에 있으며 만국(萬國)을 순박해지게 하시므로, 멀리 조선 나라에 와서 국은(國恩)을 입었고, 노성한 대신들과도 의를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일본의 왕명(王命)을 욕되게 하고 있어, 사신으로서의 공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되나 저일은 안 된다 하시고 이것은 가하나 저것은 부(否)타 하시는데, 진실로 선왕(先王)과 화호(和好)할 무렵 붕중(弸中)이 왔을 적에는 세견선(歲遣船)을 25척까지 승락해 주셨으면서, 신왕(新王)의 말은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지금 약조(約條) 중에서 두 가지 사항을 감하려 함은 어느 조항만 시행하시려는 것인데, 마치 수레에 예(輗)와 월(軏)11018) 이 없는 것과 같은 격으로서, 죄지은 내력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사신 승려 모(某)는 독정(禿丁)11019) 이 된 지 여러 해인데, 조잔한 몸으로 바다를 건너와 태평고(太平鼓) 소리를 들으며 유리각(瑠璃閣)에 오른 것이 두 차례나 됩니다. 간직하고 있는 속명도(續命刀)11020) 를 자비고(慈悲庫)에서 내오기 기다리고 있사오니, 억만년(億萬年)의 두 나라가 저의 남은 나이를 살게 해 주시어 모두 살아서 돌아가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바랍니다.”
굿잡스 13-09-07 00:43
조선이 초중기까지 독자적 세력권을 구축하고 미친 영향력이

만주일대와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동남아등까지 뻗었음.

현대에도 이정도 세력권을 자기 영향력 아래 둘 정도면 가히 대국이라 불릴 나라임.(실제

문명이나 정치, 법제,군사 인구 경제력등에서도 선진대국이 조선이였고 인구빨이나 덩치 빼고

명보다 다방면의 인본 법치나 제도 생활상등에서 도리어 앞선게 조선이였음.*현대적 관점에

서 보면 더욱 조선이 명보다 앞선 선진국형 나라임.)
산골대왕 13-09-07 12:31
조선이 오래도록 정권이 유지 되었던게 서양에선 근대에서야 시행되고 이루어졌던게
이미 고려말 조선 초기부터 실행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 이전
민씨 일파들의 부정부패가 원인이 되어 동학같은 민란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암튼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리틀보이 13-09-07 12:35
동학농민운동이나 농민봉기라고 하시죠.. 민란이 뭡니까 민란이 ㅋ
님 조상도 농사지으셨을텐데...
나와나 13-09-07 01:27
한국이 또 날조했으므니다~ 우리는 그런 말 한 적 없으므니다~
피시즈 13-09-07 01:27
이랬던 조선이 당쟁으로 임진왜란만 말아먹지 않았다면 20세기까지 어떤 모습으로 유지됐을지... 안타까울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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