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또는 조선요리
한정식이 일제강점기때 만든 음식이다? 어느 누가 이렇게 떠들고 있다죠?
지금은 이름만 한정식일뿐이지 그당시 불리던 이름은 조선 요리입니다
그럼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 왕가나 양반 일반 백성까지 알수 있는 한식 상차림을 써놓거나 그림으로 그려낸 책들은 없는가?..
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각종 진연의궤,진작의궤,궁중음식발기등등에 그릇,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이름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선시대 왕가의 일상식을 유일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 정조 19에 편찬된 의궤)를 살펴보면
원반에는 유기 그릇에 담은 13그릇의 음식과 협반에는 화기그릇에 3가지음식을 담았다
음식종류로는 팥물로 지은 밥(적두수화취)과 국 조치 구이 좌반 젓갈 나물 침채 장 그리고 별찬 3가지이다
장은 그릇수로 치지 않았다
원반에는 반.갱.조치.구이.좌반.숙육.해.채.침채.담침채.장등이 오른다
협반에는 탕.적.증.만두.회.전.각색어묵.동물성 식품이 오른다
다소반에는 면.만두.탕.적.전유화.어채.편육.증.회. 다식. 각색당.떡.유밀과.강정.율란.조란.정과.생과. 수정과.꿀.장등이 사기 그릇에 담는다
그럼 양반들의 상차림은
임금이 먹는 수라상은 12첩이라고 한다면 양반들은 9첩반상입니다
기본음식은 ① 밥 ② 국 또는 탕 ③ 찌개 또는 조치 ④ 찜 또는 선 ⑤ 전골 ⑥ 김치 ⑦ 장종지(맑은간장 ·초장 ·초고추장 ·젓국 등
찬품은 ① 편육 또는 수육[熟肉], ② 전유어(저냐) ③ 회(생회 ·숙회 ·강회 등) ④ 달걀(水卵 ·熟卵 등)
⑤ 조림 또는 볶음 ⑥ 구이(더운 구이 ·찬 구이) 또는 적(炙) ⑦ 나물(숙채) ⑧ 생채(生菜) 또는 겉절이
⑨ 장아찌 또는 장과 ⑩ 젓갈 ⑪ 자반[佐飯] 또는 마른 찬류 등이다
그밖에도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산가요륵 규합총서 도문대작 주방문등 조선시대 음식을 총망라 하고 백과사전격인 규합총서까지 일반 가정집에 있던 책들입니다
그중에서 시의전서(是議全書)·음식방문(飮食方文)은. 한글로 여러 가지 요리법을 써놓은 이 책의 끝 부분에는
‘반상식도’라는 제목으로 9첩반상·7첩 반상·5첩 반상·곁상·술상·신선로 상의 상차림 그림이 나온다.
반상식도란 ‘상에 음식 차리는 법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일단 한식은 책으로 구전으로 딸에서 며느리로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궁중 음식 또한 공주들이 시집을 가면서
그곳 지방에 뿌리를 내리곤 합니다 안동이 음식으로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교수 또한 12첩 반상은 조선시대 통틀어서 없었다라고 뉴스에 기고한것도 있는데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떡 하니 12첩 반상 차림을 문헌으로 기록합니다
2. 그럼 상업적으로 나온 한식 즉 조선요리는 있는가?
그럼 신문 라이브러리를 통해 1900년대 신문을 살펴봅니다
요리집의 원조로 알려진 것은 혜천관이라는 요리집이다.1906년 지금의 서림동에 개업했다
혜천관이 개업 하자마자 성업 일로에 있는 일본인 요리집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러일 전쟁이후 대거 몰려온 일본인들이 장기를 두던 요리집들 이다 그러나
조선요리를 맛볼수 있고 조선의 춤과 소리를 접할수 있는 혜천관은 일본인들에게 까지 인기였다
그후 궁중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안순환이라는 사람이 사직후 차린 명월관이 개업했다 1909년의 일이다
그러나 1889년에 개업한 요리집이 존재 합니다
명월관보다 20년 앞섰던 수월루라는 곳이 있다 1899년 대한천일은행(상업은행 전신)이 창립 되면서
수월루에서 잔치 한판이 벌어졌던 곳이다
명월관이 한식 즉 조선요리집이 최초도 아니고 수월루라는 곳이고...
1889년이면 뭐가 일본 강점기때야 1889년에서 1896년까지를 개항기, 1897년에서
1909년까지를 대한제국기, 1910년에서 1918년까지를 일제강점기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식을 체계화 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계시는데 유명한 "조선요리 제법"의 방신영,조자호등
조선요리와 예법을 지키고 복원 하다가 조선 총독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분들도 계시는데
한식이 일제때 나왔다고 한다면
이분들의 노력은 뭐가 되는건지
3 한식은 독상인가 겸상인가?
남녀가 유별하고(男女有別) 어른과 아이 사이에 순서가 있다(長幼有序)는 유교적 가치관도 한 상에서 여럿이 모여 밥을 먹지 않게 된 원인이다.
그래서 부자지간에도 겸상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 단, 손자는 할아버지와 겸상이 허용되기도 했다
집안에서 가장은 독상을 받았지만 할아버지와 손자는 겸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