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백인혼혈? 유럽인 유입 추정…고인돌 백인인골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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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유적 전경과 철기시대 주거지, 청동기 시대 각목돌대문 토기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
영국인 유전자와 유사한 인골이 출토된 아우라지 유적은 구석기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유적·유물이 발굴되는 복합유적으로 근래 고고학계의 큰 주목을 받는 곳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부터 발굴 중인 유적은 특히 국내 최고(最古)의 청동기 유적으로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로 문화가 전이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유물만으로도 남한내 청동기문화의 시작을 알려줌과 동시에 전국으로의 청동기문화 전파 과정을 드러내 “교과서에 실릴 만한 가치를 지닌”유적이란 평가다.
학계의 관심을 모으는 인골은 아우라지유적내 고인돌 4기 중 제2호에서 출토됐다. 윤석인 책임연구원은 “돌널 내에서 특별한 부장품은 없이 토기 조각들과 출토됐다”며 “인골을 분석한 서울대 해부학교실에 따르면 신장은 약 170㎝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차 인골분석에서 백인, 그것도 영국인 유전자와 가깝다는 결과에 대해 발굴단은 물론 학계에서도 그 해석을 놓고 당혹스러워하는 실정이다. 우리 고고학계의 큰 연구 숙제를 안긴 것이다.
지현병 발굴조사단장은 “분석에 대해 놀랐다”며 “일본, 영국쪽의 분석도 1차와 같다면 학계에 공식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단장은 “황석리 인골을 지금이라도 더 조사하는 등 학계의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인도를 통한 벼농사문화가 전파되면서 인골의 주인공이 함께 이 땅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김교수는 “고인돌은 인도, 대만 등에서도 확인된다”며 “지금도 힌두어를 쓰는 인도인의 상당수는 유럽계 유전인자를 가진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문화교류상 가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3일 발굴현장에서 가진 유적발굴 지도위원회에서 지도위원들은 하나같이 유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치밀한 발굴을 주문했다. 이건무 용인대 교수(전 중앙박물관장)는 “청동기문화가 신석기문화의 특성과 전통을 잘 이어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청동기문화인이 신석기문화를 밀어내고 들어왔다는 기존의 학설을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유적 등과 비교하는 등 학계의 많은 연구과제를 안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권구 계명대 교수도 “한마디로 신석기와 청동기시대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보여주는 획기적인 유적”이라며 사적 지정을 통해 장기적인 발굴이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선서 最古 靑銅장신구 발굴.. "교과서 바꿔야"
아우라지서 기원전 11∼13세기
기존 유물보다 3세기 가량 앞서
청동기 주거지 17호에서 발견
강원 정선군 아우라지에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 기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보다 약 2∼3세기 정도 앞선 기원전 11∼13세기 유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강원문화재연구소 측은 16일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 191번지 일대 아우라지 유적 발굴현장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청동제 장신구가 출토됐다. 탄소연대 측정 결과 청동기 조기(早期·기원전 11∼13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청동기에 관한 교과서 서술을 바꿀만한 유물”이라고 밝혔다.
발견된 청동기 유물은 목걸이 제작에 쓰인 장신구로 보인다. 반지형 2점, 관옥(冠玉·옥 장식품)형 2점으로 여러 개의 관옥과 함께 출토돼 현재 보존 처리 중이다.
기존 청동기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9∼10세기의 요령식 동검(비파형동검)으로 알려져 왔다.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은 “북한 신암리 유적에서 청동 손칼과 단추가 나왔는데 이게 청동기 조기의 것으로 추정될 뿐 남한에서는 청동기 조기 유물이 나온 적이 없다”면서 “이번에 같이 출토된 각목돌대문토기(입구에 덧띠를 붙인 토기), 관옥, 화덕, 그물추 등도 전형적으로 청동기 조기의 형태를 띠고 있어 연대 측정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2006∼2007년 1차 발굴에 이은 2번째 조사다.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중단됐다가 10년 만인 지난 3월 재착수한 끝에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1차 때에는 신석기∼철기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주거지와 분묘를 확인했으나 청동 유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번엔 추가로 신석기 주거지 1기, 청동기 주거지 42기, 수혈유구(지면에서 수직으로 판 굴) 23기, 토광묘(땅을 판 무덤) 3기 등 총 109기를 새로 발견했으며 이 중 청동기 주거지 17호에서 장신구가 나왔다.
또한 고인돌, 석곽묘(돌덧널무덤), 석관묘(돌널무덤) 등 청동기 시대 분묘 유구 8기도 새로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붉은간토기 등이 나왔다. 특히 1호 석관묘에서는 사람 뼈와 함께 장신구로 보이는 옥 장식품 100여 개가 출토돼 당시 매장의례를 파악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정선아리랑' 본고장에서 남한 최고의 금속제품이 나왔다?
'정선아리랑' 본고장에서 남한 최고의 금속제품이 나왔다?
[한겨레] 강원 정선군 아오라지 유적에서 3000여년전 청동장신구 나와
기원전 13~11세기 청동기시대 조기의 금속제 유물로 남한 첫 출토
‘정선아리랑’의 본산지인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의 한 유적에 16일 문화재학계의 눈길이 쏠렸다. 이날 강원문화재연구소와 정선군은 군내 여량면 여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기원전 13~11세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청동장신구와 옥기류, 화살대, 돌촉 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남한에서 나온 금속제 유물로는 가장 오래된 3000년 전 이전의 청동기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출토된 청동장신구는 두들겨 모양을 내는 단조 방식으로 만들었다. 모양새를 보면, 탄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옥기류 등과 함께 섞여 나왔다고 한다.
요즘 학계에서는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를 시기별로 세분할 때 기원전 13~11세기를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기간인 ‘조기’로 구분해 부른다.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금속제 유물은 과거 북한 평북 용천군 신암리 유적에서 청동손칼, 청동단추 등이 나온 사례가 있다. 남한에서는 이런 유물은 나오지 않고 집터나 토기류의 특징 등으로만 청동기 조기 유적을 추정하는데 머물러왔다. 이번에 그 직접적 실체인 금속제 유물이 처음 보고된 셈이다. 조사단 쪽은 “집터 흙층의 탄소연대 측정 결과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새김덧띠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가 함께 나온 점이 연대를 추정하는 유력한 근거가 됐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최근 20여년사이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들의 발굴이 거듭되면서 시작 시점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과거엔 중국 북방 고대 오르도스 지역 청동기와의 연대 비교를 통해 기원전 7세기께부터 시작한다고 보았지만, 근래 10세기로 올렸고 최근엔 기원전 10~15세기, 심지어 북한 학계처럼 기원전 20세기 이전으로 시작 연대를 더욱 끌어올리는 경향도 나타난다.
청동기시대는 신석기 시대와 달리 농경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한곳에 정착하는 생활 방식이 뿌리를 내린 시기다. 청동기 등의 금속제 도구들은 의례 용도로 활용됐고, 생활도구는 대부분 갈은 석기를 썼다는 게 정설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