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길 교수에 따르면, 거란[쇠단]은 5세기 무렵 시라무렌(Siramuren) 강변 일대에서발원한 몽골족계의 유목민족으로 원명은 키타이(Kitay[쉬타이])이며 그 뜻은 ‘(쇠)칼날’이라고 한다. 거란[쇠단]은 정복왕조(Conquer Dynasty)의 효시라고 불릴 만큼 초원의 전통 제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이념을 창출했다. 거란[쇠단] 제국의 창시자인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 [야루 아버지?(father of Yalu?)])는 초원민족의 전통인 샤마니즘을 시대이념의 중심으로 삼았고 흉노 이래의 전통인 직접 참여민주주의 전통(무엇을 하던 간에 다수가 모여 반드시 먼저 하늘의 뜻을 확인하는 절차)을 의무화했다.
이러한 시대 이념을 통해 거란[쇠단]은 초원민족들의 자발적인 귀부를 받으며 놀라운 속도로 몽골고원을 평정해 갔다. 당시 서양 사람들은 동아시아 자체를 키타이(Kitay) 제국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눈에는 거란[쇠단]이 바로 동아시아 지역의 대표주자로 보였던 것이다.142)
흉노는 알타이를 중심으로 거주한 포괄적인 유목민 집단으로 한국인, 몽골인, 터키인 등으로 분리되기 이전 단계의 선민족(先民族)으로 볼 수 있다. 흉노의 군주는 동방계 유목민족들의 세계관을 반영하여 자신을 ‘하늘의 아들(Tenggeri kotu)’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 구도에 맞추어 유라시아세계에 관통하고 있었던 자연법적 인식체계를 신격화된 하늘(Tenggeri) → 흉노의 군주(Tenggeri kotu) → 백성이라는 3분 구도로 체계화시켰다.
흉노의 군주는 유능한 군사령관이자 하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최고 사제(司祭)로서의 지위를 거머쥔 것이다.143) 단군왕검(檀君王儉)과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이다.
몽골이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몽골 지역에서 고구려를 구성한 민족 즉 맥족의 고올리(高句麗) 성읍터나 구비전승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박원길 교수는 이 맥족의 고올리 즉 ‘모골’ 또는 ‘머골’에서 몽골이 나왔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맥족의 고올리란 맥족의 나라라는 뜻이므로 고구려나 부여, 백제와 별도 다르지 않다.
[그림 ③] 고올리의 성읍터
몽골 학자 수미야바타르(Б.Сумъябаатар) 교수는 보이르호 남쪽호반에 서 있는 고올리칸 훈촐로를 동명성왕상(東明聖王像)이라고 주장한다. 박원길 교수는 고구려가 기원적으로 몽골과 유사성을 가진 민족으로 원래 코리(Khori)족 또는 맥족(貊族)이 남하하여 만든 국가라고 한다. 박원길 교수에 따르면, 코리족(Khori : 솔롱고스)이란 동몽골의 광활한 대초원인 메네긴탈(Menengintal)에 살던 민족으로 케룰렌(Kerulen) 강과 할하(Halh :Халх)강 유역에서 동북대평원 멀리 흑룡강(黑龍江)과 송화강(松花江) 일대를 경유하여 남하한 부족들이라고 한다.
칭기스칸의 후예로 알려진 바이칼의 부리야트(Buryat)족은 바이칼 일대를 코리(Khori :솔롱고스)족의 발원지로서 보고 있으며, 이 부리야트(Buryat)족의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부여족의 조상이 되었고 후일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김병모 교수(고고학)에 따르면 이 종족이 한국인들과 유전인자가 가장 가까운 종족이라고 한다.
강길운 교수(언어학)는 고구려의 지배층이 사용한 몽골계 언어는 부여어로 부리야
트 방언의 고대어로 추정되며 부여는 Burit(Burya-tu 사람)의 Burya[부리야]를 의미하고 그것은 몽골족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였다. 강길운 교수는 108개의 고구려 지명들 가운데 몽골계가 68개가 대응하고 있으며 만주어(滿洲語)와는 31개, 터어키어와는 30개, 길략어와 가야어(伽倻語)와는 13개가 대응한다고 분석하였다.144) 몽골 연구가인 정재승 선생에 따르면 이런 얘기는 동몽골이나 바이칼 지역에서는 상식적인 이야기로 이 지역 사람들은 동명왕을 코리(Khori)족 출신의 고구려 칸(Khan)이라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