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흉노열전>에는 연 장성이 조양에서 양평까지였다고 하며 <사기/몽염열전>에는 진 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라 하였다. <한서/지리지>에는 양평이 요동군에 속한 현이고 진 장성과 연 장성의 동쪽 끝은 동일했던 것이니 결국 양평은 좁은 의미의 지명이고 요동은 넓은 의미의 지명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은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요동과는 그 위치가 달라 지금의 란하 유역이였고 진.한시대의 행정구역이였던 요동군은 넓은 의미 요동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위치도 지금의 란하 하류 유역이였다는 점이다.``
도대체 저런 무식하고 한심한 주장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
사마씨의 진 시기 교치된 낙랑군 수성현 위치를 서한 시기 설치된 낙랑군 수성현 위치라고 하지를 않나,
그것도 일본놈들이 변조.조작한 만주국지도와 만주국지도를 복사한 중국전도 표시에 근거하여 지금의 갈석.산해관 표시 지역을 지목했다.
게다가 진.한 시기 요동군 위치도 란하 하류였다고?
아래처럼?
헐!
윤내현은 그 간단한 <한서/지리지><후한서/군국지>도 보질 못했는가?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졌다는 곳이 요동군이고, 그 요동군으로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2100 리 길이 염난수(어떤 놈은 마자수라 우긴다)가 흘러와야 한다.
낙랑군은 요동군에서도 1400 리나 더 떨어진 곳이고 더구나 820 리 길이 열수도 흘러야 하는 곳이다.
서한이 설치한 요동군 위치는 위 추정도의 2 지점이다.
그곳이 낙양으로부터 3600 리 떨어졌다는 곳이고,
1250 리 길이 대요수와 현토군으로부터 흘러오는 2100 리 길이 염난수가 흘러오는 곳이다.
그런데,
낙랑군 수성현도 란하 하류이고,
요동군도 란하 하류라고?
대체 란하 하류 어느 물길을 대요수,염난수,열수로 지목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정말 너무 한심하다.
강단 쓰레기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찌 민족사학을 지향한다는 윤내현도 저런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들이대는가?
어떤 작자가 제시한 고지도가 개미콧구멍같다고 하여 오른쪽 일부를 잘라내고 올렸으니 맘껏들 보시게나.
위 조작지도는 1832 년 청국 동방립.이조락이 간행한 <황조일통여지전도>를 일본으로 가져가 1865 년 재간행했다는 <황조일통여지전도>이다. 문제는 위 청색 추기와 같이 흐르는 황하를 변조하여 지금의 서요하처럼 보이게 한 조작지도라는 것이다. 아래는 위 조작지도를 게시한 블로그 향고도의 설명이다.
``주) 황조일통여지전도의 원도는 1832 年(淸.道光十二年),董方立、李兆洛에 의해 8권의 지도첩으로 제작된 이 후, 수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刻本제작으로 지도가 거칠기는 하지만, 청대에 제작된 전국적 지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지명과 산수(山水)명을 표기하고 있는 지도로 평가된다. 원도는 북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위 지도는 1865년(淸,同治4) 徑香閣 간행본으로 일본 쓰쿠바 대학 소장본이다. 원래는 8본의 방안지도를 20.6×14.1cm 크기의 한 권에 수록하여 총, 8권 (64본)의 지도첩으로 되어 있으나, 전체지도로 향고도가 편집하였다. http://blog.daum.net/sabul358/18281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