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팔레 교수는 워싱턴대 교수로, 2006년에 타계하신 미국의 한국학 대가입니다.
그는 조선사회를 노예제 사회로 규정했고, 조선 내부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부정했기 때문에 일부 한국인들에게 제국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으로서 제국주의로부터 비판적으로 역사를 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미국인으로는 드믈게 중국사나 일본사가 아닌 한국사를 연구한 백인이며, 그의 관점과 연구방법은 한국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한국근대사를 보면, 터무니없이 조선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아 많이 불편합니다. 사회구조를 보면, 고대노예제 사회 혹은 중세 봉건사회의 어디쯤인데, 조선 근세론이라는게 낯뜨겁고 민망한 것이 사실입니다.
고려말 부터 조선 초까지 유래없이 노예가 증가해서 인적 구성을 놓고 보면 조선 전기에는 노비가 50%에 육박하고, 조선 전기 경상도 지역의 인구구성에 대한 자료를 보면 노비가 70%를 넘어서기도 합니다.
인적구성만 놓고본다면 조선은 빼박캔트 노예제 사회입니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은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보는데 반대합니다.
물론 학교 선생님 그 누구도 조선이 (고대)노예제 사회라는 말은 안합니다.
이에 대해 제임스 팔레 교수는 한국학자들은 한국사를 발전의 연속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식민지 시대의 정체성론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노예제 문제는 한국사의 대표적인 난제입니다. 그리스·로마시대의 노예(slave)에 해당하는 신분은 ‘노비’(奴婢)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노비가 전체 인구의 3~4할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접하면 무척 당혹스럽죠.
예를 들면, 17세기 초의 호적에서 산음현은 41.7%, 단성현은 무려 64.4%의 인구가 노비였으며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노예가 전체 인구의 대략 3~4할이었고 남북전쟁 전 미국 남부에서도 3분의 1 정도였기 때문에 만약 노비가 모두 노예라면, 적어도 조선 전기는 전형적인 노예제사회라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인권적 문제에 바라볼 때 수백년 동안 대체적으로 전국민의 30퍼센트, 노비수가 급증한 17세기에는 60~70퍼센트(이 부분은 너무 높은 것 같은데, 별도로 조사해야겠다.)가 '노예'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은 귀족 세력이 오리엔탈리즘에서나 나올 법한 국민의 노예화를 달성하여 가혹하게 수탈한 국가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 이는 점차 인권을 발전시키고 신분제를 극복해나간 근대국가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련지. 이런 생각이 그 때 내 머릿 속을 채운 바 있었습니다.
물론 팔레 선생이 조선 노예제 국가를 주장하였을 때 그러한 의도는 없었을 것이지만 19세기 남부 미국이 노예제에 의존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선이 노예제 국가였다는 것을 극도로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는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었죠.
팔레 선생은 자신의 주장을 통하여 조선이 '후진국'이었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비참한 피지배층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왜 미국이 과거 노예제를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듯이 한국인들이 과거 노비제의 존재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가를 묻는 것이 진짜 의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