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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3 21:39
[한국사] 지도로 보는 정안국(마한지종) 시기 지도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686  

정안국 (938년 ~ 1020년 이상 존재함)

여진이 아닌, 고구려 땅에 살던 발해의 유민이자, 마한의 종자
 
정안국왕 신 오현명이 아룁니다. (중략) 신은 본래 고구려 땅에 살던 발해 유민으로서 (중략) 근년에 거란이 강포한 힘만 믿고 우리 영토를 침략하여 성채를 함락시키고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으나, 저희 할아버지께서 절개를 지켜 항복하지 않고[

KakaoTalk_20180304_170014617.jpg

定安國本馬韓之種 爲契丹所破 保其西鄙 宋太祖開寶三年 其王烈萬華 因女眞使上表獻 太宗 

太平興國六年 又因女眞使上表云 定安國王臣烏玄明言 伏遇聖主 洽天地之恩 撫夷貊之俗 臣玄 

明誠喜誠 頓首頓首 臣本以高句麗舊壤 渤海遺黎 保據方隅 涉歷星紀 仰覆露鴻鈞之德 被侵漬 

無外之澤 各得其所 以遂本性 而頃歲契丹恃其强暴 入寇境上 攻破城砦 略人民 臣祖考 守節不 

降 與衆避地 僅存生聚 以 于今 而又扶餘府 昨背契丹幷歸本國 災禍將至 無大於此 所宜受天 

朝之密書 率勝兵而助討 必欲報敵不敢違命 臣玄明 誠懇誠願頓首頓首 元興六年十月日 定安國 

王臣玄明 表上聖皇帝前 太宗優詔答之 是時宋欲討契丹故也 端拱二年 其王子因女眞使 獻馬雕 

羽鳴鏑 淳化二年 其王子太元 因女眞使上表 其後不至 高麗顯宗九年 定安國人骨須來奔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종자로 거란에게 깨졌는데, 그 서쪽을 지키어 송태조 개보 삼년에 그 

왕 열만화가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표를 올리고 가죽옷을 받쳤다. 태종 태평흥국 육년 또 

여진의 사신에게 표를 올려 말하길 정안국왕 신 오현명이 말합니다. 성스런군주께 업드리니 

천지의 은혜로 윤택하고 이맥의 풍속을 어루만지시니, 신 현명은 진실로 기뻐하며 머릴 조 

아립니다. 신은 본래는 고구려의 옛땅으로 발해의 남은 무리로 한 구석에 의거하여 보존하 

고 있습니다. 세월을 보냄에 태평성대을 우러르나, 침략함을 당하여 밖은 윤택하지 못합니 

다. 각각 그 본성대로 있는 곳을 얻는 것이데 요즘 거란이 그 강폭함으로 폐하의 지경을 도 

둑질 하고 성채를 공격하여 깨뜨려 백성을 사로잡습니다. 신이 조상대를 생각하니 절도를지 

키어 항복하지 말하하여 무리와 함께 이땅에 피하여 겨우 모여 살고 있음이 이와 같습니다. 

또한 부여부에서 앞서 거란이 배반하여 본국을 아우르니 재화가 장차 이에 이르니 큰 것이 

아닌데도 이와 같습니다. 이에 마땅히 천조의 밀서를 받으니, 승병을 거느리고 토벌함을 도 

우니, 반드니 복수를 하고 명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신 현명 정성으로 원하며 머릴 조아 

립니다. 원흥육년 시월에 정안국왕 신현명이 표를 성황제앞에 올리니 태종이 조서로 이에 

답하니, 이제 송이 거란을 치고자 한다. 단공 이년 그 왕의 아들이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말과 독수리 깃털, 우는 화살을 받쳤다. 순화 이년 그 왕자 태원이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표를 올린후에는 오지 않았다. 고려 현종 9년 정안국사람 골수가 달아나 왔다. 

渤海考 終      
고려 현종 9년 =1018년


정안국 : 938년 ~ 1020년 이상 존재함

강동8주: 원래 강동8주라 사서에는 적혀있는데, 2개가 한반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하여, 
강동6주가 칭함
8주 명칭: 장흥진, 귀화진, 곽주, 귀주(994년), 안의진, 흥화진(995년) 
             선주, 맹주(996년)---고려서, 동사강목에 기록되어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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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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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18-03-03 21:47
   
굳이 간접지배, 직접지배를 구분할 필요 없습니다.
과거 영토 개념 자체가 간접통치구역을 포함하는 모호한 개념이였으니깐요.
감방친구 18-03-03 21:56
   
지도 상의 여진이 고려의 간접지배를 받다가(즉 히스토리님의
지도표시는 잘못됨)  영가(금태조의 막내숙부. 고려의 외신인 귀덕장군)가 고려에 행정지역으로 편입돼 고려백성으로 살고 있던 목단강&연해주 지역 여진족을 충동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물론 이 반란은 쉽게 진압됐으나 이후 고려 예종 때의 금나라 건국의 예고전 같은 성격입니다

금나라 건국지는 하얼빈 지역으로 요나라 군을 물리치고 북만주에서 건국하는데 이 때 군사수가 겨우 수천 명이었습니다
history2 18-03-03 21:57
   
定安國本馬韓之種 爲契丹所破 保其西鄙 宋太祖開寶三年 其王烈萬華 因女眞使上表獻 太宗

太平興國六年 又因女眞使上表云 定安國王臣烏玄明言 伏遇聖主 洽天地之恩 撫夷貊之俗 臣玄

明誠喜誠 頓首頓首 臣本以高句麗舊壤 渤海遺黎 保據方隅 涉歷星紀 仰覆露鴻鈞之德 被侵漬

無外之澤 各得其所 以遂本性 而頃歲契丹恃其强暴 入寇境上 攻破城砦 略人民 臣祖考 守節不

降 與衆避地 僅存生聚 以 于今 而又扶餘府 昨背契丹幷歸本國 災禍將至 無大於此 所宜受天

朝之密書 率勝兵而助討 必欲報敵不敢違命 臣玄明 誠懇誠願頓首頓首 元興六年十月日 定安國

王臣玄明 表上聖皇帝前 太宗優詔答之 是時宋欲討契丹故也 端拱二年 其王子因女眞使 獻馬雕

羽鳴鏑 淳化二年 其王子太元 因女眞使上表 其後不至 高麗顯宗九年 定安國人骨須來奔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종자로 거란에게 깨졌는데, 그 서쪽을 지키어 송태조 개보 삼년에 그

왕 열만화가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표를 올리고 가죽옷을 받쳤다. 태종 태평흥국 육년 또

여진의 사신에게 표를 올려 말하길 정안국왕 신 오현명이 말합니다. 성스런군주께 업드리니

천지의 은혜로 윤택하고 이맥의 풍속을 어루만지시니, 신 현명은 진실로 기뻐하며 머릴 조

아립니다. 신은 본래는 고구려의 옛땅으로 발해의 남은 무리로 한 구석에 의거하여 보존하

고 있습니다. 세월을 보냄에 태평성대을 우러르나, 침략함을 당하여 밖은 윤택하지 못합니

다. 각각 그 본성대로 있는 곳을 얻는 것이데 요즘 거란이 그 강폭함으로 폐하의 지경을 도

둑질 하고 성채를 공격하여 깨뜨려 백성을 사로잡습니다. 신이 조상대를 생각하니 절도를지

키어 항복하지 말하하여 무리와 함께 이땅에 피하여 겨우 모여 살고 있음이 이와 같습니다.

또한 부여부에서 앞서 거란이 배반하여 본국을 아우르니 재화가 장차 이에 이르니 큰 것이

아닌데도 이와 같습니다. 이에 마땅히 천조의 밀서를 받으니, 승병을 거느리고 토벌함을 도

우니, 반드니 복수를 하고 명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신 현명 정성으로 원하며 머릴 조아

립니다. 원흥육년 시월에 정안국왕 신현명이 표를 성황제앞에 올리니 태종이 조서로 이에

답하니, 이제 송이 거란을 치고자 한다. 단공 이년 그 왕의 아들이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말과 독수리 깃털, 우는 화살을 받쳤다. 순화 이년 그 왕자 태원이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표를 올린후에는 오지 않았다. 고려 현종 9년 정안국사람 골수가 달아나 왔다.

渤海考 終
     
감방친구 18-03-03 22:01
   
송 태조 960~976
송 태종 976~997
     
감방친구 18-03-03 22:05
   
송 태종 연호

태평흥국(太平興國, 976년 12월 ~ 984년 11월)
옹희(雍熙, 984년 11월 ~ 987년)
단공(端拱, 988년 ~ 989년)
순화(淳化, 990년 ~ 994년)
지도(至道, 995년 ~ 997년)
history2 18-03-03 21:58
   
고려 현종 9년 =1018년
history2 18-03-03 22:02
   
1018년 정안국은 관료인 골수를 고려에 파견한다는 내용이 발해고와 고려사에 등장을 한다. 즉 987년이 정안국의 멸망의 해가 아니였고, 여전히 정안국은 거란에 막혀 고립무원의 상태였지만, 그 명맥을 잇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무렵은 거란이 매우 강성하였고, 그 마수는 동방 고리에까지 미쳐 거란의 3차의 대침입(고려현종)을 감행하던 때였으므로, 고려로서도 송나라와 기타 반거란적인 이웃 나라들에 일정한 관심을 돌리면서 송나라와 함께 거란을 협공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었다.
정안국의 통치자들은 고려의 이러한 움직임을 통찰하고 1018년에 정안국 관료인 골수라는 사람을 고려로 들여보내어 고리와의 반거란 연합을 실현할 데 대하여 토의하게 하였다.
≪고려사≫ 세가에 실려 있는 골수의 기록은 너무 간단하여 그가 무엇 때문에, 어떤 자격으로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때의 국제 정세로 말하면 정안국 자신은 거란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계속 투쟁하는 중이고 거란 침략자들은 정안국 뿐 아니라 고리에 대해서도 계속 침입을 감행하던 때이므로 골수가 고려로 온 것은 반거란투쟁에서 고리와 일정한 연계를 맺으려고 한 것임에 틀림없다. 골수가 고려에 망명하였다는 기록은, 그가 그냥 고려에 정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골수가 고리를 방문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와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감방친구 18-03-03 22:34
   
파견이 아니라 도망쳐 왔다고 돼 있습니다
history2 18-03-03 22:06
   
정안국은 각자의 길을 가지요....! 감사
감방친구 18-03-03 22:17
   
"순화 이년 그 왕자 태원이 여진의 사신으로 하여금 표를 올린후에는 오지 않았다. "

송 태종 순화 2 년 = 991 년

ㅡㅡㅡㅡ

고려 성종 3년 984년

형관어사 이겸의에게 명하여 압록강 기슭에 성을 쌓아 보루로 삼게 했는데 여진(女眞)2)이 군사를 동원해 저지한 후 이겸의를 사로잡아가니 군대가 궤멸되어 성을 쌓지 못했으며 귀환한 군사는 3분의 1에 불과했다.

고려 성종 4년 985년

왕이 시일을 끌며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자 한국화(韓國華)가 협박과 회유를 병행하며 설득했다. 왕이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출동시켜 서쪽에서 만나겠다고 약속하자 한국화가 그제서야 돌아갔다. 앞서 거란(契丹)이 여진(女眞)을 칠 때 우리 영토를 거쳐 갔는데 이 때문에 여진은 우리가 거란을 끌어다가 분란을 일으킨 것으로 여기고 송나라에 말을 바치러 가서, 고려가 거란과 합세해 자기 백성들을 납치해 갔다고 무고했다. 한수령(韓遂齡)이 송나라에 가자 송나라 황제는 여진이 올린 급보를 알린 목계(木契)를 꺼내어 한수령에게 보이면서, “본국에 돌아가거든 포로로 잡혀간 여진 사람들을 돌려보내도록 전하라.”고 일렀다.

고려 성종 10년 991년

압록강 바깥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백두산 너머로 쫓아내어 그 곳에서 거주하게 했다.

<고려사 세가>

순화 2 년 = 고려 성종 10 년 = 991년
감방친구 18-03-03 22:25
   
저는 금나라 건국세력인 여진족이 실제로는
흑수말갈 + 발해부흥세력 가운데 잔여세력 + 발해 지방민 및 지방 종족 + 고려 백성 등이라고 누차 주장해 왔습니다
     
6시내고환 18-03-05 20:40
   
이것은 거의 사실로 밝혀진거 아닌가요? 금사에도 인정하는 부분인데
감방친구 18-03-03 22:31
   
현종 9년 1018년

 봄 정월

초하루 을미일. 태조의 새 영정이 완성되자 사자를 서경(西京)으로 보내 성용전(聖容殿)에서 태조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병신일. 서여진 사람인 미알달(未閼達) 등 일곱 명이 와서 갑옷과 투구와 말을 바쳤다.
○ 정안국(定安國) 사람인 골수(骨須)가 도망쳐 왔다.
경자일. 재신(宰臣)들이 백관들과 함께, 왕에게 정전(正殿)으로 되돌아와 거처하고 반찬 가짓수를 전과 같이 하기를 청하는 표를 올렸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임자일. 동여진 사람인 서율불(鋤栗弗)과 서여진 사람인 아주(阿主) 등 40여 명이 와서 말·갑옷·투구·기치(旗幟)·담비 가죽·청설모 가죽을 바쳤다

<고려사 세가 >

정안국(定安國) 사람인 골수(骨須)가 "도망쳐" 왔다.
history2 18-03-04 06:37
   
골수는 정안국에서 도망쳐 왔습니다(1018년 현종9년)
6시내고환 18-03-05 20:43
   
거란과 고려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다가 고려, 여진에 흡수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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