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성 전투(무승부) :
1636년 12월 8 예친왕 도르곤 휘하의 청군이 백마산성 내의 조선군을 자극하여 일어난 전투이다.
동선령 전투(승)
1636년 정방산성에 주둔한, 도원수 김자점과, 이완이 동선령에서 벌인 전투 3~4백명 사살했으나
김자점 도원수 심각한 부상.
검단산 전투(패)
1000명의 강원도근왕군 선봉대가 청군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1000명 전사
토산 전투(승)
1636년 12월 25일 청군이, 황해 감사 이배원과 황해 병사 이석달이 이끄는 조선군을 기습하여 벌인 전투
쌍방 수천명씩 전사
험천 전투(패)
1636년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충청도근왕군과 청군이 벌인 전투로 수천의 조선군 전사
쌍령전투(패)
1637년 1월 2일에 쌍령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청군의 전투이다. 조선군 4만명이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8천명만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 나머지는 후속부대로 참여하기전 끝나버림.
광교산 전투(승)
1637년 1월 4일부터 1월 6일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전투로, 전라도 근왕병이 청나라 군사
수천명을 죽여 승리한 전투이다.청태종의 매부 전사
강화성 전투(패) :
1637년 1월 21일 강화도 수비군이, 청군에 맞서, 강화성을 수비하던 전투를 말한다
탑동 전투(패)
1637년 1월 26일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병마사 유림과 순안현령 허노가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김화에서 청군을 만나 싸워 1000명 전사
백동 전투(승)
1637년 1월 28일 홍명구의 패잔병을 쫓다가 유림의 조선군의 진지의 진입해 벌인 전투로 청의 군사중
90%인 5000명의 청군이 전사함.
백동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물자부족으로 퇴각하는 바람에 인조는 패전한 것으로 착각하고
투항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명-청간에 명의 전적보다는 훨씬 준수하네요. 4번 이기고 5번 졌네요
이겼을 때 동선령전투외에는 수천명의 청군을 죽였으니 청군의 손실도 2~3만명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함경도 기병은 뭘하고 있었을까요? 45일동안의 전쟁기간에 콧배기도 안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