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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5-16 22:51
[한국사] 일정기간 점유한 걸 항구적인 영토라고 생각하는건 오류맞습니다
 글쓴이 : 하이시윤
조회 : 544  

그러므로 중국문헌을 살필때 선진문헌부터 잘 살피는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그러므로 고조선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은 고조선이 존재했던 당시나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기록의 검토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주지되어 있는 바와같이 고조선의 위치를 전하는 가장 오랜 문헌은 “山海經(산해경)”이다. 산해경은 戰國時代(전국시대)로부터 西漢(서한)초기에 걸쳐서 저술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고조선이 존재하던 당시의 기록인 것이다

 

산해경의 “海內北經(해내북경)”에는

 

“朝鮮(조선)은 列陽(열양)의 동쪽에 있는데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위치하며 열양은 燕國(연국)에 속한다 ” 고 하였고 同書(동서) “海內經(해내경)”에는

“ 東海(동해)의 안, 北海(북해)의 귀퉁이에 명칭을 朝鮮(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다 “

고 하였다.

 

이 기록은 고조선이 북쪽은 산과 접해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동해 안쪽에 있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따라서 고조선은 한반도 북부에 위치할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는 三韓(삼한)이나 그 전신의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고조선의 남쪽이 바다와 접할수 없으며 중국의 동해는 한국의 황해를 말하는데 한반도는 중국의 동해 밖이 되므로 산해경의 기록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고조선의 위치를 보다 더 분명하게 전해주는 기록은 “史記(사기)” “朝鮮(列傳(조선열전)”이다. 여기의 위만조선에 관한 기록 이지만 위만조선은 고조선 지역에 위치했었으므로 위만조선 지역이 확인되면 그 지역이 바로 고조선지역이 된다는데 이의가 있을수 없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서한의 무제가 군사를 파견하여 위만조선을 친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그해 가을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였는데 齊(제)를 출발하여 渤海(발해)에 떳다,,,,,,, 누선장군은 제의 병사 7천을 거느리고 먼저 王險(왕험)에 이르렀다. 右渠王(우거왕)은 성을 지키다가 누선군이 적은것을 탐지하고 바로 성을 나가 누선을 공격하니 누선군은 패하여 흩어져 도망하였다 ”

 

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누선장군 양복이 이끈 수군은 제를 출발하여 발해를 항해한후 위만조선의 우거왕과 전쟁을 하였다. 그런데 제는 지금이 산동성 이었으므로 발해의 위치가 확인되면 누선군의 항해 방향을 알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위만조선의 위치가 밝혀지게 된다"

 이러식으로 문헌고증을 해야 맞습니다
구르뫼님의 위치비정 고증은 너무 초보적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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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뫼 24-05-16 23:40
   
잘 읽었네요...
상기 글의
루선장군 楊㒒이 건넌 渤海와
좌장군 荀彘이 출발한 遼東은 어디이며
루선장군이 도착해 대패한 王險은 어디로 비정하나요?
     
하이시윤 24-05-17 09:24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을 읽어보세요
시민사학시대입니다. 책을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스승의 소장품에서 간신히 보던 시대에서 언제나 감색가능한 시대로 바뀌었기에 역사학은 대변화를 겪을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수록 올바른 방법론에 따라 선입견없이 사료를 비판하여 취하고 재구성하는 시민사학을 기대합니다. 책보고류의 말도안되는 방법과 주장은 마치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 체제 속에 파고든 나찌들입니다. 결국 모두를 파괴하지요
          
구르뫼 24-05-17 11:21
   
하이시윤님이 요수 난하를 주장하시니 이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본인이 중국자료를 연구한 건 처음에 사마천 사기와 우공의 치수를 읽으며
당시 많은 의혹들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요수 영정하 난하 등 여러설이 있어
중국의 역사왜곡을 중국자료로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의 지명이 이동되었다면 난하의 위치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견은 어떠한지요.
               
하이시윤 24-05-17 12:59
   
그 책을 읽어보시면 서주시대부터 위만정권이 망한 BC108년까지 난하=요수였습니다. 요수의 뜻을 아시나요. 이건 추정입니다만 당시 차이나인들이 생각한 동북방면 국경을 이루는 강을 요수라고 칭한 것입니다. 그러니 요수는 계속해서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요동요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선진시대문헌부터 차례로 검토해서 위치비정을 해야 합니다
                    
구르뫼 24-05-17 22:46
   
답변이 곤란한 질문이라 생각이 되는군요.
사서에 營丘城이 나옵니다.
산동성 임치와 요서군 유성이 있더군요.
유성은 순임금이 바다를 건너 설치했던 영주이며
추리도에 그려지는 遼水와 영주가 있는 지역이겠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북 역현 남쪽에 영구성이 실존합니다.
전에 다른 곳에 또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더군요.
또한 潦水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潦水촌과 100여년전 潦水라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산해경에 보니 遼자를 潦로 바꾸어 쓰더군요.)

역현 주변으로 요서군 지명이 나오는 우연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 기억만 하세요.
                         
하이시윤 24-05-18 07:54
   
https://m.baike.com/wikiid/6941368460640345459
Linzi는 원래 Yingqiu 로 명명되었으며 고대에는 Yingzhou 에 속했습니다 . "Erya Shidi"는 "Qi는 Yingzhou라고 불립니다." " Erya " "Shiqiu"는 강이 왼쪽에서 흐르는 언덕을 Yingqiu 라고 기록합니다 . 한나라의 역사가 반고(千后)는 『 한서 지리 』 에서 인용한 『기시』에서 “아들의 진영이 여기 있고 나는 여기 산 사이에 있다 ”고 기술했다. , Yingqiu 산은 현재 Qingzhou 시 Xizhuang 의 Linzi District Qiling Street Niushan에서 남서쪽 으로 10 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의 이름입니다 . 시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Yingqiu에 가서 Aoshan 산에서 나를 만나십시오. Yingqiu는 Niushan과 인접하고 Linzi와 Yingqiu는 같은 장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營丘城을 산동성 청주시로 비정하는군요.
                         
하이시윤 24-05-18 07:58
   
위키피디

임치(臨淄)는 춘추 전국 시대 당시 제나라(齊)의 수도이며,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산둥성 쯔보 시 린쯔 구에 위치하였다.
춘추 전국 시대의 도시들 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하였으며, 경제력과 군사력이 가장 강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 기원전 221년에 진 시황제(秦始皇帝)가 제나라를 멸망시킬 당시 점령되었다. 현재 산둥성 쯔보 시 린쯔 구에 성터 유적이 남아 있으며, 1926년 일본의 고고학자들과 1964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하이시윤 24-05-18 08:28
   
요서군 유성은 찾아보니  위치비정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어째든 현 차이나에선 조양시로 비정합디다. 대략적으로 발해북안 금산시로 비정
1.전한ㅡ신
柳城縣 차오양시 남서부 마수산(馬首山)이 남서에 있다. 참류수(參柳水)가 북으로 바다로 들어간다. 서부도위의 치소가 있다.
2.후한
폐지됨. 후한말, 유성현의 고지에 오환이 거점을 세워 조조에게 대항한 적이 있었다.
3.북위시대 이후
북위가 화룡성에 설치한 영주는 건덕군, 기양군, 창려군, 요동군, 낙랑군, 영구군 등의 군과 용성현(龍城縣), 대흥현(大興縣), 영락현(永樂縣), 대방현(帶方縣), 정황현(定荒縣), 석성현(石城縣), 광도현(廣都縣, 現 후루다오 시 젠창 현), 양무현(陽武縣), 양평현(襄平縣), 신창현(新昌縣), 평강현(平剛縣, 現 차오양 시 링위안 시 서), 유성현(柳城縣, 차오양), 부평현(富平縣)등의 현을 관할했다. 북제에서 건덕군, 기양군, 영락현, 대방현, 용성현, 대흥현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지했다. 581년(수문제 개황 원년), 건덕군, 용성현을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폐지되었다. 남은 건덕군이 폐지되면서 용성현은 용산현으로 격하되었다. 598년(수문제 개황 18년) 용산현을 유성현으로 개명했고 대업초에 요서군을 신설했다. 대방산(帶方山), 독려산(禿黎山)、계명산(雞鳴山)、송산(松山), 유수(渝水)、백랑수(白狼水)가 현경내에 있었다.


"유성은 순임금이 바다를 건너 설치했던 영주이며"
이부분은 찾을수없습니다. 출처 부탁합니다
                         
하이시윤 24-05-18 08:36
   
마지막으로 툭툭 던지지말고 님의 가설을
소논문형식으로 제시하세요. 기분나쁘네요.
님글을 보는 사람이 님의도까지 추측해야합니까
                         
구르뫼 24-05-18 11:24
   
"유성은 순임금이 바다를 건너 설치했던 영주이며"
이부분은 찾을수없습니다. 출처 부탁합니다
이 부분은 상서와 한서 및 위서 수서 지리지를 바탕으로
태평어람,태평환우기 등의 기록이 보완된 기록이니 찾아보시면 있을 겁니다.

본인은 대학을 졸업한지 이미 30여년이 넘었고
경영학과 출신이라 사학쪽은 연이 멀어 함께 글을 쓸 분을 찾다가
이젠 천천히 집필쪽으로 가닥을 잡은 연유로
원전기록을 공개할 필요성을 이젠 느끼지 못하니
다소 질문에 언찮았다면 미안하네요.
                         
위구르 24-05-18 13:06
   
저 자의 말투가 저렇습니다

빈약한 근거를 가져왔으면 우물쭈물대며 말해야 할 판에 남을 가르칠려고 하는 식으로 떠들어대니 기본적인 지능 뿐만 아니라 인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알아서 자료를 찾다가 지치게 만들거나 호도할려는 수작이죠
                         
구르뫼 24-05-18 13:39
   
두 사람 최근 내 글에 댓글을 달았으며 지금 본문글은 나를 비판하는 것이네.

위구르 네가 쓴 댓글이네 보시게.

또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진서 15권에 '案《禹貢》為海岱之地,舜置十二牧,則其一也。舜以青州越海,又分為營州,則遼東本為青州矣。《周禮》:「正東曰青州。」'라고 나와있는데 이걸 가져온거임?

나는 말일세...전체적으로 역사흐름을 파악했기에 쓴 글의 요점은 알지.
조금만 유성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으면 알 수 있는 내용을
영주의 연혁이며 지리지를 조사해보면 나의 말을 이해할텐데
그 정도 수준도 안되는 당신과 이야기해봤자 무의미해 무시하는 것이네.

또한 당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려면
당신들이 비정하는 유성에 영구성이 있어야만 하네.
혹시 몰라 하북성의 다른지역도 찾아보니
“전에 다른 곳에 또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더군요“라고 쓴 것이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네.
 
내가 자료 제시하면 말꼬리 잡아 얘기하는 위구르 당신이
당신이 쓴 최근 댓글도 모르면서 할 말이 아니잖아......

토론하는 자세와 인성부터 바꾸고 얘기하는 건전한 모습을 보이시게.
                         
위구르 24-05-18 18:40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02242 여기서 반박도 못하고 튄건 잊었냐 늙은 환자야

이런 원숭이들을 교화시키는건 역시 불가능하지
                         
구르뫼 24-05-19 11:34
   
정말 국어를 나도 못했지만 주제파악 못하네.

1481년 달목하촌에 이민보는 명장성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관문과 초소 등을 만들었겠지.
이 때 이민보라는 초소를 즉 쉽게 건물을 만든거니 建이나 位를 쓴것이며
여기서 행정기관일 경우는 지리지를 살펴보면 置 라는 글자를 쓰네.
그럼 금사에 이미채=이민현 일세.
둘 다 현을 폐하고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록이 없으니
현에서 향, 방 촌 등으로 강등되어  이민채? 또는 이민? 이라고 되었겠지.

이민보라는 이름은 어디에 연유하는가?
이민채나 이민향 이민방 등에 연유할 수도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네.
그런데 이민채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니
내가 쓴 글의 의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일세.
왜냐하면 이민채=이민 이기 때문일세.

이민보라는 지명에 대해 이민채와 이민현이 동일지역임에도
이민보라는 이름이 있어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네
다음부터 글을 쓸 때는 좀더 꼼꼼히 체크해 보겠네.
이 점 오해없길 바라네.
하이시윤 24-05-18 18:21
   
구르뫼님
유성에 영구성이 있던말던 님주장을 서론ㅡ본론ㅡ결론으로 제시해야 동의하거나 반박하죠. 꼬투리 잡거나 도매값으로 넘긴다고 화내기전에 님글은 슬쩍 던져놓고 내의중을 알아서 파악해서 알아서 모셔라 라는 태도라 인식되어 짜증납니다
     
구르뫼 24-05-19 14:32
   
난하 요수설을 지지하니
적어도 수경주 14권은 읽었으며 영구성은 알고 있다고 생각되어
언젠가는 영구성에 대한 조명이 있을 것같아 미리 참조하라고 쓴 것이기에
기억만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서론-본문-결론으로 일정한 양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지 않고
가볍게 의문을 두어 결론을 내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는
아직 본인이 의문점으로 느끼던 중요한 기록을 풀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고려사 인종14년 기록을 보면
정강의 변에 의해 송나라가 금나라를 치기 위해 고려에게 길을 비켜달라는 내용

송사 외국열전/고려조에 고려의 동남쪽에서 절강성 明州가 보인다는 기록

이 2개의 正史 기록 내용대로라면
강소 안휘 산동일대가 고려의 영역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대로라면 많은 사서기록과 고지도 역시 조작이 되어야만 하기에
힘들게 글을 써봐야 도루묵신세가 될 것 같아
지금은 가볍게 글을 쓰고 있으니 너무 언찮아하지 말길 바라네요.
하이시윤 24-05-18 18:31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너 여기 알어?' 이런글 말고요
서론ㅡ본론ㅡ결론으로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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