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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북쪽에 부여(夫餘), 그 남으로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加羅), 고구려 남쪽에 예(濊), 그 남(南)으로 한(韓), 그 남(南)에 왜(倭)가 있음은 다 밝혀진 사실이다. 그리고 부여(夫餘)의 동쪽에 읍루(挹婁), 고구려 동쪽에 옥저(沃沮), 부여의 서쪽에 선비(鮮卑)가 있고 예(濊)의 서쪽에 낙랑군(樂浪郡)이 있음은 역사를 연구한 자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삼국지에 고구려지명(地名)으로 신안(新安), 거향(居鄕), 서안평(西安平)이 있고, 후한서의 기록으로는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광양(廣陽), 탁(涿), 요대(遼隊), 신창(新昌), 요동서안평(遼東西安平)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는 예(濊)의 지명(地名) 예군남려(濊君南閭), 반우거(畔右渠), 기지위창해군(基地爲 蒼海郡)으로서 여기서 창해(蒼海)는 산서성(山西省)과 제(齊;산동성(山東省)의 사이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사기(史記 69와 30, 한서(漢書 6과 24에 분명히 말하고 있다.
왜(倭)의 지명(地名)은 삼국지의 기록은 대방(帶方)남쪽 담이(儋耳), 주애(朱崖), 회계(會稽), 이주(夷洲), 단주(澶州),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으로 기록 돼 있다. 한서(漢書7)에는 담이(儋耳)는 남월지(南越地)라고 했다. 이 지역은 다 양자강 이남에 있는 지역이 왜(倭) 땅이었다.
따라서 5세기 이전 고구려는 탁(涿), 태원(太原), 북평(北平;阜平)등 하북성(河北省)을 중심으로 한 대륙과 고구려의 칸(干;汗;韓)이 통치한 반도 서라벌(徐羅伐)의 신라(東新羅)도 다 고구려의 영역임에도 이를 숨기고 왜곡했기 때문에 나라들 영역(領域) 혼선을 야기(惹起)시키고 있다.
학노(學奴)들이 삼국사기나 중국정사(中國正史)를 부정한다해도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만으로도 중국의 서화(西華)의 동쪽과 반도가 하나임을 입증할 수 있다.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은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동이족이 지배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웃기는 일은 대륙의 서화(西華)동쪽의 기록인 대산(大山)을 몇 번이고 변조한 대산(大山;垈山;太山;泰山), 역성(力城;歷城), 임성(林城;臨城), 양성(梁城;兩城), 대방(帶方;石門)등으로 그 자구와 지역을 조작하며 숨기려하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가 대륙에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반도에 있는 비리성(碑利城;창녕(昌寧)의 진흥왕비(眞興王碑)에 기록과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는 우리영역이 서화(西華)에서 반도(半島)까지 우리영역임을 입증하고 삼국사기를 입증하는 기록이다. 이 비문(碑文)들에서는 우리나라가 반도에 있었다는 자구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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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해신(海神) 아니다…왜곡된 대륙의 장수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