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 후기에 청동이 만들어지고 나서는 대량생산을 합니다.
주물틀, 여기 화면 자료가 좋지 않은데 중국에서 발견하고 자료를 제대로 전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청동단추를 만든 틀인데요, 고조선의 무덤에서 단추가 나오지 않는 무덤이 없을 정도입니다.
청동단추가 출토되는 지역만 분포도로 나타내어도 비파형 동검이나 고인돌 유적의 분포와 일치합니다.
청동단추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금보다 더 빛이 납니다.
모자부터 신발까지 다양하게 청동단추로 장식을 했어요.
화려하게 빛나는 그런 옷차림을 한 것입니다.
청동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홍산문화 후기부터 청동이 사용되었으니 고조선 건국과 더불어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고조선의 청동기와 중국의 청동기 성분을 분석해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합금의 비율이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뒤떨어집니다.
청동 장신구는 빛이 많이 나고 가벼워야 하잖아요, 동석연이 우리나라 청동기의 특징인데 석의 함유량을 20% 비율로 거의 정확하게 지켜서 광택이 많이 나게 하는 기술적인 우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양의 정가와자 유적인데요, 청동거울은 아니지만 단추 양식의 청동기가 크기가 커져서 나타납니다.
고조선의 청동거울은 잔줄무늬가 특징인데 비해 여기의 것은 무늬가 없는데 태양에 반사되었을 때 엄청난 빛을 발할 정도로 크기가 커집니다.
이러한 유적이 여러군데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단추와 청동거울 모양의 커다란 원판형 유물들이 출토되는 지역들을 분포도로 나타내면 난하를 기점으로 해서 한반도 전지역이 고조선의 강역으로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와 일치합니다.
길림성에 가까운 대흥안령산맥이 있는 곳은 지금도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길림성 쪽은 중국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난하를 기점으로 하는 요서 지역은 문화가 굉장히 활발히 교류하던 곳으로 교역의 상권이 형성되었던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의 물건이나 북방의 물건이 같이 공존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서 지역의 오른쪽 지역은 발굴을 해도 마치 샌드위치의 단면처럼 고조선 물건, 북부여 물건, 고구려 물건, 대진(발해) 물건이 귀걸이 하나만 해도 그 양식이 지속성을 보여주거든요.
역사 왜곡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을 해서 그런지 발굴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적 발굴의 보고서가 없어서 분포도에는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dongeundp/220571427149
잘보고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