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 6월 황헌이 사절로 와서 건낸 한마디는 조선조정을 뒤 흔들었다.
"대명국의 공주마마와 귀국의 세자를 결혼시키라고 황제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과거 조선국왕전하를 보신 폐하께서 호랑이의 상이라고 극찬하시며 그 자식도
마땅히 호랑이일테니 짐의 딸과 결혼할 자격이 있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태종은 이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명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원과 고려의
관계를 재탕하려는 것을 태종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냥 청을 거절할 순 없었다. 고민하던 태종은 세자가 이미 결혼한 몸이라고 완곡히 거절한 후 대신 조선의 미녀를 황제폐하께 바치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황헌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 청을 수락했다. 이후 전국에 간택령을 내려 처녀들을 불러올린 태종은 황헌에게 직접 고르라고 하였고 황헌은 직접 8명의 처녀들을 골랐다. 장차 태종,세종 양대의 업보라고 불릴 처녀공납의 재시작이었다.(세종대왕 또한 명에 처녀들을 골라 자주 보내었다. 사대외교의 폐해중에 하나로서 세종대왕의 흑역사중 하나이다. 이것은 명나라 5대황제인 선덕제 까지 이어지다가 6대황제인 정통제의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http://pann.nate.com/talk/320595074
태종이 세자를 명나라 공주와 혼일을 거부하는 대신 공녀로 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