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와 청사는 좀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의 만주족은 스스로 만주족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지만
금나라의 여진족은 신라계에 의해 정체성을 받고 나오면서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함.
그기에 만주족은 산해관에 입관하기전 이미 제국주의 다원주의를 표방하고
기존 자금성의 토대위에 즉 있던 서토의 문명을 기반으로 정복활동을 했지만
금국은 기본 요양에 이미 도시문명을 향유하고 있던 수십만의 우리의 또다른 발해인들에 의해
고구려 발해문명의 여전한 연장선상하에서 이런 발해인들의 도시문명과 행정을
기반으로 정복활동과 더불어 팽창 및 고구려 문명을 확장 직접 건설하는 식을 보였다는 말
이죠.다시 말하자면 발해 멸망후에도 우리 고구려 발해 문명은 요시기에도 여전히 지
속적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특히나 금국의 중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주도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