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일본은 화폐인 금과 은 광산 개발이 활발했습니다. 그 결과 한때나마 세계적인 은 생산국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가 조선왕조는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시대로. 일본의 넘치는 은이 조선까지 넘어와 일시적이나마 화폐경제가 활성화되는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일본민중들의 주된 교환수단은 여전히 쌀과 소금이며, 도쿠가와 막부 중기쯤가서야 조선면포를 내수대체하면서 면포 역시 교환수단이 됩니다. 금이나 은과 같은 화폐는 막부와 다이묘. 그리고 이들이 모여 있는 대도시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대상인들 사이에서나 유통되었습니다.
현대엔 와패니즈가 상당히 심한거네요...
일본의 혹독한 사회를 무마하고 판타지아를 곁들여서 메이지유신때나 포커스를 맞추고, 에도나 전국시대는 평민생활상은 잘 비추지않고...
민간에게까지 유가를 교육시키려던 조선에 비해
일본의 민간사회는 정말 미개했겠네요. 칼앞에서 가장도 오줌을 지려야하다니
상공업이 발달했기때문이죠 이미 전국시대부터 외국교역을 하면서 은의 사용도와 중요성을 알고있었고 또한 쵸닝문화와 참근교대제가 엄청나게 큰몫을 했을거 같네요 참근교대제 때문에 에도로 향하는 길이 생겼고, 가는 길마다역참 모텔같은 시설도 생겨났고 에도에는 다이묘들이 머무를 집을 사야 했었고... 이런 이유들이 자연스럽게 상공업발달->화폐유통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네 쵸닝문화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사농공상에서 공상으로 이루어진 신분으로 이사람들이 17세기 이후의 일본문화를 이끌어나가거든요 공업 상공업이 여기부터 시작됬다고 보죠.
참근교대제는 우리나라로치면 기인제도?정도라고 볼 수 있고 a,b팀으로나눠진 지방다이묘들이 1년씩 교대로 에도인 도쿄로 왔다 갔다 하는 제도입니다. 반란방지 이런 목적도 있었고 또한 참근교대제가 다이묘한명이 움직이는게 아니라 다이묘 식솔,일단 영주가 1년동안 에도에서 살게되니 몇천몇만명의 사람이 움직여서 전국 유통망이 엄청 활발하게 됩니다. 괜히 에도가 1700년대 인구수1위도시가 아니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