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經總要 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1)
契丹,其先與奚異種同類,俱為慕容氏所破,竄於松漠之地,後居黃龍之北遼澤間。遼澤去榆關一千一百里,榆關去幽州七百里,其地南接海,東際遼河,西包泠陘,北界松陘,山川東西三千里。唐置契丹王兼松漠府都督。光啟中,中原多故,北邊無備,其王欽德稍蠶食,達靼、奚、室韋之屬咸被驅役,族帳寢盛。
거란은 그 선조가 해와 이종동류인데 모용씨에게 그 사는 곳이 격파되어 송막에 숨었다가 훗날 황룡 북쪽의 요택 사이에 거주하였다. 요택(황룡 북쪽)에서 유관까지 1,100 리, 유관에서 유주까지 700 리이며 그 땅은 남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동쪽은 요하에 닿으며, 서쪽으로 냉형산을 감싸고, 북쪽으로는 송형산을 경계로 하니 산천이 동서 3천 리이다.
당나라가 송막부를 설치하여 거란왕으로 하여금 도독을 겸하게 하였다.
광계(당 희종, 885~888) 년간에 중원에 변고(내란)가 잦아 북쪽 변경의 방비가 소홀하자 그 왕 흠덕이 점점 달단, 해, 실위 지역을 잠식하여 그 종족의 영역이 성대해졌다.
2)
戎狄舊地中京,舊鮮卑之地,在饒樂府西南,本奚王國牙帳之地。奚部落南距古北口,北距漢水,東即營州千餘里,皆其境土,後為契丹所並。景德中,虜王築宮室城垣,建為中京,偽號大定府。東至營州界青山嶺一百七十里,西即山後儒州界,東南至建州二百三十里,南至幽州九百里(一路由松亭關,一路古北口),北至上京六百九十里
융적의 옛 땅인 (거란의) 중경은 옛 선비족의 땅으로 요악(도독)부 서남쪽에 있는데 본래 해국 왕의 아장(행궁/궁궐)이 있던 곳이다. 해부락(이 살던 땅)은 남쪽으로 고북구와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는 한수(황수:시라무렌강)와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영주가 천여 리에 있었는데 훗날 거란이 그 영역을 병합하였다.
3)
上京,潢水之北,東際遼河,西包冷陘,南與奚人部落相接,距幽州一千七百里。本鮮卑之地,君長姓大賀氏,有八部,唐貞觀中,諸部咸請內屬,乃置松漠府以居之,賜姓李氏,兼松漠都督。至阿保機,始私立年號,稱大遼國,建所居部落為西樓,有樓數間而巳。後燕人所教,乃為城郭宮室之制,邑屋門皆東向,如軍帳之法。至德光,建為上京,置臨潢府。東至潢水二百一十里,西南至饒州三百里,西至鹽泊八百里。
(거란) 상경은 황수(현 시라무렌강)의 북쪽(에 있는데), 동쪽으로 요하에 닿고, 서쪽으로 냉형을 감싸며 남쪽으로는 해인들의 부락과 서로 접하며, (남쪽으로) 유주까지 1,700 리 떨어져 있다. 본래 선비가 있던 땅으로 우두머리의 성이 대하씨이며 8부가 있는데 당나라 정관 중에 여러 부가 내속하기를 청하니 사는 곳에 송막부를 설치하고 이씨 성을 하사하였으며 송막도독을 겸하도록 하였다. ㅡ 중략 ㅡ 덕광에 이르러 상경을 건립하고 임황부를 설치하니 동쪽으로는 황수까지 210리요 서남쪽으로는 요주까지 300리, 서쪽으로는 소금호수(염백, 즉 광제호)까지 800리이다.
4)
奚,本匈奴別種,牙帳在東湖之地,酋長號王,唐制兼饒樂府都督,居陰涼州。東至營州五百里,西南至幽州九百里。後徙居琵琶川,在幽州東北數百里,古北口之北。天初,契丹漸盛,遂受制焉。或徙居於媯州,依山而居之,有東西奚之號。今契丹盡取奚之故地。
해는 본래 동호의 별종으로 아장(궁궐, 우두머리의 처소, 중심지)이 (옛) 동호의 땅에 있(었)는데 추장을 일컬어 왕이라 하였고 당나라가 설치한 요악도독부의 도독을 겸했으며 음량천(陰涼川)에서 거주했다. (해의 본거지, 즉 아장은) 동쪽으로 영주까지 500 리, 서남쪽으로 유주까지 900 리이다. 후에 비파천으로 옮겨 가서 살았는데 유주에서 동북쪽 수백 리로 고북구 북쪽이다.
천보(?) 초에 거란이 점차 강성해지자 (거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혹은 그 거주지를 규주로 옮겨 산에 의지해 살면서 동해, 서해라 불렸다. 지금 그 해의 옛 땅을 거란이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