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약간 자학적인 역사를 배웠다. “중국에서 우리를 가리키는 표현에 ‘동이(東夷)’가 있는데, 이 뜻은 동쪽에 사는 큰 활을 든 오랑캐(夷)를 뜻한다. 우리는 고대부터 활을 쏘는 동이 민족이다”라고 말하던 선생님들 말씀을 들은 기억이 선하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활과 같이 곡선 운동을 보는 활동에 탁월하다. 선 자리에서 어디까지 거리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은 골프나 양궁은 물론이고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화제가 된 컬링 같은 운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자학처럼 활 잘 쏘는 동쪽 오랑캐를 자임했다. 그런데 동이는 한민족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바로 중국 산둥 사람들은 스스로를 동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산둥성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노나라 등이 있던 곳이다. 노나라는 공자와 맹자를 배출한 나라다. 제나라는 주나라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인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 BC 1156~BC 1017)이 왕에 봉해지면서 만들어진 나라다. 그 중심 도시는 산동성 즈보(淄博)다. 그런데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명백하게 이 제나라가 동이 고문명에서 태동했다고 본다. 즉, 중국도 동이를 그들의 문화로 본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의 검색 포털인 바이두에서 동이의 메인 설명을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바이두에서는 동이가 선진시대 중원과 그 동쪽에 있는 부락이라고 설명돼 있다. 우리 역사가 자학적으로 말하는 4방의 오랑캐(이만융적, 夷蛮戎狄) 중에 하나인데, 동이가 8300년 전에 시작되어 후이문화(后李文化), 북신문화(北辛文化),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용산문화(龙山文化), 악석문화(岳石文化)로 이어진 것으로 본다. 그 시작도 태산과 기산의 인근인데, 진나라 이후 한반도나 일본, 오키나와로 번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사관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곳이 최근에 개장한 ‘제문화박물관’(齐文化博物馆)이다. 즈보에 6억 위안(한화 1000억 원 가량)을 투자해 만든 이 박물관은 최신 첨단시설을 갖췄다.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동이문화’라는 단어다. 제나라가 동이 문화의 계승자라며 그 분포나 기원 등도 설명한다. 그리고 기 기원에는 앞서 우리가 배웠던 방식으로 활을 쏘는 민족의 모습이 나온다. 이 박물관을 찾은 이들은 당연히 이 지역이 동이 문화의 태동이고, 더러는 한반도나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갔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의 동아시아 역사 헤게모니에 ‘동북공정’에 이어 ‘동이공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동이족의 기원이 소호나 태호, 고요, 순임금, 치우 등으로 건너온다. 이런 혼돈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가령, 축구응원단의 엠블럼으로 그려진 치우의 경우 동이족의 조상으로 믿어지지만 한국과 중국이 갈수록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 사이의 차이를 보면, 결코 한족과 한민족은 한 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의 체계도 그렇지만 그 민족이 가진 기질에서도 차이는 확실하다. 일단 한국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골프, 양궁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반면에 1억 명의 인구를 가진 산동성에서 이 분야에 스포츠 스타는 없다. 산동 출신 운동스타들은 대부분 무술이나 역도, 탁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골프나 양궁 등에서 스포츠 스타가 없는 것은 이들의 DNA에 큰 활을 드는 동이족의 인자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중국의 산동반도와 한국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선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경제적인 흐름도 비슷하다. 이미 총생산이 1100조원을 넘은 산동은 5년 후 정도면 한국과 같은 규모를 가질 것이 확실하다. 중국 당국의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우리나라에 사는 화교의 대부분이 산동성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산동 사람들은 청나라 말기에 봉금정책이 끝나자 대거 동북지방으로 건너갔고, 그중에 일부는 한반도로 넘어왔다. 때문에 인천, 군산 등 해안가를 거점으로 그들의 문화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화교들이 대부분의 상권을 갖고 있다. 이때 자장면 등도 건너왔는데, 우리나라 중국 요리는 산둥성 옌타이 푸산(福山) 지역 사람들이 중심이다. 중국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옌타이구냥’이라는 바이주(백주)가 한국에서만 유독 많이 유통되는 것도 그 이유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중국 정부가 ‘동이공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이족 프로젝트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사에서 동이는 오래전부터 나온다. 논어 자한(论语·子罕)에는 아홉 동이(九夷)라는 표현이 있고, 후한서 동이전(后汉书·东夷传)도 이(夷)가 아홉갈래(夷有九种)가 있다는 말이 있으니 중국의 주장도 완전히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동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족들이 우리 민족을 특정해 가리키는 말로 인식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은 제나라 문화를 동이족으로 특정하면서 한국 문화를 그 일부인 것처럼 특정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안타깝게 우리나라에는 이 부분을 전공하는 학자도 많지 않고, 역사 자료는 더더욱 희박하다. 머잖아 우리가 자학적으로 우리 민족을 특정하던 동이족이란 표현조차 잃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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