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7월8일
이치전투
전날인 음력7월7일부터 8일까지
웅치고개에서 조선군이 비록 패배하였으나
안코쿠지 에케이의 부대의 진군을 좌절시킨 것과 비슷한 시각
이치고개에서도 임시 도절제사 권율이 이끄는 1천5백 조선군이
왜6군장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의 2천 왜군과 전투를 시작하고 있었다
음력 7월8일
고바야카와의 왜군 역시 무섭게 조선군의 방어선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조선군은 나무를 방패삼아 총탄을 피하고
격렬한 활 사격을 통해 격전을 벌였다
권율은 병사들의 사기를 독려하며 전투에 임했으나,
비겁한 행동을 보이는 병사들은 일일이 기억해두었다가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졌을땐 반드시 참수하여
일벌백계하였다
도중 동북현감 황진이 이마에 총탄을 맞는 중상을 입어
잠시 사기가 저하되었지만,
이내 권율의 독려에 조선군은 힘을 내어 전투에 임하였다
한편, 왜6군장 고바야카와 다카카케는 급한 보고를 듣게 된다
전라도 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고경명의 의병대가 합류하여 금산성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바야카와는 잠시 고민하였으나,
이내 앞뒤로 조선군에게 포위될 것을 우려하여 병력을 철수시킨다
이것으로 왜 육군의 전라도 진출을
조선은 다시 한번 막아낼 수 있었다
훗날 권율은 자신이 이끌었던 전투 중에 이치전투가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하였으며,
행주전투로 자신이 유명해진 것을 씁쓸하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남해에선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73척의 대선단이
전라도를 노리고 진격해오고 있었다
웅치전투의 패전과
이치전투의 승전과 같은 날의 해상,
음력 7월8일 한산도 앞바다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