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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1 11:41
[한국사] 김화 전투
 글쓴이 : 인류제국
조회 : 1,569  

청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장수 구현준이 전사하여 병사들이 동요하자, 유림은 `내가 여기에 있으니 동요하지 말라'고 외쳤다. 유림이 독려하자,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청군에 맞서 싸웠다. 유림은 1선에 배치한 창검병들로 하여금 청군을 공격하게 하였고, 청군은 조선군의 거센 반격에 당황하여 군사를 돌렸다. 그리고 청군은 다시 군사를 정비하고 병력을 나누어 번갈아가면서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하여 조선군을 공격하였다. 이에 2선에 배치된 조선군 궁병과 어영 출신의 조총병들은 일제사격으로 위력적으로 대응하였다. 특히 조총병들이 발포하는 탄환은 청군 2~3명을 단숨에 관통하였다. 해질 무렵까지 청군은 계속해서 조선군을 공격하였으나, 사상자와 손실만 늘어날 뿐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때 백마를 타고 병사들을 지휘하던 청군 장수가 화살에 맞아 전사하자 청군은 퇴각하였다. 청군은 다시 야간에 조선군을 재공격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퇴각하였다. 유림은 군사를 이끌고 본래 목적지였던 남한산성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이미 조선 조정과 청 사이에 강화가 체결된 뒤였고, 유림은 군사를 거두어 서울로 회군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99%94_%EC%A0%84%ED%88%AC




병자호란은 진짜 인조가 ㅄ짓만 안했어도 조선이 충분히 이기는 전쟁


인조가 선조처럼 제대로만 도망갔으면 오히려 청태종이 역관광 당할뻔 했음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중원에 들어가는거 실패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테고 동북공정 서북공정 같은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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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제국 17-10-11 11:42
   
mymiky 17-10-11 12:10
   
왜란은 4월인가? 5월에 일어났습니다.
상대적으로 선조는 따뜻한 날씨에 가벼운 복장으로 도망가기 수월했지요.

반면 인조는 12월-1월 한겨울에 싸워야 했고요.
추위도 도망가는데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또한, 생각해야 하는게,

인조가 항복하기로 한 것은, 강화행궁이 먼저 적들에게 함락당했기 때문입니다.
강화도에 세자, 세자빈, 정명공주와 왕족, 종친들이 다 적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상

인조 혼자 남쪽으로 도망가는게 성공했다고 해도,
가족들의 생명보존을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다시 서울로 꾸역꾸역 올라가야 할 판입니다;;;

선조는 의주로 도망치고, 함경도에서 장남인 임화군과 순화군이 가토 기요마사에게 잡혔어도,
어쨎든,, 세자 광해군이 안 잡혔기 때문에, 인조보다는 상황이 더 나았습니다.

또한,, 인조가 도망을 잘 간다해도, 청나라가 중원에 입성 못하진 않죠-

사실, 청 태종이 조선에 올 필요가 없었거든요.
똘똘한 도르곤이 조선쪽 정리하라고 맡기면 되는데.. 실제로 그렇게 했고,,

첨부터 청태종이 참전한게 아닙니다.
조선에서의 작업이 47일만에 끝나버렸으니.. 일이 정리가 될때쯤 짠-하고 등장해서
가오도 잡고 만주, 몽골군들 기살리는 쇼도 할겸  겸사겸사 내려온거지..


산해관을 둘러, 내몽골쪽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배를 타고 직접 해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던 청나라입니다.
산해관 통과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뿐이지..

중원입성을 못하진 않았을 겁니다.

조선이 어찌 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명나라 자체 내분이 일어나
이자성의 반란으로 인한 내란으로 명나라가 망하고,
거기에 오삼계가 산해관 문을 열어줘서 청나라가 쉽게 들어간건 있겠지만..

청나라가 조선의 항복 못 받았다고, 중원에 못 들어가지는 않음..
     
납땜질 17-10-11 12:33
   
무슨 홍타이지가 쓸데 없이 조선 침공했다고..ㅋㅋㅋ
당시 명이 후금에 경제봉쇄 제재 때려버린 상황이라
가만히 놔두면 후금 무너지는 상황이었음..
근데 후금이 조선덕에 살아남..
약탈물자랑 노예 오십만 끌고가서 만주 개간 식량생산
솔직한 말로 조선 인조가 삽질 안했으면
명이 안 무너졌을지도 모름
국뽕은 무서운 것임
그리고 청 중원입성은 싸워서 이룬게 아니고
이자성 어부지리로 들어간거임..
그 전까지는 황태극이 대포 맞아 죽고 하는 상황에
산해관 뚫기가 난망한 시절
          
mymiky 17-10-11 12:55
   
명이 왜 안 무너집니까? ㅋㅋㅋ
명은 자기안에서 민란으로 무너진 거예요.

명의 멸망에
조선 인조가 이러쿵 저러쿵- 인조랑 상관도 없는 일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명나라 자기들 사정임.
인조가 청나라 잘 막으면, 명나라에 이자성이 반란 안 일으킨데요? -.-
왜 이상하게 엮지?
          
촐라롱콘 17-10-11 20:15
   
청군이 오삼계의 도움으로 산해관을 넘어서기 이전에도....

이미 청군은 만리장성구간에서 비교적 약한 구간으로 우회돌파하여
장성 이남에 출몰하여 마음껏 약탈함은 물론 수 만~ 수 십만의 포로들을 끌고
귀환하기도 했습니다.

이자성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기 이전부터.. 그 당시 청국은 몽골까지 판도에 흡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성을 제외한 야전은 마음껏 휘젓고 다녔습니다.
물론 명나라는 성안에서의 방어를 제외하고 야전에서 설치고 다니는 청군을 제지할
어떠한 여력조차 거의 전무했던 시기였습니다.
     
Marauder 17-10-11 12:59
   
아이러니 한건 그렇게 살아난 세자가 너무 허무하게 죽어버림
          
mymiky 17-10-11 13:06
   
소현세자에게 인조가 벼루를 집어던졌네 어쨌느니 하는건 어디까지나 야사일뿐이고,

[역사저널 그날]에서, 소현세자는 독살이 아니라, 무슨 병?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것과 증상이 똑같았다고,
한의사가 자기는 세자가 독살당한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온적 있음.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있을때부터 잔병치례가 많았던 사람이라, 운없게 고향에서 얼마안되 죽었을수도 있음..

다만,, 소현세자는 그렇다고 쳐도,, 세자의 처자식
강빈과 소현세자 아들들 요절한건, 인조 책임도 있긴 하죠.

어린 손자보다, 장성한 차남에게 물려주는게 약해진 나라를 다시 부흥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정통성에 문제가 될만한 인물들을 처치한거라 생각합니다.
감방친구 17-10-11 19:04
   
명의 산해관이 뚫려버린 것만큼은 아니지만
조선이 치욕을 당한 것은
이리저리 억울한 게 맞습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고
지더라도 삼전도굴욕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원인은
지휘체계의 부실입니다
감방친구 17-10-11 19:12
   
촐라롱콘 17-10-11 20:07
   
[[병자호란은 진짜 인조가 ㅄ짓만 안했어도 조선이 충분히 이기는 전쟁]]
.
.
조선이 승리한 전투는 병자호란 기간을 통틀어 평안도군의 김화전투와 전라도군의 광교산전투
단 두 전투밖에 없는데...전황을 역전시키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조선군의 승리라는 위 두 전투조차도 비록 교전하던 청군에게는 큰 타격을 입히기는 했지만
탄환-무기의 고갈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전장에서 철수해야 했던 불완전한 승리였습니다.

병자호란의 전반적인 전황은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집결하던 각 도의 근왕병들이
남한산성 인근에서 길목을 지키던 청군에게 대부분 패퇴당했고
금성탕지의 요새라던 강화도는 청군이 상륙하고 난 후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청군의 별동대는 남한산성 주변인 경기지역 뿐만 아니라 충청지역은 물론이고
전북 익산지역까지 출몰하며 거의 무인지경으로 휘젓고 다녔지만...
이렇게 경기이남의 삼남지역에 출몰한 청군은 비교적 소수병력규모에 불과했음에도
근왕군으로 대부분의 인원을 차출당했던 삼남지역에서는 1,2천 규모의 청군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쌍령에서 무려 4만병력이 전사하거나 와해되어버린 후의 영남지역에 청군의 말발굽이
미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병자호란에서 전사한 청군 숫자는 총 7천 정도로 파악됩니다.
청군 수뇌부급에서도 청태종의 매부가 전사하는 등 청군의 피해도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은 전사한 전투원만 수 만명에, 사망한 민간인은 줄잡아 전투원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에다가(청군에게 살해된 숫자보다는 엄동설한에 동사와 아사자가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무려 수 십만이 포로로 청국에 끌려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전투에 차출되어 화살받이로 소모되거나
여성들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노리개로 전락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병자호란을 통해 청국은 조선이라는 후방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함은 물론
도리어 조선군과 조선인 포로 등을 동원해서 가도-금주성 전투와 같은 명나라와의 전투에
보조전력으로 이용했습니다.

군신관계를 확립했음은 물론 적어도 청국이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입성하기까지는
조선으로부터 적지않은 식량과 물자를 비롯한 세폐를 제공받았으니....

청국의 입장에서 보면 7천명의 희생으로 조선에게 수 십배에 가까운 인명피해(사망자와 포로)를 입히고
도리어 청군전사자의 몇 배 ~몇 십배의 전투력과 노동력을 충원했으니
병자호란은 청국에게 있어 남아도 엄청 남는 장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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