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조가 [친명배금] 해서 호란이 일어났다고 학교에서 배우는데..
흔히 대중들의 인식속에는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조가 청나라와 친했으면? 전쟁이 안 일어났을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지 많은거 같음;;
그렇다면 왜란은?
일본의 주장대로, 명나라로 가는 길목만 열어줬다면? 조선이 일본과 친하게 지냈다면?
임진왜란이 없었을까요?
아니죠..
흔히 대중들이 왜란의 경우에는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멍멍이 소리인지? 판단을 잘하면서도
이상하게 호란은 전혀 다르게 판단하는게 신기하더군요;;
현 역사학계는 광해군의 이른바 중립외교란게 실체가 모호하고, 거품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대중들에겐 여전히 먹힌다는 것도 신기하고..
인조반정의 명분이 친명배금이였다고 해도,
그거야 자기집 안방에서나 통하는 내부단속용 프로파간다인 것이고,,
광해군때 외교라인이 그대로 인조때도 이어졌고
광해군 때와 정책면에서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이 아무리 여진족 오랑캐라고 씹어도, 그거야 우리집 방안에서 씹는거고
밖에선 후금이 계속 크고 있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였고,
결국엔 항상 후금이 해달라는거 안해준 것도 딱히 없음.
형제지국 되자고 해서 되었고, 군신지국이 되자 하는데 반대한건 있겠지만
그조차, 옛 고려왕조가 송나라와 금나라 모두 형식적인 사대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는거란 주장까지 나옴.
남한산성에서도 척화, 주화가 싸우는거처럼 보여도,,
관료들 대다수는 청나라와 유화책으로 나가야 한다는게 중론이였고( 자기들도 살아야 하니까..)
척화파들은 소수임.
이미, 항복하자는 견해가 우세였고,
엄밀히 말해, 척화할껀지? 주화 할껀지? 싸우는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항복 해야되는건 알겠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지? 그들이 요구하는 항복 조건은 뭔지? 조율=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보냄.
청나라는 명과 교역단절과 몽골와 명나라 전쟁포로들로
즉, 만주에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가는데 먹을거리와 생필품이 극히 모자랐던 상황,
해결책으로 내어놓은게 최대한 조선에서 뜯기로 하고, 약탈하는거,
형제지국이니 군신관계니 뭐니.. 다 목적은 중원입성 전에
최대한 조선에서 뜯어내는 것임.
당시 청나라는 지속적으로 조선에 쌀을 요구해옴.
쌀을 삥뜯기면, 조선인들은 뭘 먹고 살아야 함? 풀이라도 씹을까? -.-;;
안그래도 조선인들은 변방을 어지럽히고,
험악하고 사나운 여진족들을 오랑캐라고 싫어했는데,
백성들이 청나라 사신단에 돌을 던졌다는 실록속 에피소드가 다 여기서 나온거..
지금도, 북한에 퍼준다고 하면 경기나시는 뒷목 잡으시는 어른들 많으심;;
이런 분들을 선동하는게 강경노선의 안보팔이 장사치들.
조선은,
그냥 호구같이 알아서 상납하며 삥 뜯기느냐?
몇대 쳐맞고 삥뜯기느냐?의 차이가 있었을뿐.
그래도 전쟁보다는 자진 상납이 낫지 않냐고 하신다면,,
오랑캐들한테 공짜로 퍼준다고 백성들에게 먼저 인조정권이 밟히기 일보직전임.
전쟁보다는, 대화로써 핵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
빨갱이라고 욕하시는 분들을 보는 것과 비슷함..
이래도 욕듣고, 저래도 욕들을 상황이고, 된똥이냐? 설사똥이냐? 선택여부가 있을뿐.
인조가 암군이라고 욕먹는데.. 이 양반도 참 재수가 옴 붙었을때 왕이 되어
당시에도 고생, 죽어서도 불명예를 얻음...
그렇다고 한게 아예 없는건 아니고,, 광해군의 대동법(정작 광해군 본인은 싫어했지만..)
자기죄를 속죄하며, 죽는 그날까지 전후복원에 전력을 다한 왕임..
인조, 효종때 대동법 팍팍 밀어주고 서포트 해줌.
민생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 왕임.
대중들에겐 잘 안 알려져 있지만..내정은 광해군 치세보다 더 잘했다는 평을 학계에선 받고 있고
근데, 대중들은 워낙 호란 이미지와
소현세자 미스터리한 죽음에 관련되었다는 속설에 의해(과연?)
걍. 나쁜놈 이미지만 잔뜩 남은게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