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사·고대 묘제는 중국의 중원지역과 마찬가지로 지하에 토광을 굴착하여 시신을 안치한 다음 토광만메운 平墓이거나 토광 상부까지 흙을 쌓은 封墳墓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馬韓 지역과 중국의 吳越 지역, 일본 彌生時代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지상의 분구에 시신을 안치하는 墳丘墓가 성행하였다. 이 가운데 중국의분구묘는 土墩墓라 불리는데 신석기시대 湖熟文化의 주거용 土墩에서 출발하여 良渚文化 후기부터 무덤으로사용되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 분구묘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분구묘가 중국의 토돈묘와 같이 독립적으로 발생하였다면 중국 토돈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독자적인 발생 배경이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는 이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구조적으로 상통하고 시기적으로 앞선 중국 토돈묘가 그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의분구묘가 중국 토돈묘에 기원을 두었다면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어려움, 정치·사회적 혼란, 양자의 복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주민의 이주가 이루어짐으로써 파급되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 가운데주목되는 것은 秦 시황제에 의해 徐福 일행이 2차에 걸쳐 파견되었던 역사적 사건이다. 일행 가운데에는 秦의 멸망등으로 인해 귀국 대신 파견지 정착을 선택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며 자연스럽게 중국의 토돈묘 전통에 따라현지에서 분구묘를 축조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後漢 환제와 영제 시기의 사회 혼란에 따른 주민 이주도 토돈묘의 파급을 촉진 시켰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한국과 일본 분구묘의 기원이 중국 토돈묘에 있을 가능성과 그 배경에대해 조망해 보았는데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중국 토돈묘 축조 세력의 이주 가능성이나 중국토돈묘의 영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고고학 자료들이 다양하게제시되어야 할 것이지만 출토유물에 있어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이는 중국 이주민의 세력 규모나 성격등의 문제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지만 당시 항로상의 요충지인 산동지역 토돈묘들이 최근에야조사되기 시작하였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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