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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5권,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3월 13일(신축) 1번째기사
정사를 보다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고해 보면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도읍한 데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기 그 나라에 세운다면 될 것이다.”
“제사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王朝)의 전장(典章)·문물(文物)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增減)하였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국이 정립(鼎立) 대치(對峙)하여 서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5권 21장 B면
【영인본】 3책 64면
【분류】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삼국사기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야는 빠져있네요. 그래도 삼국 왕조에 대해 공평한 행보를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