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종이 생산 방식은 생산량 수량도 한계가 있고 굉장한 노동을 필요로 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종이가 습기등에 취약해서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에 20만권이란 수량은 한 새대의 기록이 완전히 말살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20만권의 책을 수거 할려 하면 이에 수반되는 행정력이나 자금등을 고려해 보면 얼마나 큰 국책사업으로 진행되었는 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저렇게 하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조선을 강점해서 안정화를 하기위한 행정력이 절대로 필요한 시기에 저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일제가 얼마나 저일에 매달려 있었는 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 일의 한국인 수장이 이병도 였고요. 그래서 이병도의 학설이 옳다 안 옳다가 문제가 아니라 그의 흔적은 한국 역사 학계에서 완전히 지워야 할 존재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대로 풀어가는 과정이라 봅니다.
분서 갱유 이후의 금문(구전으로 전해진 것을 정리한 글)과 고문(발굴로 구한 옛날 책의 글)의 논쟁을 보면 시사점이 많습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진 금문에 비하여 옛날 책이라는 현물이 존재하는 고문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고문 발굴 자체에 위조와 조작이 많이 있어서 의심스러운 건 오히려 고문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실증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고문 중에서도 조작이 많이 의심되는 고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금문에 가까운 재야사관에는 기억 실수와 구전에 따른 오탈자가 많기 때문에 이걸로 비판아닌 비난을 실증사학에서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