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하여 말한다. 신라 고사(古事)에는 “하늘이 금궤(金櫃)를 내려 보냈기에 성(姓)을 김씨(金氏)로 삼았다”註 210註 211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듣건대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로 성을 삼았고, 이는 신라 국자박사(國子博士)註 212 설인선(薛因宣)註 213이 지은 김유신의 비문註 214과 박거물(朴居勿)註 215이 지었고 요극일(姚克一)註 216이 쓴 삼랑사비문(三郞寺碑文)註 217에 보인다. 고구려는 또한 고신씨(高辛氏)註 218의 후손이라 하여 고씨(高氏)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 《진서(晉書)》註 219의 기록에 보인다.註 220 옛 사서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모두 부여에서 나왔다”註 221고 하며, 또한 “진(秦)註 222·한(漢)註 223의 난리 때, 중국 사람이 해동(海東)註 224으로 많이 도망왔다”고도 한다.註 225 그렇다면 삼국의 조상들은 옛 성인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어찌하여 그렇게 오래도록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는가? 백제 말기에 와서는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 많았으며, 또한 대대로 신라와는 원수를 맺고, 고구려와는 화친을 계속하면서 신라를 침공하여, 유리한 조건과 적당한 기회만 있으면 신라의 중요한 성과 큰 진을 빼앗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이른바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고 이웃과 잘 사귀는 것이 나라의 보배註 226라는 말과는 달랐다. 이에 당나라의 천자가 두 번이나 조서를 내려 백제와 신라 사이의 원한을 풀기 위하여 노력했으나,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면서도 안으로는 이를 어겨 대국(大國)에 죄를 졌으니, 그들이 패망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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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하여 말하다
삼국사기 > 百濟本紀 第六 > 의자왕(義慈王) > 논하여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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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하여 말하다
論曰. 新羅古事云, “天降金樻, 故姓金氏.” 其言可恠校勘 032而不可信, 臣修史以其傳之舊, 不得刪落其辭. 然而又聞, 新羅人自以小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見新羅國子愽士薛因宣撰金庾信碑及朴居勿撰婔克一書三郎寺碑文.. 髙句麗亦以髙辛氏之後, 姓髙氏 見晉書載記.. 古史曰, “百濟與髙句麗, 同出扶餘.” 又云, “秦·漢亂離之時, 中國人多竄海東.” 則三國祖先, 豈其古聖人之苗裔耶. 何其享國之長也. 至於百濟之季, 所行多非道, 又丗仇新羅, 與髙句麗連和, 以侵軼之, 因利乗便割, 取新羅重城·巨鎮不已, 非所謂親仁善鄰國之寶也. 於是, 唐天子再下詔平其怨, 陽從而隂違之, 以獲罪於大國, 其亡也, 亦冝矣.
校勘 032
이름 : 薛因宣,朴居勿,婔克一
서명 : 金庾信碑,三郎寺碑文,晉書
국명 : 扶餘,秦,漢,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