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신라인이 필사한 것으로 밝혀진 두루마리 모양의 ‘판비량론 ’.그동안 일본에선 일본인이 신라에 가 써온 것으로 보고 중요문화재(보물급)로 지정했다.
1200여년 전 신라인의 손에 의해 씌여져 일본 열도에 건너갔던 한권의 두루마리 불경이 일본가나문자의 기원을 밝혀줄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3일 그동안 일본인이 베껴왔을 것으로 추정되던 원효의 ‘판비량론(判比量論)’이 신라에서 적힌 문서이며, 일본 가타카나 문자가 한국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芳規) 교수의 주장을 관심깊게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이날 후지모토(藤本幸夫) 도야마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 “한자를 읽는 보조수단으로서의 가타카나의 원형이 한국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며 “신라의 문헌에서 가타카나와 비슷한 문자가 발견된 것은 귀중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전날 교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도 10여명의 일본 기자들은 ‘가타카나 한국 유래설’에 대해 쉴새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사실, 이번에 신라의 문서로 확인된 ‘판비량론’은 그동안 일본인이 신라에 가서 베껴온 것으로 추측됐었다. 일본이 이를 중요문화재(보물급)로 지정했던 것도 그 때문. 그러나, 오타니 대학의 미야자키 겐지(宮崎健司) 교수가 97년 종이의 지질(紙質)과 당시 정황을 살펴볼 때 신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됐고, 고바야시 교수는 이번에 신라인의 각필을 확인함으로써 이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판비량론’에서는 수십가지의 각필이 발견됐다. 특히 한자 발음을 읽기 위한 ‘문장부호’처럼 생긴 각필이 다수 발견됐는데, 이는 이후 일본에서 발견되는 각필 문장부호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것들이다. 일본인이 베낀 책이라면 신라식 각필까지 베낄 리가 없다는 논리다.
일본 가타카나 문자의 기원 문제와 관련,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한자의 발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부호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뿌리 근(根)자 옆에 쓰인 ‘マリ’라는 글자다. 이 글자중 ‘マ’자는 부(部)자의 오른쪽 부(우부방) 부분을 줄인 것이며 ‘リ’자는 ‘리(利)’자를 줄인 것 같다고 고바야시 교수는 추측했다. 이중 ‘リ’자는 현대 일본 가타카나에서도 ‘리’로 읽는다. ‘부리’라고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는 주장이다. 또 한 자는 ‘공(共)’자 옆에 적힌 ‘궁(宮)’이라는 한문자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삼국사기에 보면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이 불경을 신라 말로 읽었다는 글이 있는데, 각필의 발견되면서 이 말이 설총이 신라어로 각필을 사용, 불경을 풀이한 것이라는 뜻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발견된 각필이 정말로 ‘부리’라고 읽은 것인지, 또 정말로 가타카나의 기원인지는 아직 알수 없다는 것이 고바야시 교수의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현대어 ‘뿌리’는 15세기때까지만 하더라도 ‘불휘’라고 읽혔기 때문에, 과연 이 글자가 ‘부리’라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설명이다. 또 신라시대의 언어를 추측하기에도 실례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 역시 한계점이라고 고바야시 교수는 스스로 지적했다.
고바야시 교수의 주장에 대해 국내 학자들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는 “뿌리 근(根)의 15세기 발음은 ‘불휘’이기 때문에 신라시대에 ‘부리’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고, ‘マ’를 부(部)의 약자로 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남풍현 한국구결학회 회장은 “신라시대에 뿌리를 ‘부리’로 읽었을 가능성은 없지만, ‘マ’를 부(部)의 약자로 쓴 사례는 여러 차례 나온다”며 “각필 연구의 권위자인 고바야시 교수가 새로운 자료 발굴을 통해 일본 가타카나의 신라 전래설을 주장한 것은 매우 흥미롭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신문에 소개된 ‘판비량론’의 필체가 매우 활달하고 훌륭하다”며 “신라인의 붓글씨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비잔틴 제국에 지배 받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사산왕조가 대립 하고 있었지
신라 왕족은 흉노의 후예...진나라때 장성공사에 동원되기 싫어서 집단으로 한반도로 이주 해온 놈들입니다...마한,변한,진한....역시나 진한쪽에 흉노놈들이 흘러 들어 와서 정착을 했는데 농사를 짓지 못해 현지 토착민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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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밌는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백제 고구려의 등살에 가장 국력이 약한 신라가 당나라 이세민에게 찾아 가 도움을 요청하면서 뭐라 말한지 아십니까? 나중에 무열왕이 된 김춘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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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우리는 한 줄기에서 나왔습니다...선비족인 당나라 태종 이세민..그리고 나중에 신라 태종이 된 김춘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고 역적 김춘추~~흉노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