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건씨 한국의 성씨와 족보
혈연과 지연을 강조하는 우리의 뿌리 의식은 `족보로 대표되는 성씨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족보나 성씨가 상당부분 왜곡돼 있다면(?).
30여년동안 한국 성씨 연구에 매달려온 이수건 박사(69·영남대 사학과 명예교수·사진)는 최근 펴낸 신간 `한국의 성씨와 족보를 통해 이같은 가정을 구체적 물증을 통해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대 출판부가 펴내고 있는 `한국의 탐구 25번째 기획물.성씨 연구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는 이 박사는 책을 통해 일반화된 성씨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한국의 성은 대부분 중국과 관계도 없으며 발생 과정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중국과 동일시 하는 것이 잘못된 출발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신라시대 박·김·최·정·손씨 등 9개성과 왕실성을 제외하면 대다수 성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으며 몇몇 특수성을 제외하면 동성의 이본(異本)은 다른성과 같다고 강조한다.
그는 "조선초인 16세기 인구의 40%가 무성층이고 17세기까지 양반층은 10%에 그쳤다"며 "일부다처제 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서얼들의 향방을 고려할때 문벌과 반상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양반의식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한국의 성씨와 족보를 통해 200여개를 넘는 성씨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또 그 왜곡 과정을 세종실록지리지의 `실지 등 문헌 연구를 통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한국 성씨가 거친 왜곡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조선조 뿌리를 내린 `유교의 영향을 우선 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조선시대 역성혁명을 이룬 양반사대부의 대다수는 고려때 향리출신들이며 이들은 문벌의식과 신분적 특권을 강조하기 위해 족보 편찬때마다 향리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조상과 본을 바꾸는 행위를 거듭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후손 또는 신흥세력들이 족보편찬에서 본관을 바꾸거나 가계를 조작하는 일이 심해졌다는 것.이 박사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성리학에 경도되어 선조때 만들어진 족보에 대해 진위 문제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 비판의식도 이러한 성씨 왜곡에 한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조사된 우리의 성씨는 274개에 본관은 3천435개 정도.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의 2천568성과 10만여개가 넘는 일본에 비해서는 적은 수다.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자료인 조선초 `실지와 `여지에 나타난 성씨가 250여개 안팎인 것을 보면 조선조를 거치면서 성씨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박사는 "1909년 민적법이 생기면서 비로소 전 국민이 성을 갖게 되었으며 당시 호적담당 서기가 한자의 획을 잘못 그으면서 생긴 희성과 본관도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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