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3-14 00:55
[한국사] [펌] 33인, 그들이 정말 ‘민족대표’일까
 글쓴이 : 송구리
조회 : 730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icat=&table=c_booking&uid=285

기미독립선언은 2·8독립선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독립선언의 배경에 일찍부터 중국과 노령으로 건너가 개인의 영달을 포기한 채 목숨 내놓고 활약했던 선각 항쟁가의 결정적인 공헌이 있다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1918년 무오년 11월, 독립운동가 39명이 망라된 조선 최초의 독립선언문을 내놓았다. 이른바 ‘무오독립선언문’이었고 정식 명칭은 ‘대한독립선언문’이었다. 2·8독립선언문은 이 선언문을 전범으로 삼은 것이다.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하게 하라.’고 요구한 이 선언문은 2천만 동포에게는 육탄 혈전을 주문했고 일제에 대하여는 무력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일면 선전포고문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기미독립선언문이 손병희와 최남선의 의도로 온건하게 바뀌면서 내세운 명분이 비폭력 평화주의라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말대로 과연 조선의 민중은 피를 흘리지 않았는가? 과연 누구를 위한 비폭력이고 무엇을 위한 질서 존중이었는지를 회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선언서에 서명한 대표 33인을 민족 대표라고 여기는 사람도 그 시대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나약성과 타협성이 있었다. 물론 그들이 무단정치의 공포 분위기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선언서를 작성 배포한 것은 매우 용기 있는 구국 행위였다. 그들의 용감한 활동이 전국 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운동 벽두부터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약속한 시간과 장소인 오전 10시와 탑골공원을 일방적으로 바꿔 버렸다. 그들의 말로는 폭동의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사후 공판의 변론에서 유효하게 작용했다. 그들은 오후 3시, 명월관이 이름을 바꾼 요릿집 태화관에서 모였다. 그들은 민중의 동향이 예상보다 거칠어지자 스스로 운동의 주도권을 놓아 버렸다.


그들 중의 다수는 국제 정세를 읽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런 나머지 그들은 적국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정도에 그쳤고 미국의 도움을 과신하는 타협적이고 의존적인 자세를 보였다. 특히 33인의 대표 격으로, 장소를 태화관으로 변경한 손병희는 이미 러일전쟁 때 ‘일본이 패망하면 동양이 파멸한다.’고 생각하여 일본에 군비 일만 원을 헌납한 일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운동의 주체인 민중에 대한 이해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민중은 자기들처럼 무슨 일을 흉내나 내고 그만 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실제로 그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도 않은 채, 한용운의 간단한 취지 설명으로 대신하고 곧장 요리를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포승에 줄줄이 달려가는 모습을 민중이 본다면 얼마나 감격할 것인지를 헤아리는 두뇌도 없었다. 그들이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인력거 대신 자동차를 요구하자, 일본 헌병의 일부는 혀를 찼고 나머지는 비웃었다고 한다. ‘사의 천박한 학생과 군중이 모였으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손병희)’ ‘무식한 자들이 불온한 일을 할 것 같아서 (박희도)’ 장소를 변경했다고 그들은 법정에서 말했다.


이와 같은 점으로 볼 때, 그들 33인을 민족 대표라고 존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을 가리켜 더 이상 민족 대표라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국내 종교계 대표라는 칭호가 적합하다.


3·1운동의 주체는 중국 독립 운동가들과 방방곡곡의 초동급부들이었다. 그들은 비폭력 타협주의의 한계를 깨고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했다. 그들은 탄압에 대한 반발에서 그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제국주의의 폭압적 본질을 피부로 느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3·1운동이란 용어에도 문제가 있다. 조선인들은 3, 4월 두 달에 걸쳐 200만 명이 시위에 가담했고 7,500명이 생명을 조국에 바쳤다. 33인을 보고 비웃었던 일본 헌병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바로 민중들이었다.


민중은 자발적으로 뭉쳤고 그 뭉친 이들 중에서 지도자가 나왔다. 33인은 길어야 3년의 옥고를 치렀지만 학생과 농민 지도자들은 15년씩이나 되는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동학란이 아니라 갑오년 항쟁이라면, 3·1운동은 최소한 ‘기미년항쟁’으로 용어 변경을 해야 마땅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Total 20,02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9110
19670 [북한] (기밀)비밀 문서들의공개로이젠 드러나는6.25비극05편 돌통 01-23 728
19669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 돌통 05-17 728
19668 [북한] 악의신.이오시프 스탈린.독재의 최고봉.14편. 돌통 11-16 729
19667 [북한] (심화과정)한반도 현대사 정확한 팩트 11편 돌통 08-29 729
19666 [한국사] 환단고기... (14) 고이왕 02-17 730
19665 [한국사] 삼한사의 재조명이란 책 질문입니다. (4) 밑져야본전 08-13 730
19664 [한국사] [ FACT ] 최근에 논란중인 고구려 영토 (3) 아비바스 11-19 730
19663 [한국사] [펌] 33인, 그들이 정말 ‘민족대표’일까 송구리 03-14 731
19662 [한국사] 지도 (3) 도배시러 11-10 732
19661 [한국사] 무얼 탐구해야 할까 감방친구 11-27 732
19660 [북한] 여순사건과제주4,3사건등.이승만은왜학살을명령했 06… 돌통 05-29 732
19659 [한국사] 묘제로 본 고대 우리 민족과 이웃 민족 (5) 윈도우폰 03-31 732
19658 [한국사] 한.미.프.이 4개국 무공훈장을 받은 김영옥 미 육군 … mymiky 02-20 733
19657 [한국사] 단편적인주장은하지만. 글(역사서)은 못쓰겠다 (2) 바토 06-11 733
19656 [한국사] 독립군에 체코군단이 무기를 댄 배경? - 미 특사 접… mymiky 02-20 734
19655 [한국사] 고구려에 관해서 질문드립니다... (5) Friendly 12-18 734
19654 [북한] 김봉규의 유튜브에서 김부자, 담당통역을 한 고영환… 돌통 02-10 734
19653 [기타] 여러 잡생각들 나열 (2) 관심병자 11-12 735
19652 [세계사] [FACT] SBS - 과학박사 궤도가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 아비바스 11-26 735
19651 [한국사] 밑에 링크해주신 역사글을 보다... 하고싶은말 Marauder 06-05 736
19650 [기타] 댓글 보고 좀 많이 짜증 나서 글 남깁니다. (6) 화톳불 11-03 736
19649 [북한] 북한은 광복을 '쟁취'했다는 이유는.? 04편. 돌통 06-06 736
19648 [북한] (심화과정)한반도 현대사 정확한 팩트 10편 돌통 08-26 736
19647 [한국사] 감방친구님의 의문에 대한 답글(2) (17) 독산 03-11 737
19646 [북한] 정치적이지 않고 오직 (진실,사실적인 김일성 인생,… 돌통 04-30 737
19645 [기타] 가방끈 타령하는 사람 출몰 (6) 상식4 02-17 738
19644 [북한] (심화). 현대사 팩트..01편 돌통 08-19 738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