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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14 11:13
[한국사] 백제 건국 과정의 재구성 1
 글쓴이 : 지수신
조회 : 1,397  

(앞 글에서 이어집니다)

 

앞의 고찰을 통해 優台가 곧 仇台이고,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성씨는 계보에 따른다면 북부여의 왕성인 해씨이지만, ‘후예’ ‘서손이라는 표현에 깃든 모호성은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조 비류왕을 위한 기록인 B12세기의 삼국사기 편찬자가 보았던 모종의 사서인 BB에서 나왔다. BB가 비류 당대 기록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후대에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견강부회가 있었을 가능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즉 비류의 아버지가 우태라는 인물이었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우태와 비류의 성씨가 그 조상이라는 북부여왕 해부루를 따라 해씨였을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우태는 실제로 북부여왕 해부루와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태-비류 父子의 성씨가 무엇이었는지는 일단 공란으로 남겨두고, 이제까지의 고찰을 바탕으로 백제의 건국 과정을 재구성해보자.

백제의 건국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있는 사료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A에서 B로 이어지는 부분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A의 경우 앞서 밝혔듯이 사건의 시점이 명확하지 않고, 특히 온조가 십제를 건국한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실제로 온조왕대에 일어난 일인지 의자왕대에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A에서 비류 온조 형제의 탈고구려 이후 십제의 건국 이전까지의 내용과, B에서 비류 온조 형제의 탈고구려 이후 내용을 종합해 보면 백제 건국의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부분을 재인용한다.

 

A-4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A-5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살고자 하니 열 명의 신하가 간하였다.

이 강 남쪽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수(漢水)를 띠처럼 띠고 있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으니 이렇게 하늘이 내려 준 험준함과 지세의 이점은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여기에 도읍을 세우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彌鄒忽)로 돌아가 살았다. 온조는 강 남쪽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이때가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서기전 18)이었다.

 

B-2

이에 비류가 동생 온조에게 말하였다. “처음 대왕께서 부여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우리 어머니가 가산을 내주어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위업을 도와주었으니, 어머니의 조력과 공로가 많았다. 그러나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나라가 유류에게 돌아갔다. 우리가 공연히 여기에 있으면서 쓸모없는 사람같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머님을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살 곳을 선택하여 별도로 도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라 하고,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이쯤 왔으면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흔한 관념과 달리 A-4/A-5B-2가 모순되지 않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두 기록은 같은 사건에서 각각 다른 부분을 떼어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곳은 A-5에서 온조와 함께 한산의 부아악에 왔던 비류가 미추홀로 돌아갔다고 한 부분이다. 비류가 미추홀로 돌아갔다는 말은, 비류와 온조가 처음엔 미추홀에서 거주하고 있다가 한산의 부아악을 살펴보러 나간 사실이 A에서는 생략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부분의 원문을 확인해 보면 역시 자를 쓰고 있다.

 

A-6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濵, 十臣諌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髙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冝乎.” 沸流不聽, 分其民, 弥鄒忽以居之.

 

이제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 삼국사기 및 중국 사서의 기록을 종합하고, 정황에 대한 추론을 덧붙여 백제의 건국 과정을 재구성해 보기로 한다. 이하 기록의 종합과 정황의 추론에 따른 재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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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태의 아들 비류는 비록 고구려의 왕자 신분이었으나, 주몽의 친아들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왕위를 세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同母弟, 고구려 주몽왕의 아들 온조왕자를 설득하여 함께 탈고구려를 감행하였다. 온조왕자 또한, 북부여에서 온 유리왕자 세력으로 인해 자신이 아버지 주몽왕의 후계자가 될 수 없음을 이미 깨닫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비류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는 졸본 지역에서 아주 유력했던 연타발 가문의 상속자였기 때문에, 그들과 얽혀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소서노 가문의 지도자인 비류의 결정에 복종하여 탈고구려에 동참하였다. 온조 또한 오간(烏干마려(馬黎)등 열 명의 신하로 대표되는 추종자 무리를 거느리고 합류하였다. 소서노계 난민들의 대행렬은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남하하여 고구려 영역 밖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이 험난하고 기나긴 여행 끝에 마침내 바다를 건너가서(濟海)’ 자리잡은 장소는 미추홀이라는 바닷가 지역이었다. 소서노계의 지도자 비류는 미추홀이 장차 바닷길을 따라 세력을 확장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여겼다. 그래서 마침내 미추홀을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을 칭하였다. 비류왕은 자신의 영도에 따라준 졸본 지역 출신 일백 집안(百家), 바다를 건너는(濟海) 고된 여정을 마다하지 않으며 의리를 지켰음을 기념하여 국호를 百家濟海百濟라 하였다.

어느 날, 신생 백제국의 왕 비류는 2인자인 同母弟 온조와 함께 부하들을 대거 거느리고 순행을 떠났다. 장차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탐색 작업의 일환이다. 일행은 한산(漢山)’이라는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일행은 주변의 형세를 탐문하고 부아악(負兒嶽)이라는 봉우리에 올라 주변 지형을 살핀 후, 미추홀로 귀환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로, 2인자 온조가 천도를 주장하였다. 바닷가인 미추홀에서는 넓은 농지를 확보할 수 없으므로, 부국강병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읍을 한수(漢水) 남쪽의 평야지대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비류의 생각은 달랐다. 도읍의 조건은 외적으로부터 天險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바닷길을 통해 사방으로 진출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좋은 곳이어야 하며, 미추홀이 바로 그런 장소라는 것이다. 비류는 먼저 고구려에서 가져온 선진문물로써 마한의 소국들과 교역하여 부를 축적함과 동시에 신뢰와 영향력을 쌓은 후, 장차 영향권의 소국들을 규합하여 마한왕의 자리를 탈취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해운 교통이 편리한 미추홀이 최적의 장소라고 여겼다.

반면 온조는 친아버지인 고구려왕 주몽과 같은 방식으로, 강한 군대를 양성하여 주변의 나라들을 병합하며 차근차근 영토를 넓혀 가고자 하였다. 그러려면 우선 농경에 힘써야 했고 넓은 평야가 필요했다. 주몽의 아들 온조에게 있어서는 어려서부터 보아 온 아버지의 방식이 正道였고, ‘대업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계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온조는 고구려에서 가지고 온 선진 군사기술이라면 마한 지역의 정복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북쪽 지역 순무 도중에 목격한 한수(漢水) 이남의 평야지대는 농경에 힘쓰며 부국강병을 이룩하기에 더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온조의 눈에 비류는 그런 하늘이 내린 땅을 버려두고, 바닷가에서 헛된 꿈이나 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비류에겐 온조의 방식은 무모해 보였다. 이미 마한왕 지배하의 수많은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는 이 남녘의 낯선 땅에서, 이제 막 자리잡은 난민 주제에 대체 어느 세월에 부국강병을 달성하고 정복국가를 건설한다는 말인가?

한줌의 유이민으로 마한이라는 거대 세력을 정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마한 속에 녹아들어 스스로 마한이 된 후 마한을 지배하는 것이다. 고구려 주몽왕이 행인국이나 북옥저등의 주변 나라들을 힘으로 지워버리며 영토를 확장한 것과 같은 방식을, 마한이라는 거대한 터줏대감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이곳에서 시도하려다가는 대업은커녕 어렵게 세운 나라가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또한 온조가 탐내고 있는 한수(漢水) 이남의 평야는 농경에는 좋지만 북쪽과 동쪽에서 오는 적의 침략을 정면으로 받게 되는 곳이다. 비류가 보기에 그런 곳에 도읍하는 것은, 당장은 이로울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크므로 피해야 할 일이었다.

두 사람의 의견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온조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오간(烏干마려(馬黎)등 열 명의 신하로 대표되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미리 점찍어 둔 한수(漢水)이남의 평야 지대로 향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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