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5-27 00:16
[한국사] 조공과 공녀(수치의 역사)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587  

조선은 명나라 신하국으로 편입된 탓에 조공은 의무였다.

조공은 일방적 상납이 아니라 교역형태를 띤다.

공물을 주고 답례품을 받는 방식이다.

capture_13.jpg



말과 은, 사냥용 매, 인삼 등을 건네고 비단을 챙겼다.

이 때문에 양국 대외관계는 실리 외교라는 지적이 있다.

조선은 단순히 굴욕적인 조공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공 물자만 보면 무리한 평가는 아니다.

문제는 무수한 여성이 공녀로 희생됐다는 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영은문(현재 독립문)이 조공 잔혹사를 상징한다.

은혜로운 중국 사신을 영접한다는 뜻으로 세운 곳이다.

공녀 사신은 압록강 인근 의주에서부터 초호화 대접을 받는다.

정승급 관리가 안내하고, 주요 이동로마다 환영행사가 펼쳐진다.


영은문에 도착하면 왕이 직접 영접한다.

왕궁으로 가는 길 주변은 비단이나 색종이로 장식하고 광대들이 춤을 춘다.

왕은 궁에서 사신과 맞절하고 명나라 황제 칙서를 수령한다.

상당수 사신이 조선 출신 내시인데도 왕은 깎듯이 예의를 갖춘다.

칙서를 가지고 온 사신이라고 해서 칙사로 불렀다. 칙사대접의 유래다.

1~2개월 걸리는 공녀 차출 기간에 전국 혼인 금지령이 내려진다.

딸을 둔 백성은 공포에 떤다. 13~25세 미혼녀가 선발 대상이다.

당사자들은 얼굴에 생채기를 내거나 뜸으로 헐게 하는가 하면 

승려가 되기도 한다.

공녀를 피하려는 고육지책이다.

신체 훼손이 적발되면 중형을 받고 전 재산을 몰수당한다.

6.jpg



칙사에게 꾀병을 부리다 퇴짜맞은 여인의 부친이 관직 박탈이나 

귀양 처벌을 받기도 했다.

예비 심사를 통과하면 명나라 복장과 화장 테스트를 거쳐 최종 선발된다.

영빈관에서는 왕과 왕비가 나와 환송식을 연다.

이때 친인척과 구경꾼은 울음바다를 이룬다.

황제 공녀와 별도로 칙사 개인에게 끌려가는 여성도 많았다.

이들은 명나라 고관대작의 성 노리개로 상납된다.

공녀는 태종과 세종 집권기에만 공식적으로 114명이 끌려갔다.

역할은 궁녀와 무수리, 요리사, 무희 등이다.

명나라 영락제가 데려간 권 씨 등 궁녀 8명은 참극을 겪는다.

권씨는 탁월한 미모에 중국어 실력을 겸비해 총애를 받았다.

권씨는 궁궐 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으나 3년 만에 돌연사한다.

이는 피바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동료 공녀인 여미인이 질투해 독살했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영락제는 여미인을 불 고문으로 죽인다.

공녀 임씨와 정씨는 자결하고 황씨와 이씨는 처형됐다.

한씨는 당시에는 화를 면했으나 영락제 사망 때 순장됐다.

병에 걸린 최씨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공녀 8명 중 최씨만 살고 7명이 어린 나이에 모두 죽은 것이다.

독살설은 나중에 가짜로 밝혀진다.

명나라 궁녀가 여미인에게 동성애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데 앙심을 품고 무고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락제는 무고 등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형하도록 했다.

이때 환관과 비빈 등을 합쳐 3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조공 사신의 횡포도 골칫거리였다.

요구 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뇌물로 달래야 했다.

1429년 칙사 귀국 때 뇌물 분량이 200 궤짝에 달했다고 한다.

궤짝 당 인부 8명이 따라붙었고 운반 행렬이 수 km에 달했다.

뇌물을 조달하느라 나라 곳간이 크게 훼손됐다.

사신단 수행원이 조선인을 때려죽이는 일도 있었다.



(연합통신 뉴스 인용)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태강즉절 18-05-27 00:46
   
그리 비참하게 끌려가... 황후들이 되고 황자들을 낳고 궁중 권력 투쟁하다 죽고 죽였구먼..ㅎㅎㅎ
그 끌려간 공녀들의 궁중 암투 여파로.. 한족 황후 포함  궁궐에서 2천8백여명이 처형 당했고..
아이고 불쌍도 해라..^^
역사를 비참하게 만드는 재주가 ..진짜 대단하다.ㅎㅎ
     
집정관 18-05-27 01:08
   
끌려간 사람 중 아주 극소수가 그렇게 된 거죠.

조공 자체는 그냥 동아시아의 무역 시스템이라고 보지만 공녀가 끌려간 건 개인적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국산아몬드 18-05-27 01:46
   
고려시대 공녀는 170명인데 그보단 많은 몽고 공녀가 고려에 들어왔어요
그 170명 중에서 10여명이 황후,후비가 된 겁니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8292

조선시데 중국에간 공녀 숫자가 43명 정도밖에 안되요
https://blog.naver.com/2008jsl/70034497191

그리고 조선시대 공녀는 대부분 후궁으로 책봉이 됩니다
극소수가 아닙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61557667&qb=66qF7JeQ7ISc7J2YIOqzteuFgA==&enc=utf8§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TwEnsspySEKssa/Sw%2BGssssstQN-268418&sid=TV2WiefU61LIsq4FH%2BjiUw%3D%3D
               
감방친구 18-05-27 02:19
   
이게 정답
이곳 동아게에서도
여말선초 공녀 사실을 악의적으로 부풀려 패배주의적 역사관을 심어주는 통설에 대해서 비판하는 토론이 여러번 있었고
저 역시 그런 글을 쓴 바 있는데
또 다시 이런 식의 욕 나오는 개대가리 역사썰이 또 게시될 줄은 몰랐네요
의도적이고 악의적이라 할 수밖에
그게 아니면 무식하거나
               
집정관 18-05-27 02:24
   
생각보다 엄청나게 적은 수만 공녀로 갔군요.
                    
mymiky 18-05-27 02:50
   
원의 경우엔 저것보다 훨씬 많음.
히스토리2 18-05-27 02:37
   
이번 게시물의 주제가 슬픈역사 시리즈로 잡아서 게시를  해서 또 역사의 어두운 부분도 다루어 보자는 취지였는데  혹시나 기분이 상하셨다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역사적으로 무지해서 개 ,,, 대가리. 같은. 글을. 인용했네요. 사실. 실재 머리가 좋지도 않습니다 많은 이해와 양해 부탁드립니다
mymiky 18-05-27 02:48
   
현대에는 ㅡ인권ㅡ이란 개념이 있으니.
비인간적이고 수치라고 하지만

당시엔 엄연히 공녀를 외교술의 일부라고 봤고. 
확실히 미인계의 요소가 있는건 사실이죠.

원과 명의 공녀의 차이는

((원의 경우 ))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을 견제하려고
다른 이민족들인  색목인이나 고려. 여진족들을  이용했고

특히. 고려는 부마국으로 원 황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원 황실에 상납하는 인력도 명나라에 비교해 훨씬 많고 광범위 했습니다.

궁인. 환관. 관리들까지 원에 출사하는 경우가 많았음

한문에 밝지못한 몽골인들이라
여러가지 일들을 대신 처리해줄수 있는 실무진들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임.

거기다 몽골의 귀족 상류층들과 혼맥으로 이어져
다문화 가정도 많았던듯하고.

고려말 학자인 이색도
몽골 귀족들 중에 고려의 외손인 자들이 많다고 쓸 정도니.

((명나라의 경우엔))

고려양이 남아있던 명 초기에 한정되어 있고
숫자도 대폭 줄었으며

목적 자체가
명 황제의 후궁 선발이였기  때문에
뽑는순간 모두 후궁입니다.

직책은 명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지만

고귀한 신분이 될 여인들이라서
혼자가는게 아니라
심부름을 해줄 여종과 화장해주고 머리를 빗어줄 수모. 요리사 들도 따라갑니다.

대신. 명의 공녀들은
명 황실초기의 악습이였던 순장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아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Total 20,02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90900
16056 [한국사] 행궁 산책(북한산성 행궁, 남한산성 행궁, 화성행궁, … 히스토리2 05-29 2443
16055 [한국사] 온양행궁 복원도 (1) 히스토리2 05-28 1778
16054 [한국사] 백두산정계비와 간도(동북아재단) 히스토리2 05-28 1157
16053 [한국사] 궁금한게 보통 온조가 백제를 세우고 비류가 인천에… (8) 코스모르 05-28 1326
16052 [한국사] 모용선비의 도읍 변천 시각화 지도 (7) 감방친구 05-28 1930
16051 [중국] 북위 영주의 위치, 수경주 기준 (7) 도배시러 05-28 1630
16050 [한국사] 남한 “왕험성=낙랑군=평양” vs 북한 “왕험성=中 요… (2) 히스토리2 05-28 1421
16049 [한국사] ‘요동의 장통이 낙랑 백성 이끌고 모용씨 귀속설’ … (1) 히스토리2 05-28 920
16048 [한국사] 낙랑군 교치 문제 (15) 감방친구 05-28 1300
16047 [기타] 병자호란 전투들(3) 관심병자 05-28 1405
16046 [기타] 병자호란 전투들(2) 관심병자 05-28 1007
16045 [기타] 병자호란 전투들(1) 관심병자 05-28 1213
16044 [기타] 쌍령전투 관련 (5) 관심병자 05-27 1186
16043 [한국사] 고구려 평양 추적과 거리 기록의 활용 (12) 감방친구 05-27 1915
16042 [한국사] 병자호란에서 요토가 전사했다니....??? 촐라롱콘 05-27 1039
16041 [기타] 성(城) 관련 용어해설 히스토리2 05-27 2735
16040 [기타] 네르친스크 조약: 청과 러시아 히스토리2 05-27 1991
16039 [기타] 러시아의 동방진출과 조선의 나선정벌 히스토리2 05-27 2141
16038 [한국사] 검은모루동굴에서 발굴된 뗀석기 히스토리2 05-27 957
16037 [한국사] 사적(史蹟) 제483호 나주목 관아와 향교 (羅州牧 官衙… (1) 히스토리2 05-27 818
16036 [한국사] 백제 위례성이 충남 천안일까 (4) 히스토리2 05-27 1969
16035 [기타] 고이왕님 복귀를 기원합니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요 (6) 히스토리2 05-27 1051
16034 [한국사] 곡교천에 늘어 선 산성의 비밀 - 아산에만 20개 山城 … (2) 히스토리2 05-27 2290
16033 [한국사] 조공과 공녀(수치의 역사) (8) 히스토리2 05-27 1588
16032 [한국사] '청나라판 300' 한국사 최악의 패전 쌍령전투 (14) 히스토리2 05-27 2188
16031 [한국사] 수치스런 패배의 기억 (1) 히스토리2 05-26 831
16030 [한국사] 백제와 고구려 관계의 미스테리 (30) 감방친구 05-26 3149
 <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