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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5-25 12:18
[기타] 사료중심 실증사학의 한계 [아방강역고-정약용]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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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강역고는 정약용의 실증사학을 대표하는 저술로 꼽히고 있고 기자조선과 삼한 중심의 고대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하는 아방강역고는 장지연의 주석에 의해 재발행 되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에 의해 금서로 규정되고 이후의 개정과정도 상당히 불투명하여 현재 전하는 아방강역고가 정약용의 판본과 같은지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방강역고가 일제에 의해 조작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첫째, 기자조선 중심의 중화사상을 채택하였고, 둘째,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해석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서와 삼국사, 제왕운기 등 다양한 역사서를 참고하고 주석을 덧붙이긴 했으나 기자조선과 삼한 중심의 고대사를 서술함로써 요동 및 요서지역 중심의 강역설을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실증사학은 뜻 그대로만 풀이하자면 기존의 역사서를 탈피해서 지명, 언어, 습속, 고고학 등의 사실 증거를 찾는 과정이 아울러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거치는 과정의 실증사학은 철저히 문헌중심이었다. 따라서 일제에 의한 역사조작도 문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신채호 선생은 이런 사료중심 실증사학에 환멸을 느끼고 직접 만주로 가서 고대사의 실질적인 증거들을 수집하려고 했고 조선상고사에서 중국문헌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삼한 중심의 역사관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한나라 시대 흉노에 투항한 이릉 장군에 대해 있는 그대로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사마천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궁형을 받고 환관이 된 마당에 그 이후에 어떻게 중국 최고의 역사서라고 이야기하는 '사기'를 있는 그대로를 서술할 수 있었겠는가. 다시 한번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는 목이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후 중국역사서는 사관의 '춘추필법'(중국의 업적은 침소봉대하고 실패는 축소하거나 아예 역사기술에서 빼버리는 역사 기술법)에 의한 것이므로 믿을 수 있는 역사서란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신채호 선생은 탄식했다.

 

 

현재는 기자조선은 사장된 주장이 되었고 위만조선설이 정설로 인정받는다. 위만조선의 위치는 매우 중요한데 바로 위만조선이 있던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주장를 하는 주류사학계를 비롯한 학자들은 역시 위만조선의 위치도 한반도에 걸친 것으로 주장한다. 북한학자들과 재야사학계를 중심으로 위만조선이 현재의 요서지역과 난하에 위치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사군 역시 요서와 난하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만조선이 고조선의 강역 일부에 있었으므로 고조선의 강역 또한 현재의 산해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역사학은 유적탐사기술의 발전,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정보 분석, 언어학, 인류학적인 접근 등을 통해서 사실여부를 추론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사료중심의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참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영토가 되어있는 고대사의 주무대는 여러가지 한계로 본격적인 발굴이나 정보수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고대사와 고대사를 서술한 역사서는 이런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료외에는 참고할 것이 적었던 시대적 한계와, 저술될 당시의 정치적 상황, 그리고 개작 또는 증보되는 부분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약용의 이 저술도 1~3권의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기자조선과 한사군을 서술한 중요한 부분의 원본이 실전한 것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부분도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록한 여러 역사서를 열거하였고 그 보기 중에서 취사선택하는 것은 사료적 객관성을 가장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것이 사료중심 실증사학의 한계가 될 수 밖에 없다. 






http://blog.naver.com/easternfleet/220133904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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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6-05-25 18:15
   
고조선의 영역이 고정불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기고조선의 경우 현 요동지역과 요서지역의 일부에까지 영역이 이르렀다는 부분은

당연히 수용가능한 것이겠으나.....

후기 고조선 시기에 이르면 전국시대 연나라-통일 진나라-한나라에 의해 영역이 상당히 축소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한반도 북부를 비롯하여 한반도와 인접한 현 요동지역의 남부까지는 고조선의 영역이 여전히

미쳤겠지만.....

적어도 후기고조선 시기에 이르면 현 요서 지역은 완연한 연-진-한의 중국역대왕조들의 봉건제와 군현제가

시행되었던 중국의 영역이었습니다. 심지어 요양을 비롯한 요동지역 북부일대까지도....

이는 현 요서지역의 대부분과 요동일부지역에 연나라 시기의 전국시대의 철기유물를 비롯하여

당시 중국 계통의 유물이 꾸준히 발굴되는 것으로도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고조선 세력권의 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의 요동-요서지역과 한반도 서북 일대에서 각각 집중적으로

출토된 비파형 동검의 제작시기가 일반적으로 다르다는 것으로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꼬마러브 16-05-26 00:18
   
상고시기 고고학적 유물은 당시의 기록과 함께 출토되지 않는다면 그 유물이 고조선의 것인지 중국의 것인지 동호의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그것이 문헌에 의해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경우에만 권위를 갖게되지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현재 진나라 시기의 만리장성 동쪽 끝인 갈석산은 요서지방에 있습니다. 이 만리장성 바깥은 진나라의 영역이 아니라는 거지요. 주류사학계에서는 이 갈석산을 부정하고 진나라의 만리장성의 위치를 늘리는데 어처구니가 없군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9432&sca=&sfl=wr_subject&stx=%EB%A7%8C%EB%A6%AC%EC%9E%A5%EC%84%B1&sop=and

진나라에서부터 한나라 시대까지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줄곧 이 장성지역 즉 난하지역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요동'이라는 지명은 요하의 동쪽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요하나 난하와 같은 한 '강'의 동쪽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권람이 지은 응제시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조선초기 요동의 위치는 요하의 동쪽이 아니라 대릉하의 동쪽부터를 요동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였습니다. 이는 고구려시기에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만 말하자면 요수 근처에 위치했다는 고죽국의 위치는 현재 장성지역 즉 하북성 지역에 있었다는 데에 중국을 포함한 학계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비파형동검의 주체가 누굽니까??
대한국 16-05-25 20:56
   
잘봤습니다. 어그로꾼들이 요즘많이설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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