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천년의 신라'라고는 하지만 503년 신라의 지증왕이 즉위하면서부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속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립국가의 길을 걸었다고 봐야죠.
무령왕릉 지석을 보면 '영동대장군'이라는 글귀가 나오는데요.
이건 중국 입장에서 '영동' <---동쪽의 보스를 뜻하죠.
그리고 지석 맨 마지막에 어떠한 '율령'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적혀있죠......(미스테리;;;)
사진은 중국에서 발견된 백제 사신의 모습의 그림인데요.(백제인 나이가 20대인듯)
여기 글귀에 신라의 전신 '사라'는 백제의 속국이라고 적혀 있죠.
애초 신라는 탄생 이래 국호를 정하지 못하고 사로(斯盧) 사라(斯羅) 신라(新羅)
등으로 불리고 존호(尊號)도 왕이 아닌 마립간(麻立干), 이사금(尼師今)
등으로 불렀습니다.
22대 지증왕 4년(A.D 503년)부터 국호를 신라라 하고 속국에서 벗어나 신라국왕
(新羅國王)이란 존호를 사용했죠.
신라의 시호법이 이 때 비롯되어 왕이 죽자 '지증'이란 시호를 처음 썼죠.
양나라의 공직공도로서 백제 사신의 그림과 함께 백제를 설명하는 글에 보면요,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주변의 소국으로는 반파, 탁, 다라, 전라,
사라(신라), 지미, 마연, 상기문, 하침라 등이 부속되어 있다.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斯羅, 止迷, 麻連, 上己文, 下枕羅等附之.)”는 문구가 있어
신라가 당시 백제의 속국(부용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