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행궁(北漢山城 行宮)은 북한산 상원봉 아래에 위치했던 행궁이다. 중성문을 지나 남쪽 골짜기로 진입해 동장대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도성의 방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을 만들었다. 숙종 37년(1711)에서 착수하여 이듬해 5월 완공하였다.
행궁의 규모는 내전 정전이 28칸, 외전 정전이 28칸, 부속건물 68칸 등 총 124칸에 이르며, 내전 정전은 좌우 상방이 각각 2칸, 대청이 6칸, 사면에 퇴가 18칸이며, 부속건물로 좌우 행각방이 9칸, 청이 5칸, 중문이 1칸, 대문 3칸, 수라간이 5칸, 중문이 1칸, 측소 2칸으로 이루어졌다. 외전 정전은 내전 정전과 체제가 같다. 부속건물로 대문 3칸, 북협문 1칸, 외북장중문 1칸, 외행각방 12칸, 루 4칸, 청 4칸이 있고 헛간이 2칸, 중문 2칸, 외대문 3칸, 북변외대문 1칸이 있다.
평상시에는 행궁에 북한산 서고를 마련하여 고문헌을 비밀리에 보관하였으며, 숙종과 영조가 이곳을 찾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외전이 있었던 곳은 수해로 지반이 유실되었으나 내전이 있었던 지역은 기단석과 계단, 주춧돌 등이 뚜렷이 남아있어 당시 내전과 행각의 배치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북한산 행궁 전경
북한산 행궁전경 2
위치도
행궁 내전
행궁 내전
행궁 외전
행궁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