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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4 15:25
[한국사]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이방인 "헐버트"[대한제국의 외국인] -이 규태 칼럼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3,276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이방인들 "헐버트"[대한제국의 외국인]



나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헐버트



1949년 7월 29일 인천항. 미국에서 온 '프레지던트 헤스'호에서 백발이 성성하고 키가 작은 87세의 미국인 노인이 국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내렸다. 1909년 한국을 떠난 지 40년 만에 다시 밟는 한국 땅이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된 그는 그날 밤 병원에 입원했고,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일주일 후인 8월 5일 영면(永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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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했다는 조선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이 바로 헐버트이다. 헐버트의 묘비에는 ‘Man of vision and friend of Korea, I would rather be buried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라는 영문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번역하자면 헐버트 그는 비전이 큰 사람이며 한국의 친구이다……”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바란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란 영국런던에 있는 1000년 역사의 사원으로 왕실의 행사(대관식 결혼식 장례식등)이 치러지는 곳이며 또한 왕족이나 시인 선교사 음악가 정치인등 유명인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이런 최고의 사원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던 조선에 묻이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서 보듯 그는 진정 한국인의 친구였고 스승이었다.



헐버트는 186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나 1884년 대학졸업 후 1886년 6월에 조선에 입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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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헐버트

교육자 헐버트는 1886년 길모어 벙커와 함께 당시 조선에 새로 생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 (육영공원育英公院: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영어 교습이 주목적이었다. 1883년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온 민영익(閔泳翊)의 건의와 주한미국공사관의 무관(武官) G. C. 포크 중위의 알선으로 설립이 결정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개교가 지연되었으나, 1886년 7월 H. B. 헐버트를 비롯한 미국인 교사 3명이 내한함에 따라 같은 해 9월 23일 학교 문을 열었다.)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하였으며 또한 기독교 청년회로 잘 알려진 YMCA의 준비위원장이면서 초대회장으로 역임한다. 그는 YMCA 활동을 통해 조선의 근대 교육을 조선인의 계몽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특히 그는 세계지리와 천체현상, 각국의 소개 등을 담은 지리, 사회, 과학 총서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만들었는데 1891년 '사민필지(士民必知)'라는 이름으로 출간된다. 이 책은 학교 교재용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을 몰랐던 우리 국민들에게 세계로 눈을 뜨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역사학자 헐버트



역사학자 헐버트는 1905년 “한국사”라는 역사서를 발간하였으며 1891년에 간행된 대동기년에는 한국의 고종연간의 한국 근대사를 시대순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언어학자로써 헐버트는 한국 생활이 계속될수록 한국의 문화 특히, 한글에 심취했다. 1892년에 출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월간지인 'Korean Repository' 창간호 첫 장에서 헐버트는 'Korean Alphabet'이라는 제목의 한글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후 한글에 대한 많은 논문을 기고하는데, 그는 특히 중국어, 일본어, 이두 등과 비교하면서 한글은 한국인이 직접 만든 독창적인 글이라고 칭송했다. 헐버트는 당시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협회 1892년 연례보고서(Annual Report, Smithsonian Institute)에 'The Korean Language'라는 제목으로 특별 기고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 논문은 미국 의회와 대통령 및 행정부에 보내진다.



기고 마지막 부분에서 헐버트는 "한글은 대중언어의 매개체로서 영어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쓰고 있다. 아마 이 기고문은 한글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알린 최초의 논문일 것이다. 그는 고종에게 한글 보급 운동본부를 설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한 그의 “사민필지” 책 서문에서 헐버트는 “슬프다. 조선언문이(한글) 중국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오. 그래서 이 책에는 한글로써 세계 각국의 지도와 다양한 정보를 기록한다” 라며 안타까워 했는데, 그의 한글사랑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우리가 몰랐던 사실 하나가 있는데 지금 한국인의 애환이 담긴 대표곡 아리랑. 당시까진 구전으로 전해진 이 노래가 가사와 함께 악보에 실리게 된 것이 바로 헐버트의 노력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헐버트....



헐버트가 우리에게 많이 다가와있는 이유는 그가 다른 무엇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때는 1905년, 일명 을사5적이라 불리는 친일파들과 일본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불법적인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헐버트는 세계사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 부당한 조약의 부당함을 세계 알리고 져 노력을 한다. “비방이 극에 이르고 정의가 차츰 사라지는 이때에 나의 지극한 존경의 표시와 변함없는 충성의 맹세로서 대한제국 황제 폐하께 …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가 어둠에서 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이기는 하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바로 1906년 그가 저술한  “대한제국 멸망사”의 서문이다.



그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대한제국의 부활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는 고종의 특사로 미국 대통령에게 대한제국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려 하였다. 지금 우리가 역사의 일부로서 100년 전 사건을 편히 보고 있지만 당시 일본의 방해를 피해 친서를 들고 미국 행 배를 탄 헐버트와 고종황제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조선왕조 500년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었니 말이다.



그가 고종황제의 친서를 들고 미 대통령을 만나려 한 이유는 1882년 이미 체결된 조미수호조약 제 1조 때문이다. (미국과 조선 중 어느 한 나라가 제 3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상대국가는 우호적으로 이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제의 철저한 방해공작으로 미 정부에 전달될 수 없었다.



설령 전달되었다 하더라도 때는 늦어있었다. 왜냐면 이미 일본과 미국은 가쓰라 태프트 비밀조약 밀약 (1905년 7월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을 한국에 대한 이권을 서로 보장하는 비밀 조약) 으로 미국은 일본의 만행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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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 헐버트의 저서 passing of Korea

헐버트는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심정은 그의 수기에 잘 나와있는데 “…후대에 가서 역사가들이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우리 미국정부가 한국민족의 생존문제에 대해 이 같은 모욕적이며 경솔한 행동을 한 점을 어떻게 보겠는가? 공정한 눈으로 관찰할 때 그들은 미국인의 역사에 찬사를 던지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미국은 등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2년후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세계만방에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오게 되는데 바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게 될 “세계평화회의”였다. 당시 헐버트는 이미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는 눈 안의 가시였다. 그리고 그런 평회회의때 그가 나설 것은 불보듯 뻔했고 헐버트는 감시의 대상이 된다. 이를 고종황제도 모를 리 없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은밀히 이준을 특사로 파견하게 된다.

이때 헐버트는 이준이상설등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 계획이 발각될것을 우려해 고의적으로 자신이 특사가 되었다는 것을 퍼트리게 된다. 이는 일제의 감시를 헐버트 자신에게 쏠리게 함으로써 안전하게 헤이그 밀사들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하려는 그의 의도였다. 당시 만국평화회의 관련 일본정부의 기밀문서에는 대부분 헐버트에 관한 글이 많다는 점을 보면 일제가 그를 얼마나 철저히 감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비록 헤이그 특사는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엔 들어가지 못했으나 당시 세계 많은 나라들이 일제의 부당한 침략을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런 헤이그 열사의 애국심과 그 역사적 의의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쉽게 잊고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헐버트의 노력일 것이다. 고종의 밀사파견이 일제에 의해 발각될까 봐 스스로 일제의 함정으로 뛰어든 그를 왜 우리에게 소중한 인물인지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일로 그는 한국에서 추방을 당한다. 그 후 해 방 때까지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헐버트를 국빈자격으로 초대를 한다. 당시 헐버트 나이 84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힘들어도 해방된 한국을 보고 싶어했고 주변의 말류에도 한국 행 배에 몸을 싣는다. 그토록 독립을 원했던 고종황제를 끝까지 보필하지 못한 것,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한 것을 스스로의 죄로 생각한 헐버트, 그는 1948년 8월 5일 그가 그토록 원했던 독립 한국땅 묻히게 된다.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난다.

나치의 무차별적인 유대인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자신의 공장에 유대인을 고용해 한명의 유대인이라도  더 살려보려고 노력했던 쉰들러 훗날 그의 묘지 앞에 당시 목숨을 구했던 유대인의 후손들이 헌화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우리보다 더 우리를 사랑했던 이국인 헐버드 그는 분명 우리 한민족에게 쉰들러였다.


헐버트에의 부채

한말 고종황제를 둘러싼 그 많은 내외국인 가운데 황제는 오로지 한사람만을 믿었다. 영어학교 교사로 초빙돼온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다. 명성황후 시해 후 황제의 침전에 불침번을 세운 것이며, 주권을 반신불수로 만든 을사조약 후 황제의 밀서를 들고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찾아가게 한 것이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역시 밀사로 일본침략을 호소케 했던 것도 그 믿음의 표출이다. 한데도 광복 후 몇 년이 지나도록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김동성씨가 헐버트가 고향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노 기자였던 김을한씨에게 흘린 것이 계기가 되어 환국을 주선하는 한편, 편지를 보냈더니 자신은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다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려왔다.

그를 헤이그 밀사로 보낼 때 고종황제께서 막대한 내탕금을 독립자금으로 맡겼는데 그것을 상하이 노중(露中)은행에 예금했고 강제 병탄된 후 일본이 압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했다. 이 사실은 황제와 자기만이 알고 있는 비밀로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숙제라면서 당시 은행에 맡겼던 증서와 서류를 보관하고 있으니 이번에 갖고 나가 그 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87세 노구를 끌고 인천부두에 도착했다. 청량리 위생병원으로 직행, 망명시절 의기투합했던 이승만 박사와 한말에 교우가 있었던 이시영씨가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닷새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가방 속에 들어 있을 내탕금 비밀과 한말의 비사(?史)는 미국시민의 재산은 미국 공관이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가방 세 개를 봉한 채 들고가 미궁에 빠져버렸다.

일본제국주의에 경제적 피해를 입은 외국인들은 비단 노동자들까지도 보상소송을 제기하고들 있는데 광복 한국에서 이 국가재산 약탈에 대해 언급 한번 들어본 일이 없다. 이 민족의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이오 현대가 역사에 지고 있는 부채가 아닐 수 없다. 엊그제 양화진 외인묘지에서 헐버트 55주기 추모식이 있었는데 이 미완의 문제가 거론됐어야 한다고 본다.

[출처] : 조선일보 /이규태 컬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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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내고환 18-05-04 20:2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네요
zzag 18-05-04 21:27
   
한글천시는 비단 19세기에만 있던게 아닙니다.
21센츄리인 지금도 버라이어티한 스트리트 싸인들이 포린 랭귀지를 어필하며 에브리웨어에 있고
소싸이어티 각 디서플린 올 필드에 스페셜 텀 그리고 핫한 워드 유즈에 필이 꽂혀 있죠.
지금이 더하면 더할지도..
     
햄돌 18-05-05 19:34
   
뭔 소리임 이거?
구르미그린 18-05-04 23:55
   
한글과 한국어는 구분해야죠.

"21센츄리인 지금도 버라이어티한 스트리트 싸인들이 포린 랭귀지를 어필하며 에브리웨어에 있고
소싸이어티 각 디서플린 올 필드에 스페셜 텀 그리고 핫한 워드 유즈에 필이 꽂혀 있죠."

란 문장에서 21만 빼고 다 한글입니다.

한글을 천시한다는 예는 요새 한국 길거리에 난무하는

영어 간판, 중국어 간판입니다.

법으로 한글 간판을 의무화하든지 해야 합니다.
구르미그린 18-05-04 23:59
   
세종대왕이 기껏 한글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한국국민은 어릴적부터 영어교육시키고,
영어사교육 부담이 (영어유치원 보내는데 100만원이 넘게 드니....)
저출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2001년 이후 한국 출산율은 계속 일본 출산율보다 낮습니다.
2010년대 일본 출산율은 1.4명대를 유지 중인 반면
한국 출산율은 1.2명대이다가 2017년에는 1.05명입니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지구상에서 일본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한국이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저출산 때문이 아니라
저출산을 핑계로 정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대량이주 정책 때문에
한국인이 외국인으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 창제의 의의를 살리려면 한국인 씨를 말리는 정책부터 없애야 합니다.
집정관 18-05-05 00:3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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