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중국애들 사서에 적혀있는 이야기를 믿는 분이계시네요,,
지금이야 전주이씨가 이성계때문에 거창한 가문이 되었지만,,
고려시대 당시 전주이씨는 사실 듣보잡 가문이였습니다,,
이성계의 조상들이 고려시대 무인집안이였는데,,
고조할아버지가 반란에 가담했어요,,
그러다 반란이 진압되고 증조할아버지가 개경에서 해먹을께 없으니,,
함흥으로 먹고살기위해 이주정착했구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몽골과의 수십년 전쟁으로 함경도지역이 초토화 되어있는관계로
야인(여진)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죠,, 야인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사람이 아니라
지금으로 말하면 변두리 촌놈정도의 취급을 받던 같은 예맥족이지만 차별을 받던 여진족이죠
그곳에서 성장했던 이성계는 야인들을 규합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들을 휘하에 두고있던 겁니다,,
문제는 이성계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좋게하기위해 그동안 암묵적으로
만주는 고려땅 이런 등식을 깨버린 사건이 심양왕 임명을 포기함 으로서,,
야인(여진)들이 만주에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준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그들이
중국을 장악하고 청을 만들게 해준 빌미를 제공 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고려시대 국정을 장악했던 과거 무신정권들은 그나마 왕권을 보장해주고 더이상의
야욕은 보이지 안았으나 이성계 이사람만은 정권을 찬탈하고 조선을 세웠지요,,
그후손중에 세종같은 훌륭한 분도 나오고요,,
암튼 중국인은 재삼자입장에서 야인들을 규합해서 전쟁을 하는 이성계가 여진인으로 보였을 겁니다,
이성계 일족은 만주지역 대대로 만주지역 다루가치를 지냈습니다. 다루가치는 몽골인이 대다수였죠. 문헌에 기록된 이성계 일족의 이름 이성계의 형제들도 전부 몽골식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스습니다. 이성계는 몽골인이었을 가능성도 높고 근거지는 여진족 거주지역이었고 지지세력도 여진계열입니다.
다루가치는 몽골인 중심으로 임명되는 것은 맞습니다만, 영토가 늘고 민족이 다양해짐에 따라
차후 색목인과 3등급에게도 허용이 됩니다.- 단 4등급 남송하의 한인에게는 전혀 해당상황없음.
고려인 다루가치가 적었지만, 현재 확인되고 있는건 이성계 집안과 저기 운남성 어디였나?
거기도 고려출신 다루가치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역사스폐셜에서 방송한 적도 있음.
게다가, 당시 대세가 귀족들은 너나나나 몽골식 이름 가지는게 관례였고
-뭐, 요즘도 제임스리니 제시카 김이니.. ㅋㅋㅋ
고려왕들도 몽골이름 다 있습니다. 공민왕은 바옌테무르였죠.
이성계가 놀던 합란부가 쌍성 철령근처라고 하는데 이곳이 중요한게 또 몽골과 고려간의 국경선이된 두개의 쌍성 하나는 하나는 현이북에있는 쌍성 하나는 내몽골에서 만주로 들어오는 대안령산맥의 쌍성 이두개입니다 또 조-명초기 국경 문제가된 철령 이북에 함흥근처에 또 하나는 만주 심양 250리 서북쪽에 위치한 중국명 티안링 그당시 사서에보면 도사성서북 250 리라고 나옴 이 도사성이 현요동성이라고 하는데. .아그리고 중국사서가 우리가 아는 국사책보다 더 심도있게 기록도어있고 크게 그려져있죠 동북공정차원은 빼구 중국사서만 봤을때요 간단하게 얼마전까지 고조선 신화로 배웠잖아요 근데 중국사서엔 역사로 기록되었다는거죠 신화와 역사 이 차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거꾸로 된거에요 세금 받고 자기역사를 신화로 가르치늘 바보가 어디있답디까 그리고 이성계에 대해선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