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운명, 일본(日本)과 왜구(倭寇)!
본인이 어릴 때 집안의 어른들이 ‘왜놈’ 또는 ‘왜놈들’ 어쩌고저쩌고 했지 요즘처럼 ‘일본’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본(日本)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 할 수 있을 만큼 일본(日本)과 왜구(倭寇)는 엄연히 다릅니다.
옛 한반도를 떠난 백제(百濟)의 다른 이름이 지금 열도의 일본(日本) 입니다.
왜구(倭寇)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에서 도적질로 이름을 떨친 열도의 원주민이다.
그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원숭이와 같이 태풍을 타고 올라와 열도에 정착하였고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좀 까무잡잡하여 북방계열인 우리와 외모 상 차이가 나는 것이 중국 측의 사료인 ‘양직공도’에 나와 있다.
그들은 옛적에 한국의 가야지방을 지배하였다는 날조역사 ‘임나본부설’로 한국에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는데, 당시 그들의 문화 수준이라는 것이 자기들 사촌인 원숭이와 꼬치를 내놓고 누구 것이 더 긴지를 견주면서 놀던 정도이며, 바느질 흔적도 없는 천조가리를 둘러메고는 옷이라 하며 ‘양직공도’에 남겼다.
이를 불쌍히 여긴 가야인들이 대거 건너가 문화를 전수한 것이 거꾸로 ‘임나본부설’이다.
이후 원숭이 사촌들이 대부분이던 열도에 나당 연합군에 패한 백제인들이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건너가 세운 나라가 열도의 일본(日本)이다.
이때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고 일본의 국보 중의 국보 ‘칠지도(七支刀)’와 백제사를 그대로 뺏겨 놓은 ‘일본서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 일본에 있는 옛 건축물들이 다 백제풍이다.
그러나 그 후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재가 이어지지 못하고 무사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지금까지 포악하고 저질스러운 왜구(倭寇)의 문화가 계속되었다.
근세에 들어 자기들 문화가 대외적으로 너무 쪽팔려 보여주기씩 웅장한 건축물을 짓고 역사도 왜곡날조 했다.
남이 보면 언뜻 공손한 것 같은 그들의 굽실거리는 인사문화는 어이없게도 무사들의 칼싸움에서 비롯되었다. 칼싸움이 벌어지면 필경 한쪽이 죽거나 다치니까 그것을 피하고자 서로 간에 체면치레하는 인사법이 되었고, 무사는 강간권이 있어 남편이 있거나 말거나 여자가 맘에 들면 강간을 하였고 거절할 경우 예외 없이 칼을 휘둘렀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공손히 무릎을 꿇는 전통이 여자들에게 내려온다.
여자들은 속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고 기모노 뒤 허리춤에 말고 다니는 담요는 언제 어디서나 씨받이를 위한 것이고 또 육고기를 구워먹지 못하게 하였다.
대충 이러한 문화들이 무사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 천여 년 정도 내려와 왜구의 DNA가 이러한 형태로 고정되면서 완전히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하였다.
어디나 할 것 없이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없어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왜구 또한 옹기종기 모여 사는 형태 이었는데 무사들의 무분별한 강간으로 사촌도 형제도 없는 근친교배가 이루어져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상어 잇빨 같은 덧니를 지닌 독특한 인간 종자를 만든 곳이 열도의 왜구들이다.
문화라는 것이 통상 200년 이상의 중앙집권으로 나름 안정된 정치체계에서 나오는 법인데 매일 같이 싸움질만 일삼은 왜구들에게는 원래 문화라는 것이 없다.
교활한 왜구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깎아내리면서 마치 자기들이 무슨 동양문화의 정수인양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천여 년 넘게 왜곡 날조하여 100여 년 넘게 서방세계에 선전하였다.
때문에 요즘 K-pop 등으로 한국의 실상이 알려지기 전에는 한국인은 그냥 원시인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요즘 한국이 대외적으로 뜨고 알려지자 시기와 질투로 무장한 이웃나라들이 한국을 노골적으로 해체코자 분할 통치 같은 온갖 해괴한 것을 퍼뜨리고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여 다가오는 선거 등에서 자기들의 의도가 반영됨과 동시 한국을 말아먹을 요량으로 한국인을 가장한 소위 외노자 인권부대 같은 간첩을 총 동원하여 외국인 범죄사실조차도 외국인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한국은 인종차별을 하는 외국인 혐오증이 만연한 후진 악질 국가라고 대대적으로 국내외에 선전을 하고 있다.
답이 없는 대한민국!
박근령이 왜국에서 증명을 하고 온 지금 한국의 지배 권력이 왜구의 간첩인 국내 왜놈들이라!
한국인들은 다시 원시인으로 돌아가야 하나!
지금 일본(日本)이라 일컫지는 섬, 열도는 ‘칠지도(七支刀)’가 증명하듯이 원래 백제(百濟)의 하나의 담로(擔魯)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