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의 기원이 어디냐는 의문은 결국 야생벼를 처음 재배한곳이 어디냐는 의문인데, 야생벼는 열대작물로 한반도에서는 자란적이 없음. 그래서 소로리 볍씨에도 불구하고 벼의 기원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동남아나 남중국의 야생벼 존재 지역에서 일단 반작물화 된후 내한성까지 획득한후 한반도로 전래되었다고 보는거..
위 링크 자료를 봐도 알수 있죠. 1만5천년전 당시는 빙하기입니다. 지금보다 한랭할 때입니다. 물론 빙하기이긴 하지만 빙하기에도 아빙기와 아간빙기의 형태로 평균기온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1만5천년전은 대략 알뢰뢰드베링 아간빙기여서 아빙기시기보다는 기온이 높았던 때입니다.
사실 평균기온 문제와 확실치않은 연도문제때문에 과연 한반도에서 벼가 자랄수 있었겠느냐의 논라니 있었지만 결국 이걸로 납득이 되었죠. 그렇다하더라도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낮았던 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위에 링크한 야생벼 분포대가 지금보다 위도상으로 더 높았을까요 낮았을까요? 말이 야생벼지 잡초나 다름없는 식물입니다. 이런 식물들은 짧은시간안에 멸종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날씨가 서늘해지는 방향으로 가면 모르겠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는 방향으로 가는데 멸종될 이유는 없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야생벼는 아열대성 식물입니다. 빙하기가 끝난다는 것은 아열대성 식물에게는 더 좋은 생육조건으로 가는 방향이지 더 안좋은 생육조건으로 가는 방향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반도에 야생벼가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죠. 만약 야생벼가 존재했지만 멸종되었다면 토탄층에서 멸종된 야생볍씨들이 발견되겠죠. 인간이 손된 훨씬 희소한 볍씨는 발견되는데 그것보다 널리고 널린 야생벼가 발견이 안될리가 있겠습니까? ^^
2. 야생벼와 재배벼가 동시에 있었다?
이융조 교수팀에 의해 붙여진 정확한 명칭은 고대벼와 유사벼입니다. 고대벼는 보다 현대벼와 형태가 가까워진 아간빙기에 적응한 종으로 보고 있고 유사벼는 고대벼보다도 이른 더 추웠던 아빙기시기 한랭한 기후에 적응한 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둘다 순화벼로 보고 있습니다. 특정식물을 작물화 하는 과정은 야생종->순화종->재배종 이러한 과정을 거칩니다. 야생종과 재배종의 차이는 여러가지입니다만 이둘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떨어지느냐 인간에 의해 수확되어야 하느냐입니다. 자연에서는 당연히 스스로 떨어져야 번식을 할수 있습니다만 인간이 개입해서 인위적인 종개량이 이루어지면 스스로 떨어지지 않는 단계로 변화합니다.
문제는 소로리벼는 현재까지 평가는 순화벼로 보고 있습니다. 순화벼는 야생벼의 재배벼의 중간정도의 성격을 띄고 있는데 이 부분이 여전히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죠. 볍씨가 떨어져나가는 소지경 부분이 거칠게 나타나는 볍씨도 있고 그렇지 않는 볍씨도 있었으니가요. 문제는 이걸 인간이 도구로 수확하면서 나타나는 거치면이냐 아니면 동물들에 의해 떨어져나간 거친면이냐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설령 전자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재배벼의 특징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화벼로 규정을 하고 있죠.
재배벼와 달리 순화벼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할수는 있어도 그것이 기원이다라고 말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생벼를 작물화하려는 시도는 여러군데 이루어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시도초기에는 여러 시행착오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연속성이 발견될수 없죠. 쉽게 말해 농경이 꾸준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배종의 경우는 그 이후 계속해서 그 종이 심어지고 수확될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그와 관련된 유적유물들이 나올수밖에 없죠.
소로리볍씨만으로 벼농사 기원지로서 한반도를 특정할 수 없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그 이후로 비슷한 시기에 발견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로리이후 두번째로 오래된 가와지볍씨는 5000년전의 것으로 소로리와 무려 1만년의 차이가 벌어져 있습니다. 이에 반해 중국의 경우는 대략 9000년 이후부터 주변지역으로 꾸준히 벼농사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분자생물학적인 근거로보나 고고학적인 근거로 보나 현재로선 중국 양쯔강유역을 벼농사의 기원지로 보는 것이 타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현대 고고학의 이해로 번역되어 나온 책 'Archaeology'에서 한반도에서 최초의 벼농사가 이루어졌다라는 보도를 인용하실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언급하기 이전에 먼저 이야기하자면 여기서의 언급은 최초의 재배벼로서 언급한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순화벼가 발견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언론이 잘못된 사실을 보도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반도가 벼가 자랄 환경이 되지 않았다면 이 볍씨가 어디서 왔나요?
1만 5천년전이면 구석기 말이나 신석기 초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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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소로리 볍씨는 한반도에서 자란 볍씨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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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5천년전 볍씨가 발견되었는데도 소로리 볍씨가 한반도에서 자란 볍씨가 아니라고
학문으로 논문으로 주장한다고 사실이 될 수는 절대 없습니다
(이런 상식정이지 않은 주장의 논문을 궤변이라고 하며, 쉽게설명하면 사기꾼 주장이 되겠지요)
볍씨가 발견된 한반도서 자란 볍씨가 아니라는 주장이라면
1만 5천년 전에 동남아나 중국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소로리 볍씨를
구석기인과 신석기인들이
동남아나 중국 남부 볍씨를 비행기타고, 배를 타고 기차차고
엄청 먼 거리를 몇백년, 몇천년이 걸렸을 지도 모를 한반도로 옮겻다고 주장하는 건가요?
이게 상삭적으로 일반적으로 가능한 주장인가요?
구석기나 신석기 인들이 수천리 수만리를 짧은 시간에 볍씨를 갖고 이동했다고 보는 건가요?
(1만 5천년전이면 현대인들이 주장하는 빙하기인데.. )
예를들어 동물에 비유를 해볼께요. 여우나 늑대를 길들인다고 해봅시다. 보통 여우나 늑대를 집에 데리고 와 키울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데리고 와 키운다고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죠. 러시아에서 일부 여러세대를 거쳐 여우를 순화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죠. 은여우의 경우. 이런 경우 여러세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순화되어가면서 형태적으로 변화기도 하고 성격이 변하기는 하지만 이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몇세대 내지 수십세대는 거쳐야 합니다. 이것도 순화가 될수도 안될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벼라는 것도 첨에 농사를 지으려고 할때 인간의 뜻대로 벼가 자라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기후적인 부분도 있고 토양이나 기타 환경적인 부분도 있고 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특성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재배종이 되려면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본래 야생벼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변하게 되죠. 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것이 순화벼고 소로리벼는 이 순화벼입니다.
문제는 순화과정은 한반도내 소로리라는 곳에 한정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생벼가 자라는 전세계 여러지역에서 이러한 과정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야생벼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야생벼가 자생하고 있고 그 야생벼와 현대의 벼가 유전적 계통상 연관성이 크다면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게 쳐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자생하는 야생벼가 없는데다 소로리볍씨 이후 한반도 그 어디에서도 1만5천년가 유사한 시기로 추정되는 볍시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무려 만년뒤 가와지볍씨가 그 다음이고 더군다나 계통상으로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초라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되고 발견된것중 가장 오래된것이라고 이야리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부분에서 논쟁이 이루어지는 잘알아야 어떠한 부분이 중요한지를 알수 있는데 댁은 댁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외는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냥 댁 생각일뿐이에요. 주관적인 견해는 우주가 뿌드르락아아 라고 하는 임의로 지어진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타당합니다. 그 개인수준에서는. 과학은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종교집단만을 만족시키는 수준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첨언하면
1) 양자강에서 발견된 1만년전 재생벼는 외계인이 갖고온 것이 아닙니다
1만 5천년전 소로리 볍씨가
5천년을 거치면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양자강에서 1만년전에 재배한 흔적이겠지요
(볍씨 발견은 1만 5천년전 한반도 --> 1만년전 양자강이고
한반도와 양자강을 제외하면 1만년 전의 볍씨는 세계 어느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 현재의 야생벼 분포도에 한반도에 야생벼가 없으니
1만 5천년 전에도 야생벼가 없었다고 단정 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할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시 1만 5천년전이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정도로 착각하여
지금의 기후환경과 1만 5천년전의 기후 환경이 비슷했을 것이라는
엉터리 추정에 기반한 주장인가요?
역사라는 것은 일단 있는거로 시작해야지 어디 없는 거 증명도 안되는 것으로 그럴것이다 ..? 그건 역사소설에서 가능하겠죠
소로리 볍씨가 현존 지구상 가장 오래된 탄화볍씨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거고 벼재배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데 뭐가 불만일까요?
이 증거를 깨려면 그보다 더 오래된 증거를 대면 됩니다.
벼가 아열대니 어디서 왔을거니 그건 다 추정이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증거 찾아 보십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류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때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야생벼가 존재했을것이다라 주장하는 류 또한 관심이 없구요. 야생벼의 특징이 1만 5천년여년동안 특별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믿음에 근거하지 말고 근거자체에 근거하세요 ^^
볍씨 역사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볍씨 역사는 중국보다 소로리 볍씨가 앞선다고 합니다.
중국은 인도와 볍씨의 기원을 두고 다투다가 중국이 승리했다고 하죠.
발상의 전환이지만, 다잇글힘님,
혹시 황해, 동중국해 바다로 변한 곳의 강 유역에서 볍씨가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안했습니까.
현재로써는 소로리 볍씨가 앞섭니다.
벼야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죠. 문제는 그 벼를 어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길들여서 재배화시켰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크게 두가지의 논점이 있습니다. 길들인다는 부분과 재배화시킨다는 부분.
길들인다는 것은 위에 다른 글에서 설명했듯이 야생종을 반복적인 농경을 할수 있도록 종을 개량하거나 또는 농사를 짓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건 어디가 처음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힘듭니다. 시도는 야생벼를 구할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할수 있으니까요.
재배라는 것은 완전히 인간에의해 길들여져서 반복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재배를 통해 종개량이야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게 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씨를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고 다시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에서 완전히 야생벼로부터 바이바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순화과정과 재배과정의 결정적인 차이중 하나입니다. 벼농사 재배는 특정한 기술의 발견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기보다 특정한 인구집단이나 지역에서 먼저 발견하거나 발명되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소로리벼의 의미는 재배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순화과정이 이루어졌을 다양한 시도들중에서 가장 오래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로리볍씨를 발굴한 이융조 박사도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애초 벼의 기원은 자연입니다. 중요한건 본격적인 재배벼 농사의 기원이 어디냐입니다. 적어도 한반도에 야생벼가 존재했다면 벼의 순화시도도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주장할수 있는 껀덕지라도 있지만 언급했듯이 야생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건 이미 야생벼가 자라던 곳에서 순화시도가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시도를 한 문화가 전파되거나 그러한 시도를 한 집단이 이주해왔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수구리//
예전 동아게에서 이 주제로 토론하면서 지금은 잠겨있는 서해남부나 동지나해 지역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을수도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소로리로 전파되는 과정을 추론을 해봤을때 지금은 잠겨있는 서해나 남해에 연결되어 있는 강을 따라 해당문화가 유입되었을 것이 분명하니가요.
인류의 이동이라는 것이 대부분 해안가 아니면 강을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벼 자체가 습지에서 자랄만큼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당연히 그러한 루트를 따라 올라왔을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지금은 잠겨있는 바다지역에서 시작되었을수도 있습니다. 물론 빙하기 시기 서해의 많은 지역은 사막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강을 따라서는 습지가 존재했을 것이기에 그 부분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 야생벼의 분포대를 추론해보건데 당시 빙하기 시기에의 야생벼의 분포대는 지금보다는 살짝 아랫쪽에 위치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북방한계선인 양자강 유역보다는 주장강 아래지역의 위도대였을 가능성이 높죠. 따라서 지금의 서해와 남해지역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더 남쪽이어야 하죠. 실제로는 동지나해에 가까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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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잇글힘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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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5천년 전의 소로리 볍씨 발견이 벼 재배 기원일 수 박에 없는 이유는
엄청 빠른 시기의 유물 출도가 중요한 이유와 비슷합니다
옛날에는 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형태의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무덤’을 일본식이라고
일본이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나 북한 평양에서 일본보다 빠른 시기에 축조된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일본학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빠른 시기에 한국에서 조성된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무덤' 발견으로
학문적으로 일본식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일본이나 남한 역사학계가
'전방후원(前方後圓)형 무덤'을 일본식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1) 객관적으로 보면 일본식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2) 얼마후에는
일본식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학자로서 양심없는 주장이나 논문이 될 것입니다
1) 양자강에서 발견된 1만년전 재생벼는 외계인이 갖고온 것이 아닙니다
1만 5천년전 소로리 볍씨가
5천년을 거치면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양자강에서 1만년전에 재배한 흔적이겠지요
(볍씨 발견은 1만 5천년전 한반도 --> 1만년전 양자강이고
한반도와 양자강을 제외하면 1만년 전의 볍씨는 세계 어느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2) 현재의 야생벼 분포도에 한반도에 야생벼가 없으니
1만 5천년 전에도 야생벼가 없었다고 단정 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할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시 1만 5천년전이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정도로 착각하여
지금의 기후환경과 1만 5천년전의 기후 환경이 비슷했을 것이라는
엉터리 추정에 기반한 주장인가요?
대세는 무슨 대세.
소로리 볍씨로 중국 볍씨 기원은 타격을 받았겠죠.
중국인들 더 오래된 볍씨 열심히 발견하세요.
그래야 중국이 볍씨 기원이 될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볍씨 기원이 중요하지 않아서 부근에 건물을 지었어요.
중국인들 더 오래된 볍씨 발견해서 볍씨 기원이 중국이라고 굳히세요.
아직은 볍씨 기원이 한국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