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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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단군'이란 존재가 고려말 대몽항쟁기에 만들어진 허구일뿐이라고 주장한다. 허나 고조선은 이후 그 땅에서 일어난 부여 고구려에서부터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만주와 남쪽에 한반도 사람들에 의해 분명히 기억되어 왔으며 특히 고구려인들의 고조선 계승정신은 확실히 존재했다는것을 여러 증거유물, 기록들이 시사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각설하고 우선 단군 및 고조선이 대몽항쟁기에 삼국유사를 쓴 일연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것부터 기록 등을 통해 증명해보도록하자.
참고로 일연의 삼국유사는 1281~1284년 사이에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면서 아래 증거자료들을 음미?해 보시라.
1.1131년 인종때 서경파의 거두 묘청의 건의로 서경(평양)에 팔성당(八聖堂)이 설치되었다. 팔성당은 옛부터 전승되어오던 8명의 성인 내지 신인들을 제사시내는 사당으로 이중 네번째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구려평양선인(駒麗平壤仙人)이다 여기서 구려는 다름아닌 고구려를 뜻하고 평양선인은 단군을 말한다.
2. 1145년에 편찬된 김부식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 조에 "동천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이곳을 '선인왕검의 택지(仙人王儉의 宅)'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1번의 구려평양선인이 무엇인지 이해를 돕게 해준다.
3. 삼국사기 이전에 편찬된 '구삼국사'를 읽고 이규보가지은 '동명왕편'에 보면, 비류국왕 송양이 자신을 "선인(仙人)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여기서의 '선인'도 다름아닌 고조선의 단군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비류국의 위치는 만주 혼강 상류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4. 고려시대 최자(崔滋, 1188~1260)의 '삼도부(三都賦)'라는 책에 보면, "서도(石)가 처음 생길 때 동명이란 황제가 하늘에서 내려와"라는 구절을 통해 고구려 or 북부여의 건국시조 '동명'과 고조선을 연결짓고 있는점이 이채롭다.
5. 고려시대인 1325년에 쓰여진 '조연수 묘지'에 보면, "평양의 앞에 선인왕검.............. 평양군자는 삼한 이전에 있었는데"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평양군자도 단군을 가리킨다.
6. 1287년에 저술된 '제왕운기'에 보면, "시라(신라), 고례(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 맥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기록과 "먼저 부여와 비류국이 나오고, 다음으로는 시라와 고례, 남북옥저, 예, 맥, 응(백제)이 있었다. 이들 여러 임금이 누구의 후손인가를 묻는다면 그 계보는 역시 단군에서부터 이어져 왔으니..."라는 구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1,3,4,5,6번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바로전 조상들인 고구려시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결과물들이다. 또한 일연의 출생시기보다 이른 시기 즉 고려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고려 중기이전에 이미 단군과 고조선 관련 기록들이 나왔다는 점에서 단군과 고조선이 고려말 대몽항쟁기 어려울때 창작?다는 주장은 거짓임이 판명된거나 다름없다.
지금까지는 고려시대의 자료들 뿐이었으나 다음은 고구려인들이 직접 남긴 기록들이다.
7. 구당서에는 고구려인들이 합한신(可汗神)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여기서 합한은 북방민족들이 임금을 가리키는 칭호이다. 그런데 구당서에는 바로 이어서 "자못 箕子의 유풍이 있다"고 적고 있다.
8. 고구려 멸망이후 천남산(泉男産)과 천비(泉毖)의 묘지명에는 "동명(동명)의 후예가 조선을 세웠다". "조선왕 고장(高藏 : 보장왕)"과 같은 기록이 새겨져있다. 여기서 이들은 천씨가 아니라 본래 연씨이다.
9. 697년에 사망한 또다른 고구려 유민 高慈(고자)는 자신의 국적을 '조선인'이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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