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서신에 나오는 Regi Corum은 과연 고려의 충숙왕이었을까?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결정적이다.
하나는 Regi Corum을 고려의 충숙왕으로 읽기 위해서는 문헌학적인 관점에서 텍스트의 내적 증거들이 요청되는데, 그 증거들이 서신 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요컨대, Corum의 문법적인 형태를 고려해 볼 때, Corum은 Ci이고 이는 Khitan에 더 근접해 있으며, Khitan은 그런데 Chigista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Sece de Chigista를 Seecede Chingista로 읽을 수 있다. 이 경우도 고려와는 무관하다.
다른 하나는 텍스트의 외적 증거가 없다. 필사본의 Regi Corum이 고려인들의 왕이라면, 역사적으로 고려에 그리스도교도들이 오래전 있었고 그 수가 많았음이 입증되야 한다. 이에 대한 문헌 기록이 없다.
또한 니콜라우스 대주교가 칸발리크로 가는 여정 가운데에 고려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요한 22세의 서신은 실은 아비뇽에서 북경으로 가는 여정에서 여행의 안전을 보장하는 통행증이었다. 그러기에는 고려는 지리적으로 극동에 위치해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14세기에 통용되었던 고려의 명칭이 있었다. 몽고어로 Solangi 혹은 한자어로 Caule가 그것들이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필사본의 Regi Corum을 “고려인들의 왕” 으로 읽을 수는 없다.
결론적으로,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으로 읽을 수 없다. 이 주장의 성립을 위해서 요청되는 내적 증거이든 외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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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에게 보낸 편지라는 주장이 성립하면서 첫 머리말의 ‘Regi Corum’을 ‘고려인들의 국왕’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라틴어 문법상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Corum’은 복수 소유격인데 이런 형태나 나올 수 있는 주격은 ‘Ci’ ‘Cores’ ‘Cori’ 정도다. 그러나 당시 고려는 중국어 발음인 ‘가올리’에서 유래한 ‘Caule’(카울레)가 나라명으로 쓰이고 있었다. ‘Corum’을 ‘고려인들의’이라 옮기기 어렵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