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글은 각종 글들을 정리한것.
1. 고조선의 성장
요동 -> 요서로 확산된 고조선 문화
대부분의 학자들이 요동반도 일대에 세워진게 고조선 문명이라고 하고 요서지방은 고조선이 침공에서 정복하여 고조선의 문화(비파형동검, 가락바퀴)가 넘어간거라고 하던데 (사실상 요서세력은 고조선과 관계없는 독자세력이였다고함)
* 기원전 11세기~10세기 주나라 예기들이 요서에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요서지방에 주나라 관련 무덤이 없으므로, 주나라 예기는 요서집단(고조선에게 지배받던 요서민족)이 약탈한것으로 추정한다는 글도 있다.
고조선의 비파형동검과 청동단추가 중국 동북쪽으로 확산된 시기가 기원전 7~5세기쯤이라고 하던데
이당시 중국기록 역시도 조선이 왕이라는 국호(실제 왕이라는 명칭보단, 그만큼 권력이 세졌다는것을 상징한다고 추측함.)
조선이 연나라를 선제 공격하려 하였다는 기록, 그리고 조선인들은 교만하고 사납다는 둥의 기록,
남방의 제와 교역을 하였다는 기록, 연나라 명도전이 고조선의 범위와 유사하게 분포된 점을 보아
고조선의 활발한 교역을 했다는 증거도됨.
2. 기원전 3세기 연 VS 고조선 (2000리 강탈)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2000리를 빼았겼다는 기록(이 기록에 신빙성을 놓고 논쟁이 많음)
고고학적으론 고조선에게 지배받던 요서지방 애들이 짧은시간동안 문화가 고조선의 문화에서
연나라식 무덤과 연나라식 동검, 예기 문화로 빠르게 전환됨. (고조선은 예기 문화가 없었다는 의견이 많음)
연나라의 장수 진개가 2000리라는 광활한 영토를 빼앗음에도 진개를 칭송하는 문헌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진개가 실존인물이 아니며 2000리를 강탈 당했다는것 조차 믿기 힘들다는 주장이 많지만
실제로 단기간내에 대릉하~요서~요동지방에 이르른 지역의 범위에서 고조선의 문화가 사라지고
연나라식 문화로 바뀐것에 대해서 학자들은 전쟁 빼고 이런 양상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고 추측한다고
주장을 많이 한다고함.. (대릉하~요서지방의 군락 우두머리들이 연나라식 문화를 사용)
그러므로 고조선의 문화는 오늘날 요동지방 천산일대를 사이로 축소되었다 추측한다 한다.
3. 연 VS 고조선 (2000리 회복?)
난하갈석설을 믿는 사람들은 고조선이 상실한 3000리에 범위가 대릉하 요서가 아닌 요동지방이라 주장하며
진시황의 만리장성 범위가 오늘날 난하를 경계로 끊킨다고 주장하며 진시황 본기 만리장성의 축조 기록에서
만리장성은 임조에서 시작하여 갈석에서 끝난다. 임조에서 시작해서 요동에서 끝난다라고 기록되있는 것으로 보아 요동=난하라는 공식을 성립한다.
그러므로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2000리를 빼앗겼지만,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중원에 혼란을 가져왔고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 고조선이 옛 영역 2000리를 회복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고조선의 문화범위가 요서지방과 대릉하유역에서 기원전 300년을 전후로 발견되지 않는하는 현 학계 주장이 있으므로 고조선이 연나라의 2000리를 다시 되찾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4. 고조선 VS 진나라 (진나라 군대 박살?)
진나라가 만리장성을 요동까지 쌓고 조선을 위협하여 조선왕에게 입조하기를 강요하나 조선은 이를 거부한다. 진나라는 대군을 꾸려 조선을 침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그 이후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진나라가 고조선과의 전쟁에서 침공에서 큰 성과를 못이루었다는것을 감히 추측해볼수 있다.
중국은 예로부터 자기내들의 분리한 기록을 서술하지 않는 습성이 있고 이런 습성은 상고시대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진나라의 군사가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이상 조선에게 패배했을것으로 감히 추측 해본다.
5. 고조선 VS 한나라 (박살난 한나라, 그리고 조선의 분열)
중원은 다시 혼란기에 빠져 한나라가 통일하고 한나라는 북방의 유목민족 흉노를 격파하여 대승을 거둔다.
그러자 동방에 유일세력이였던 고조선이 한나라의 부유함을 알고 거짓항복하고 원조를 해주면 동방세력으로 부터 한나라를 지켜주겟다는 조건하에 외교가 펼쳐진다. (고조선식 한나라 삥뜯기?)
하지만 고조선은 한나라의 원조로 사방의 세력을 평정하고 사방 수천리에 이르는 제국이 되자, 한나라는 수륙공격을 펼치나 수군은 괘멸되고 한나라군도 고조선군에게 각개격파 당하며 숲으로 달아난다, 한나라 군은 재정비 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한황제는 10만이라는 대군을 다시 보내주어 전쟁을 이어나가지만 성과는 없었다, 사실상 고조선은 내부분열로 멸망했고 고조선의 백성들이 뿔뿔히 흩어져 삼국시대를 이룬다.
6.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에 대한 글.
사실상 기자조선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서 한중 양역사 사학에서 폐기되었던 학설임.
기자조선을 뒷받침 해줄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기준과 같은 예기들은 과장된 해석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설이 현 학계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고로, 기자의 후예라고 중국사서에 기록된 조선후나 준왕, 부왕역시 기자의 후손이라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과연 기자의 후예라는 중국의 고서들이 믿을만한 것들인가 의심된다.
위만을 둘러싸고 과거나 현재나 다양한 의견이 많다, 위만을 조선인으로 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위만은 원래 만이며 연나라에서 중국성씨 위를 하사하여 위만이 되었다는 주장을 시작으로
위만은 원래 대릉하나 요서지방에 살던 유이민 집단 이였으나, (독자적인 세력이었으나 조선에게 지배. 조선인이 됨)
연나라의 침공으로 위만가문은 대대로 연나라에서 살아야 했고 연나라에서 공적을 많이 세우자 장수가 되었고 자신의 상관이 흉노에게 망명하자 자기 세력을 거느리고 중원 혼란기를 틈타 조선에 입조하여 조선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위만의 복장이나 위만조선 개국후에도 조선이라는 국호를 이어썼다는점, 그리고 조선의 법과 유이민 사이에서 공존하는 새로운 왕국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외지인이였다면 조선의 문화를 계승하여 이어 나갈 필요가 없다는 주장.
또 다른 위만에 대한 증거는 위만이 조선으로 넘어왔다는 기록외에 위만이 실존인물이라는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중국에서 기록한 위만이 실존인물이 아닐수도 있고 만약 실존했다 하더래도 의도적으로 조선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만을 중국인으로 둔갑시켰다는 주장도 있다고 함.
+ 이 외에도 더 많은 기록들이 있다면 많은 의견들 부탁드립니다 (환단고기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