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식민사관" 공세…수세 몰린 주류, 공개강좌·기고로 반격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단군왕검의 실체나 한사군의 위치 등 상고사·고대사 문제는 우리 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단군은 실존 인물인가 신화인가',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 즉 한사군(漢四郡)의 위치는 어디인가' 등을 두고 학계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팽팽하게 맞서 왔다.
이 문제는 때로는 역사 교과서나 동북공정과 같은 사회적 문제와 얽히면서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 주류사학계에 도전한 재야학계…'식민사관' 논란
10일 학계에 따르면 그동안 논쟁의 양상을 보면 주류로 분류되는 강단사학계의 주장에 이른바 재야사학계가 '딴죽'을 거는 모양새였다.
고대사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됐던 때는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제로 처음 발행한 1970년대다.
당시 단군왕검을 신화적 인물로 해석하는 등 당시 주류 사학계가 갖고 있던 고대사 인식이 교과서에 반영되자 재야학계를 중심으로 개정 요구가 일어난 것이다.
재야학계는 해당 교과서가 단군개국론을 신화로 규정하고 중국 연나라 사람인 위만을 고조선을 창건한 시조로 보는 등 일제 식민지 사관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사회적으로 큰 관심이 쏠렸던 고대사 논쟁은 결국 재야학자의 주장을 일부 반영하는 방식으로 일단락됐지만, 학계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이 문제에 다시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해 말 재야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발간한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였다.
이 소장은 책에서 실명을 거론하면서 주류사학계를 '식민사관', '매국사관'으로 비난했다.
그는 또 동북아역사재단이 역사학 교수 등에게 연구용역을 맡겨 제작하는 '동북아역사지도'가 주류학계가 주장하는 '한반도 북부설'을 따른 점을 두고 "중국 동북공정을 추종하고, 일본 극우파의 침략사관을 그대로 따르는 지도"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북부설은 중국 관할이었던 한사군의 위치가 평양 인근이었다는 주장이다. 반면 재야학계는 한사군의 위치가 중국 요서성 인근이었다는 '요서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말 국회에서는 상고사 토론회가 벌어졌고,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아역사지도 사업단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 주류사학계의 반격…'사이비 역사학' 규정
이렇듯 재야사학계의 거침없는 공세가 이뤄지는 동안 강단사학계는 공개적인 대응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식민사학자로 매도되는 등 점점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전개되자 강단사학계가 정면으로 반격에 나섰다.
역사문제연구소가 펴내는 계간지 '역사비평' 2016년 봄호에는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주제 아래 젊은 사학자들이 글 3편이 실렸다.
이들 글은 '유사 역사학'이나 '재야 역사학'으로 분류돼 온 주장을 '사이비'로 규정하며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기경량 강원대 강사는 "19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방법론이 미숙한 아마추어들의 '과잉된 민족주의' 정도로 이해해줄 수 있는 측면이 있었지만, 이들은 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대중활동을 시작하며 학계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과 비난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안정준(연세대 박사 수료) 씨는 북한에서 발굴된 낙랑군 시기의 유물을 조목조목 들며 재야학계의 요서설을 비판했다.
그는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서의 꾸준한 고고 자료 발굴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약 2천600여기의 낙랑고분들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원로부터 신진 학자까지 두루 포함된 한국고대사학회는 오는 6월 1일까지 총선일(4월 13일)을 제외한 매주 수요일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사 시민강좌'를 열어 주류사학계의 사관 설파에 나선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3월 16일),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3월 30일), '유사 역사학과 '환단고기''(4월 6일) ,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4월 27일) 등 고대사의 뜨거운 쟁점이 강의 주제로 선정됐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들 강의는 이미 참여 가능 인원인 300명이 모두 찼을 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고대사학회는 "문헌 자료와 유물 정보가 매우 부족한 한국고대사의 경우는 자못 우려할 만한 시각들이 더욱 확산되는 듯하다"며 "연구자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탓이 크겠지만 한국고대사의 대중화라는 학회 본연의 숙제를 새삼 각성하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고 시민강좌를 연 이유를 설명했다.
잘보고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