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복기대 교수도 나름 근거를 가지고 학설을 제시한것이죠.
복기대 교수가 절대적인것은 아니죠.
다만 정상적인 역사학계면 이렇게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면 그 연구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하고 후속 연구가 나와야 정상이고 한국역사학계의 발전이 있는것인데 그냥 너는 떠들어라, 너는 사이비다 우리는 우리길 간다 이러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죠.
광개토태왕릉비에 이런 문구가 있죠.
백잔위서 여왜화통 왕순하평양(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더불어 통하니 왕이 평양을 순시했다.)
여기서 하평양을 남평양으로 해석하느냐 아님 왕이 남쪽으로(아래로) 내려가 평양을 순시했다고 하느냐 의 문제인데 통설은 후자입니다. 그러나 통설대로 해석하는것은 제가 한문은 잘 모르지만 어색함이 있기는 해요. 저는 이정도만 아는데 잘 아시는 분 있으면 추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 개인적으로 복 교수가 요하를 명대까지 압록강이라고 불렀다는 대목에서 조선의 영토가 요하까지 그린 지도가 이해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 4군의 위치에 대해선... 이 것이 워낙 복잡하지 않나요?
통사적인 입장에서 한 4군을 정리하면...
1. 고조선( 누구는 기자조선이라 하고 누구는 단군조선이라 하는데 그냥 고조선이라 하겠습니다)이 위만의 쿠테타로 기준이 도망가서 한韓을 건국 합니다.
2.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한 4군을 설치 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가지고 보자면... 고조선왕의 다른 별칭이 한후韓侯로 (고)조선과 한은 같은 의미란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기준이 위만에 쫒기어 새로이 한韓국을 건립 한 것이 아니라 단순 동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고 당시에는 두개의 조선 또는 두개의 한韓이 존재 했다는 것 입니다.
이 것을 후대의 사람들이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위만조선이니 기자조선(기준이 세운 조선이니 그럴 것이라 보고 후일 은나라 기자설은 조금 생각 해 봐야 할 것이란 봅니다.) 이니 하고 부르는 것 이라 보고요. 그리고 기자조선은 단군계로 단군조선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배층은 다르지만 피 지배층은 같은 존재죠.
북한 역시 기준의 조선을 단군조선이라 보고 이 기준의 조선은 지금의 평양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보아서 평양에 단군릉을 세운것 같고요. 낙랑이나 기타 한 4군은 현지 지명을 따서 설립된 군현으로 토착지명이라 역시 기준의 조선에도 똑 같은 지명이 존재 했을 것이란 것은 유추가 된다고 봅니다.
지금도 영국이 식민지 했던 국가에 자신의 지명을 그대로 이식한 경우가 많아서 영국 / 캐나다 / 미국 / 호주와 뉴질랜드에는 같은 지명이 존재 합니다. 원래 인간은 새로운 곳을 개척하면서 자신이 살던 고향의 지명을 그대로 이식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거고요.
그래서 당연히 평양역시 최소 두개의 평양이 존재 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평양이 도성이란 의미 이고 보통 한국의 왕조들은 5경京체제를 유지 했기에 최대 5곳의 평양이 있었을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미국의 5 eyes도 역시 같은 의미란 걸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저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첨가 된 것이라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긴 합니다 ㅋㅋㅋ
뭐 저 역시 근본이 되는 팩트를 덧붙여 쓰기에는 댓글의 양이 한정적이라
개인적인 의견으로만 말하자면
1. BC20세기경에 단군숙신이 건국됩니다.
2. 이 숙신은 옆의 상나라처럼 봉건제국가로
여러국가들이 하나의 단군숙신을 이루는 봉건제국가였습니다.
3.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숙신이 조선으로 바뀝니다.
(단순히 명칭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주된 정치세력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4. 단군조선을 이루는 여러 소국 들 중
중국의 '기자'라는 사람이 조선으로 망명하여 소국 하나를 다스렸는데
이 소국의 이름이 '기자조선'입니다.
5. 이후 이 '기자조선'이라는 소국은 중국에서 온 위만에 의해 위만조선으로 바뀌는데
이 위만조선이 위치하였던 곳이 바로 지금의 요서지역입니다.
6.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합니다. 위만조선의 유민들은 원래 살던 곳을 피해 동쪽 남쪽으로 대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동쪽 남쪽의 토착민들은 위만조선유민들을 피하여 이동해
도미노처럼 민족대이동이 일어납니다. 즉 단군조선은 붕괴하고 맙니다.
대표적인 예가
북부여 - 동부여
예 - 동예
옥저 - 동옥저
너님하고 마이키인지 뭔지 하고 진실 뭐시기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개헛소리 하시며 사실왜곡 하시는데 부탁인데 제 글에는 댓글 삼가 좀 부탁드립니다.
고조선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데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그리고 현대까지 고조선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하는군요 너님이 외국인이면 모르겠지만 한국인이라면 몸의 디엔에이에도 고조선이 새겨져 있어요.
그러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제발 헛소리 마시고 제 글에는 댓글 삼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이나 우리 역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기자도 우리민족이 아니고 위만도 마찬가지죠. 이병도는 위만이 조선인이라고 하였으나 위만이 조선인이라는 사료는 한글자도 없어요.
고조선의 변방의 역사라고 생각하구요 조선의 본류가 어찌 되었는지는 지금 연구된바가 없죠. 단지 부여나 여러 제국가로 분열되었다는 것밖에요.
한무제가 굳이 위만조선을 친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죠 전쟁은 심심해서 하는것이 아닙니다. 명분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 않나 싶어요, 위만조선은 중국과 동방제국가의 사이에서 교역등을 통한 막대한 부를 독점하지 않았나 싶어요. 위만조선이 한과의 전쟁에서 거의 10년을 버틴 이유도 이런 경제력이 원천이 아닌가 하구요, 그러나 결국 한무제에게 위만조선이 무너지고 한군현이 설치되었죠 고조선도 한과 위만조선과의 오랜 전쟁때문에 반드시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뭔가 경제적인 타격등이 있었지 않나 싶어요 그러면서 제국이 무너지고 독립제국가들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아예 독립된 개별국가의 연합이었다고 생각해보시면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실 겁니다.
기본적으로 전 고조선의 체제가 독립국가 연합체 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인구수나 연락체계,
영토면적등을 생각하면 중앙집중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주나라식의 봉건제와 유사했다고 보는게 더 합당할 겁니다. 특히나 주의 봉건제와 다른 점은 고조선의 강역 자체가 광할한 초원이니 더욱 독립적인 국가형태를 띄었을 것이고, 그런 모습이 후대에 남아있는게 북방유목민족의 형태라고 봅니다. 규모의 크기가 다른거죠.
또한, 전 고조선은 수도란 개념이 없었다고 봅니다. 즉, 이동하는 형태의 도시인거죠. 한의 위만조선 멸망 후에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게 된 것도 그런 형태라고 봅니다. 일반 백성은 나라가 망해도 정주하던 곳에 사는게 정착형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동형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별 거부감이 없죠.
어쩃거나..이건 제 개인의 생각입니다. 어느 학자분의 글타래를 보고 쓴 것도 아닌 온전히 저 개인의 생각에 불과한 점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