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섬라 표문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서 올렸는데 뒤지다가 또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서 씁니다.
아시다 싶이 중원 국가들은 고구려때도 그랬고 외국 국가 사신들을 중요도나 국력에 따라 서열을 매기고 반열하는 전통이 있는데 정조 시절 이에 관한 기록이 눈에 많이 보였습니다.
정조실록 13권, 정조 6년 2월 24일 신묘 2번째기사
동지 정사(冬至正使) 황인점(黃仁點), 부사(副使) 홍수보(洪秀輔)가 연경(燕京)에 있으면서 치계(馳啓)하기를,
"신 등이 12월 27일 북경(北京)에 도착하였습니다. 28일 황제(皇帝)가 친히 태묘(太廟)에서 제사를 지냈으므로 신 등이 오문(午門) 밖에 나아가 머물러 기다리고 있었는데, 황제가 회가(回駕)할 적에 신 등에게 하문하기를, ‘국왕은 평안한가?’ 하였습니다. 정월 초5일에 태화전(太和殿) 뜰로 들어가서 정조(正朝)의 조참(朝參)에 참여하였습니다. 황제가 예부 상서 덕보(德保)에게 외국(外國)의 반차(班次)에 대해 하문하니,
조선(朝鮮)이 첫머리이고 유구(琉球)·남장(南掌)·섬라(暹羅) 이 세 나라가 그다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거라면 외국의 서열을 매기는데 조선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이 유구국 (오키나와), 남장 (라오스), 그리고 태국 세나라가 그 다음 서열이군요.
정조실록 29권, 정조 14년 2월 20일 신미 1번째기사
동지 정사(冬至正使) 이성원(李性源)과 부사(副使) 조종현(趙宗鉉)이 치계(馳啓)하였다.
"신들은 작년 12월 21일에 황제가 영소(瀛沼)에서 얼음타기 놀이를 벌였을 때 서화문(西華門) 밖에서 영접하였습니다. 황제가 가마를 멈추고 ‘국왕(國王)은 평안한가?’고 묻기에, 신들이 ‘평안합니다.’고 대답하니, 황제가 ‘매우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30일에는 보화전(保和殿)에서 연종연(年終宴)을 거행하였는데 신들은 들어가서 기둥 밖에서 참석하였고,
유구(琉球)와 섬라(暹羅)의 사신들은 신들의 아랫자리에 앉았습니다.
정조실록 37권, 정조 17년 2월 22일 을유 2번째기사
신들 일행이 지난해 12월 22일에 북경에 도착하였습니다. 23일에 예부(禮部)의 통지 안에 ‘전지를 받자오니 「짐이 서화문(西華門)에 나가 외국의 사신들을 만나보고 영대(瀛臺)의 난실(蘭室)에서 아침을 먹고 일을 살핀 다음 잠깐 얼음타는 것을 보겠노라.」 하였다.’ 하고, 이어 서화문으로 나와 신들로 하여금 〈황제의 행차를〉 공경히 맞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24일 오경(五更)에 신들이 서화문 밖에서 행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예부 상서 상청(常靑)·기균(紀昀)과 시랑 철보(鐵保)가 함께 와서 반열을 주관하였습니다.
안남(安南)·섬라(暹羅)·후장(後藏) 세 나라의 사신들도 반열에 참석하였는데 모두 신들의 아래에 있었습니다.
후장은 새로 귀순한 나라로서 모두 나마승(喇嘛僧)이었는데, 붉은 비단으로 머리부터 허리까지 휘감고 있어 모양이 매우 추악하였습니다.
** 안남은 베트남이고 섬라는 태국, 후장은 처음 보는 국가인데 설명을 보니 네팔이나 부탄인것 같기도...하여간 티벳 부근 국가인듯 하네요
제가 바로 이해한것이랴면, 고구려가 국력이 잘나갈때 북위에서 사신 서열중 탑을 달렸듯 조선도 청나라 조정에게서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것 같군요.
당시 동남아 국가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였음을 고려하면 청나라 조정이 바보도 아니고 단순히 지정학적으로 가깝다고, 혹은 조공 잘 바친다고 저런 대우를 했을까 싶고 조선이 나름 동아시아 세계서 인정받았던 국가임을 보이는걸까요.
역사 고수분들 답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