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만주에 걸쳐 주로 분포해 있는 종족으로, 퉁구스라는 단어는 사하 공화국에 사는 튀르크 철륵인들의 "아홉 부족"이라는 뜻의 "도쿠즈"[1]에서 유래했다.[2] 뭉뚱그려서 퉁구스계 제민족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튀르크계 제민족과 마찬가지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언어적 연관성을 제외하고는 차이가 크다.
한국인은 인종적으로 봤을때 퉁구스계 몽골리안으로 분류된다.
퉁구스라는 단어는 토쿠즈 오구즈 에서 유래했고
토쿠즈 오구즈는 돌궐족 말로 9개 부족 연합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3, 9 이숫자는 동북아에 있던 문화집단에서 자주 사용했던 숫자이고
한국 고대사 역시 3, 9 를 즐겨 사용했다.
삼한, 삼조선, 동이9족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3주스, 치우의 9부족 연합, 마한 72국, 치우의 72형제(부족), 징기스칸이 몽골통일후 올렸다는 72제, 고려에 파견한 다루가치 72인등
이런 특정 숫자의 상징성에 대한 집착은 역사에 의한 전통을 기리는것일것이다.
예전 역사는 구전되어 내려온것을 문자 기록으로 남겨서 전해졌다.
이것으로 볼때 한민족 집단이 탄생한 곳은 중원동북부 요동과 만주지역이다.
환웅이 환인이 이끌던 원래 세력에서 독립해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지도자(천인)들을 이끌고 만주지역 토착민(곰,호랑이)들을 포섭해 세운 나라가 고조선이고 환웅의 자손들이 단군이 되었다.
이 환웅의 이주는 당시 세계 기후변화로 인한 주변환경의 변화로 생각된다.
먼 옛날 중원 남부는 덥고 습한 지역이라 개발이 안된지역이었고,
동시기 북부지역(몽골)은 고온다습한 지역이었다고 비교적 최근 밝혀졌다.
고대에 북쪽의 기후가 추워지고 식량사정이 나빠지자 환웅이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던 것일것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에서 알수있듯이 정복보다 연합으로 세를 확장시켰고
이 연합의 방식은 단군신화와 백제의 세력확장을 보면 추측할수 있듯이
혼인동맹을 통한 평화적인 확장이었을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연합체는 치우와 헌원의 전쟁설화에서 알수있듯이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명분이 없으면 힘이 모이지 않기도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원에서는 이들을 동이구족, 구려, 구한이라고 확실히 문화적, 정치적 공동체로 보고있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지배, 피지배 역사관으로는 이런 고대사를 제대로 볼수없다.
직계 환웅과 단군의 역사는 우리 역사지만,
환인의 역사는 우리민족만의 역사가 아니다.
환단고기 같은 고서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해석하는 자의 시야의 차이가 문제가되고
그 해석을 받아들이는 자의 개념이 문제가 되는것이다.
단군과 고조선 그 파생되는 민족, 나라의 역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이지만,
그 이전 환국의 역사는 한민족 이전의 역사다.
즉, 동북아시아의 역사이고 한민족 이전의 인류 선조들의 역사이다.
일제의 잘못된 역사개념과 조선시대 탈오랑캐화에 빠져서
직접적인 친연이 있는 집단을 이민족으로 보고있고,
한민족의 개념을 스스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 빈틈을 파고들어 중공은 동북공정을 내세워서
한국인 스스로 축소한 그 좁아터진 한민족 역사관에서 고조선, 고구려와 백제마저 중공의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는 지경에 처했다.
민족의 발생지를 중공에 내어주고도 수복할 의지가 없는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그 좁아터진 역사관마저 빼앗기고 있으면서도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역사계와 식물화된 역사인식이 안타깝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한민족의 역사가 없으면 한민족은 존재할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