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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9 23:20
[기타] 고구려 5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714  

5부족은 부여의 경우와 같이 고구려 형성에 주축이 된 씨족집단이었다. 5부족의 명칭은 소노부()·계루부()·절노부()·관노부()·순노부()이다.

처음에는 5부족 중 가장 우세한 소노부에서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6대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의 고씨()가 왕위를 이었으며, 절노부는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왕비족으로 고정화되었다. 전왕족()인 소노부, 왕족인 계루부·절노부의 대가()에게는 고추가()라는 특별 칭호를 주었는데, 이들의 세력도 막강하였다.

고국천왕()은 왕위의 형제상속제를 부자()상속제로 바꾸었으며, 5부족제도를 5부의 행정구역으로 개편하였다. 지방 행정구역 역시 5부로 나누어 각 부의 밑에는 여러 성()이 딸려 있었다. 각 부의 장을 욕살()이라고 하였으며, 성의 장을 처려근지() 또는 도사(使)라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5부 [高句麗五部] (두산백과)


정의

고구려시대 5개의 정치세력집단체.

개설

고구려 초기 연맹체 형성에 중심이 된 다섯 집단으로서, 국가 체제가 성립된 뒤 독자성을 상실하고 수도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연맹체시대에 고구려 5부()의 명칭은, 중국 역사서 등에는 소노부(: 고구려조에는 로 나옴)·절노부()·순노부()·관노부()·계루부()로 표기되어 있고,『삼국사기()』에는 비류부()·제나부()·환나부()·관나부()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

고구려 5부 명칭 속의 ‘노()’ 또는 ‘나()’는 고구려 고유어의 같은 음을 달리 표기한 것으로 내〔〕, 냇가의 평야, 또는 그러한 어떤 지역의 집단을 의미한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의 초기 기록에는 위의 다섯 집단 외에도 ‘조나()’·‘주나()’ 등 ‘-나()’로 지칭되는 집단들이 나타난다.

즉, 고구려 초기에는 이들 다섯 집단 이외에 ‘-나’로 지칭되는 여러 집단이 존재했는데, 이들 집단 간에 점차적으로 통합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삼국지()』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에는 “본래 다섯 족이 있었다()”라고 해, 고구려 사회가 5부로 구성된 것은 초기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다섯 집단에 의한 소연맹체는 가장 강한 세력 기반을 가진 집단이 전체 연맹체의 영도세력이 되었는데, 초기에는 소노부가 연맹 왕권을 차지했다가 이후 새롭게 성장한 계루부가 연맹체의 장이 되었다.『삼국지』기록에 연나부()에서 계루부로의 왕권 교체 기사가 이것이다.

그러나『삼국사기』에는 ‘-나’들의 통합이 태조왕() 대까지도 진행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태조왕 20년(서기 72)과 22년의 관나부에 의한 주나의 통합이 바로 그 예이다.

고구려의 여러 ‘-나’들의 통합이 일단락되어 5개의 집단으로 정리된 것은 태조왕 대 무렵이다. 고구려 사회의 이러한 정치적 통합은 보다 강력한 지배 세력을 대두시켜, 계루부 왕족을 중심으로 5개의 집단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었다.

그 조직이 5부 체제()에 의한 고구려 연맹체이다. 다섯 집단은 연맹체의 구성단위로서 ‘부()’로 편제되었고, 각 부는 일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자치권을 가졌다. 그러나 무역·외교·전쟁 등 연맹체 전체와 관련된 문제는 계루부 출신이 왕으로 대표되는 연맹체의 통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부는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공간에 위치했으며, ‘부내부()’로 표현되는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때의 5부 명칭은 다섯 집단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중심 세력이 된 ‘-나’의 명칭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초기의 부체제에 의한 연맹체 단계의 사회 기반이 ‘-나’ 단계의 사회기반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한편 5부에는 각기 부장이 있어 휘하의 대소 족장을 통솔하였다. 이러한 통솔 관계가 조직화되어 ‘부’ 나름의 관원 조직이 존재하기도 하였다.『삼국지』위서 동이전 고구려조에서는 왕과 마찬가지로 여러 족장들도 사자(使)·조의()·선인()을 두었다 했고,『삼국사기』에서도 각 부 나름대로 그 같은 관명()들과 패자()·우태() 등이 보인다.

『삼국지』에 의하면 산상왕() 즉위 당시 발기()와 소노가()가 각각 3만여 인을 거느리고 공손강과 제휴하여 산상왕에 대항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당시 부의 인구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데 소노부 외의 나머지 4부도 역시 비슷한 인구 규모였을 것이다. 이것은 같은 기록에 전하는 고구려 주민 수 3만호 즉, 15만여 인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만, 5부 내에서도 차이가 있었음을 감안할 때 계루부나 소노부의 규모는 평균 규모보다는 컸을 것이다.

변천

연맹체 조직이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자치권을 가지는 부의 존재도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왕권으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은 각 부족의 내부 문제까지 간섭하게 되었고, 대소의 족장들도 독자적인 집단의 장으로서 존재하던 상태에서 국가 조직 안에서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되는 대소의 귀족으로 재편성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3세기 말경에는 부의 자치권이 소멸되고, 부는 왕경()의 행정 구역화되어 초기의 고유 명칭에서 동부()·서부(西)·남부()·북부()·중부() 등 방위에 따른 명칭으로 바뀌었다. 방위부로 개칭한 뒤의 귀족들은 부의 귀족과는 달리 중앙귀족화 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오부 [高句麗五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구려 건국 초기 연맹국가 형성에 참여한 5개의 부족. BC 1세기경에 압록강의 지류 동가강 유역에는 소노부·계루부·관노부·절노부·순노부의 5부족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결합하여 고구려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소노부가 가장 우세하여 왕의 지위를 계승했으나, 점차 계루부가 강성하여 왕족을 이루었다.

계루는 홀본 또는 졸본의 이칭으로 6대 태조왕 때부터 강성하여 5부족의 영도부족으로서 세습적으로 왕의 지위를 계승하는 부족이 되었다. 소노부는 계루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왕족의 지위에서 밀려났으나 다른 부족보다는 우위에 있었으며, 절노부도 왕족인 계루부와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왕비족으로 행세했다. 5부는 국가를 형성한 다음에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고대왕국으로서 중앙집권화가 강화되면서 고유의 명칭을 상실하고 각각 방위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계루부는 내부 또는 황부로 지칭되었고, 소노부는 서부 또는 우부, 절노부는 북부 또는 후부, 순노부는 동부 또는 좌부, 관노부는 남부 또는 전부로 개칭되어 행정구역에 편입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5부족 [五部族]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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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키 17-12-29 23:59
   
고구려 5부에서 奴는 那로도 쓰이고 평지(지역)나 부족을 나타내는 뜻인데, 스스로 비하자를 쓸리가 없죠
그래서 흉노의 奴도 화하족이 타민족에 비하 자인 奴를 붙인거라고 흔히 말하는데
사실은 그냥 하나의 집단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있더군요.
한마디로 멸칭어가 아닌 동이 집단의 한 부 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죠.
흉(훈)노부 or 흉(훈)나부로 속해 있다가 갈라졌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르롱 17-12-30 09:27
   
갠적으로 모든걸 떠나서 고구려 만쉐이 ~
옛날 17-12-31 19:37
   
고구려(고려) 만세이....
6시내고환 18-01-02 19:10
   
6대 태조왕(太祖王) 때부터 계루부의 고씨(高氏)가 왕위를 이었으며...항상 궁금한것이 그 전에 왕들은 계루부도 아니었고 고씨도 아니었을까요?
     
나유키 18-01-02 21:58
   
해나 고나 의미상 고놈이 고놈이지만 주몽이 해모수의 자식이니 해씨라 보는게 맞겠죠.
통상 해씨 고려?가 건국하고 후에 고씨가 왕위를 이어서 정통성을 위해 통일 했을테죠.
부여성씨도 해씨였고 거기에서 갈라져 나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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