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의 이름은 함보이고 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이미 60여 세였다.
함보의 형 아고내는 불교를 좋아하여 고려에 머물며 고려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말하길
<후세의 자손이 반드시 서로 모일 것이니, 나는 가지 않겠다> 그러자 함보는 동생 보활리와 함께 고려를 떠났다. 시조는 완안부 복간수의 물가에 거주하였고, 보활리는 야라에 거주하였다.
금사(金使) 호십문(胡十門) 열전中
호십문이 고영창을 따르길 원치 않아 그 일족을 불러 모의하여 말하길
<우리의 먼 조상 3형제는 모두 고려에서 태어났다. 지금 대성황제(아골타)의 조상은 여진으로 들어갔고, 우리의 조상은 고려에 남았다가 뒤에 고려에서부터 요나라에 귀부하였다. 우리와 더불어 황제는 모두 삼조(三祖/아고내, 함보, 보활리)의 후예다. 황제가 천명을 받아 대위에 즉위하여 요를 정벌하고 패망하게 하였는데, 내가 어찌 고영창의 신하가 될 수 있겠는가 >
시조(함보)의 형 아고내는 고려에 남았는데 호십문이 이와 같이 스스로 말한 것은 대개 호십문이 아고내의 후손임을 스스로 일컬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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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보가 고려출신이라는건 당시 완안부 여진족들에게서 처음으로 나온 언급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진족들은 문자를 이용해서 기록을할줄 모르기때문에 훗날 금(金)을 건국하고나서야 자기들의 첫 기록을 남겼지요.
그리고 금시조 함보의 후손 금태조아골타는 시조함보로부터 4대정도 걸쳐서 나온 인물이구요.
문자와예악등 기초적인 문화산업 조차 못하는 여진족들인데 어떻게 몇대를 걸쳐서도 자기들의 조상이 "고려" 출신이라는걸 기억할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분명히 몇대가 거쳤는데 불구하고 자기들이 남긴 기록에도 " 우리의 옛 조상은 고려출신인데.. " 라는 구절이 꽤 많지요. 뭐랄까.. 자기들의 고려혈통을 꽤 강조하는듯한 느낌이 많이듭니다.
[출처] 금금(金) 은 어째서 자기들의 출자가 고려라는것을 강?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