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구려
247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평양성 천도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誤讀史記朝鮮傳) 동천왕 평양 왕검성
302 三年 秋九月 王率兵三萬 侵玄菟郡 虜獲八千人 移之平壤 미천왕
병사 3만을 이끌고 현도군을 침략하여 8천인을 노획하여 평양으로 옮겼다
311 十二年 秋八月 遣將襲取 遼東 西安平
313 十四年 冬十月 侵樂浪郡 虜獲男女二千餘口 낙랑군을 침략하여 남여 2천여명을 잡아왔다.
314 十五年 秋九月 南侵 帶方郡
315 十六年 春二月 攻破 玄菟城 殺獲甚衆
학계 통설은 313년 미천왕의 낙랑군 공격으로 낙랑군 평양을 멸망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환도성을 난도질 당한후
247년 평양성을 축성 하고 종묘사직을 옮겨서 도성을 (낙랑군)평양으로 옮긴 것은 뭘까 ?
대대적으로 종묘사직 廟社 을 옮기는 도성 천도는 이때가 처음이다.
그리고
미천왕이 낙랑군을 축출 하기에 앞서서
302년 현도군 침략후 노획한 8천인을 (낙랑군)평양으로 옮기는 동안 같이 살던 낙랑군은 대체 뭘 한걸까 ?
학계 통설을 따르자면...
낙랑군과 고구려는 평양에서 함께 살았다고 봐도 되는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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