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고)조선의 기록은 너무 적죠! (고)조선뿐 아니라 그 시절의 전세계 고대사 대부분이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대사는 근거가 있건 없건 기록이 나오면 인정하고 시작합니다.
근데 (고)조선은 기록은 적지만 유물은 꽤 많이 나옵니다.
제 판단에 (고)조선만큼 오래된 역사중 이렇게 유물이 많은 역사는 이집트를 제외하면 없다고 생각됩니다.
연대별, 지역별, 일관성 있는 유물이 출토되기에 기록이 없다고 부정해버리면 유물 증거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죠.
삼국유사에 써져있는 단군신화는 아이러니하게 우리나라의 책이 아닌 중국의 위서를 인용해서 쓴것인데..
북한학자인 김병룡은 위서의 저자가 자기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건국과 관련한 사실을 제멋대로 꾸며낼 이유가 없고 꾸며낼 수도 없었을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역사책이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입수한 자료에 기초하여 쓴 것이 명백하다고 했습니다..
위서는 3세기경에 편찬된 책으로 알려져있는데.. 3세기경에는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입니다. 고구려 수도까지 점령해서 대규모로 약탈을 했는데.. 아마 이 약탈물 중에서 고구려의 역사책이였던 유기 또한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중국의 위서의 기록이 고구려의 유기에 나오는 기록을 인용했을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기원전 23세기경에 고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은 고구려초 고구려인의 인식이 되므로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아지겠죠.. 그리고 이런 기록들은 고고학적 유물과도 일치하니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봉시 지주산 청동기 유적은 방사성탄소측정 결과 서기전 25세기경으로 나왔고.. 특히 한반도에서도 양평군 양수리의 청동기시대 유물들은 서기전 2400년경으로 나옵니다.. 이를 토대로 청동기 시대가 기원전 25세기경에 시작되었다고 볼 때 그후 약 200년 후 고조선이 세워졌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보나 문헌적으로 보나 합리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