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은?
- 당시, 권문세족들은, 원조정에 줄을 대고 권세를 얻기위해, 얼굴이 반반한 딸들을 자진해 상납했음- 기황후 자체가 평민이 아니라, 고려 귀족집 딸임. 애초에 원황궁에 보내지는 여자들은 가문좋고, 얼굴 좋고, 교양도 있고 엄격한 심사끝에 뽑혀 가는 애들이고.. 아무나 못감.
더구나, 가자마자 고용보에 의해 발탁되어, 황제의 차시중을 듬- 이건, 기황후 개인이 출중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녀의 집안 인맥도 상당했다는 것을 추측할수 있음(오빠 기철도 음서직으로 관직생활-)
그뒤, 아들낳고, 비교적 탄탄대로를 달림.
물론, 중간에 타나실리가 질투해서 맞고, 바얀이 반대해서 정실황후가 못된 고난은 겪었는데,
타나실리는 입궁 1년만에 형제들이 모반죄로 걸려 폐비되는 바람에, 괴롭힘 당한 기간이 오래되거나 하진 않았음. 바얀이 반대해서 대신 2황후가 됨
(당시, 원과 고려 상류층들은 통혼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원황궁의 고려인 비빈들은 쿠빌라이 칸때부터 기록에 나타나는데,
특히 기황후 이외에도, 이미 앞서
원 인종 아유르바르와다 의 2, 3황후가 고려인들이였던 전례가 있었음)
김 달마실리 황후와 왕 백안홀도 황후.. 둘다 고려 왕실의 종실 친척되는 여자들-
김 달마실리는 김심의 딸이라고 하는데, 어머니쪽 성이 왕씨라서 종실의 외손녀라 추측함.
특히, 왕 백안홀도는 충선왕의 의붓딸이고.
(어머니가 순비 허씨로 종실 평양공 왕현과 사별, 충선왕과 재혼함.)
고려비빈들 중 기황후가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아무래도
2황후를 넘어서 정실 1황후까지 되었고, [정치에 깊숙히 개입한데다가]
자기 소생이 태자가 되어 황태후까지 되본 여자이기 때문에 더 알려지게 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