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영수의 이 괴상한 논법의 본질을 물을 때가 되었다. 다른 게 아니다. ‘늑대 이기백’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윤내현의 연구는 무조건 못 본 척할 것, 말이 되든 말든 무조건 짧은 품평으로 난도질할 것.”
서영수의 문장들은 이 원칙을 좀더 사악하게 응용했다. 무시를 넘어 거짓말까지 동원한 것으로 이기백의 원칙을 따르다 못해 과잉 충성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기본 정신만은 확고하다. 이기백의 원죄는 서영수에게 완벽하게 전수되었다.
다음은 송호정이다. 송호정은 서영수 다음 세대로 주류 고대사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속한다. 이번에는 윤내현 외에 윤내현에 동의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송호정은 2002년에《단군, 만들어진 신화》를 썼다. 주류 고대사학계의 고조선사 이론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안내서가 되겠다고 자처한 책으로, 고조선에 관해서는《한국사 시민강좌》만큼이나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한 책이다. 이 책 261쪽~262쪽에서 송호정은 윤내현에 동의하는 익명의 인물을 모욕적으로 비난한다.
˝다음으로 비파형동검 출토지만을 가지고 고조선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아무래도 부족했는지 윤내현의 입장에 동조하는 또 한 사람이 출현하여 청동단투도 고조선 옷과 갑옷의 특징적인 장신구라 하면서, 그것이 나오는 요령성·길림성·흑룡강성·한반도는 고조선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이 견해는 윤내현의 주장대로 영역을 미리 설정해놓고 그곳에서 나오는 유물 가운데 청동단추를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역사에서 고조선 외에는 다른 역사를 보지 않는 또 하나의 착각에서 비롯한 것일 뿐이다. 청동단추는 청동기시대 지배자들 무덤에서 나오는 일반적 유물이지 고조선만의 특징이 아니다.˝
이게 전부다. 이에 관련된 다른 얘기는 더 이상 없다. 이 인용의 내용에 대한 검토는 잠시 뒤로 미루자. 핵심은 “윤내현에 동의하는 또 한 사람이 출현하여 어쨌든 멍청한 소리를 했다”는 품평 한마디다. 이 ‘또 한 사람’이란 누굴 말하는 걸까? 과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일까? 송호정의 이 품평은 2000년 10월 7일에 방영된 KBS-TV《역사스페셜》〈비밀의 왕국 고조선〉편에 대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확인하면 예의 익명의(멍청한)‘또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고대 복식 전문연구자인 박선희다. 박선희는 현재 상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인데, 당시에도 동 대학 역사학과 교수였다. 2006년 무렵엔 인문사회과학대학장의 직책을 맡기도 하였다. 박선희는 2003년엔《한국 고대복식―그 원형과 정체》를 출간했고 윤내현과 공저로《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를 펴내기도 했는데, 한국의 고대 복식 관련 연구에 있어서 최고 권위자다.
느낌이 온다. 둘 중 하나다. 송호정이 저런 식의 품평으로 처리해도 될 만큼 박선희가 엉터리거나 아니면 송호정이 근원부터 되먹지 못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전자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박선희의 해당 논문은《고조선의 강역을 밝힌다》에 수록된〈복식으로 본 고조선 강역〉인데, 읽어보면 설복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이 논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정색하고 반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송호정은 위 인용에서 “청동단추는 청동기시대 지배자들 무덤에서 나오는 일반적 유물이지 고조선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한마디만 했다. 비난의 근거는 오로지 이 한마디뿐이고 나머지는 욕설의 수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박선희는 청동단추가 청동기시대 일반의 유물이 아니고 고조선만의 특정 유물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TV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박선희의 주장은 완전히 다르다. 위《역사스페셜》이 방영되기 6개월 전인 2000년 4월 17일, 박선희는 ‘단군학회’ 1차 토론에서〈열국시대의 갑옷―고조선 갑옷의 발전에 관한 시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여러 내용 중 청동단추에 관한 것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청동단추는 청동기시대 지배자들의 무덤에서 나오는 일반적 유물이다. 그런데 이 단추들이 지역에 따라 형태가 뚜렷이 다르다. 특히 비파형동검 출토지역 등 고조선 지역이라 추정된 지역 내부에서는 이른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며 중국지역은 출토시기가 훨씬 늦고 양도 적다. 중국의 다른 청동기와 달리 청동단추만은 고조선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주 황당해졌다. 보다시피 박선희가 주장하는 첫 부분은 송호정의 주장과 똑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청동단추가 청동기시대의 일반적인 유물이란 사실은, 그 분야 학자들뿐만 아니라 웬만큼 역사에 소양이 있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선희는 서로 다른 지역의 청동단추를 비교했다. 그렇지 않다면 비교라는 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 박선희는 왜 송호정에게 욕을 먹어야 하나? 송호정은 박선희와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왜 박선희를 욕하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송호정이 정말로 박선희의 학설을 비판하고 싶다면, 그 주장의 핵심인 뒷부분을 반박해야 맞다. 그러나 반박은커녕 송호정은 박선희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 대신 관련 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초보적 상식을 대단한 지식인 양 지껄이고 있다. 조금만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송호정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관절 어찌된 일인가? 이 따위를 학문적 반증이나 비판이라고 하면 유치원 아이들도 웃을 일 아닌가? 송호정은 제 정신인가?
첫째 가능성은 송호정이 문외한인 독자대중을 속이고 박선희에게 무조건 욕설을 퍼붓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이기백의 늑대 짓과 서영수의 악성댓글(?)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송호정의 깡패를 방불케 하는 좌충우돌은 유명하다. 능히 이런 짓을 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 경우엔 두 번째 가능성도 있다. 아마 이게 더 맞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송호정은 박선희의 논문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 당시 박선희가 그런 연구를 하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며, 실은 박선희가 누군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름도 못 대고 ‘윤내현의 이론에 동조하는 또 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시기적인 상황도 잘 들어맞는다. 이 글을 쓸 당시 송호정은 이제 겨우 박사를 졸업한 풋내기였다. 그동안은 연구실에나 박혀 있어서 자기네 주류 고대사학계의 중심 학자들 몇이나 알았지 전체 고대사학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론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박선희 같은 사람을 더욱 몰랐을 것이다. 결국 TV 방송에 나오는 박선희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조차 전혀 몰랐으며, 그래도 욕은 해야 되니까 이처럼 헛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생각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박선희는 당시 겨우 박사를 마친 애송이 송호정에 견주면 한참 선배인 중견 학자다. 선배나 경력이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무슨 죄나 지었으면 모를까 이따위 비열한 품평으로, 누군지도 모르면서, 근거 제시 하나 없이, 그것도 선배 학자에게 이런 짓을 일삼는 건 도무지 용납이 안 된다. 이것은 주류 고대사학계와 다른 이론을 말하는 자는 무조건 난도질한다는 ‘늑대 이기백’의 지침과 논법으로만 가능하다. 상대가 누구든 자기편이 아니면 모두 엉터리고 멍청이라고 깔아뭉개며 이따위 양아치 짓을 일삼겠다는 말이다.
내친 김에 비슷한 얘기만 더 하자. 박선희에 대한 이 욕설에 앞서 송호정은 저명한 원로학자 신용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역시 욕설이다.
˝어떻든 그 당시 신용하(현재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의 사실무근의 주장이 곧바로 5일 뒤 EBS-TV《난상토론》〈단군 신화, 신화인가 사실인가〉에서 학계의 주장을 대표하는 것처럼 방청객에게 소개되기도 했다.˝(251쪽)
이 역시 전부다. 신용하에 대해서 관련된 다른 얘기가 더 이상 없다. 신용하의 사실무근의 주장이란 게 어떤 내용인지도 나와 있지 않다. 송호정의 이 책을 읽던 당시의 나, 즉 고조선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대중의 입장에서는 죽을 노릇이다. 대중을 위해 썼다는 이 책 속에서 “신용하가 사실무근의 주장을 했다”고 욕을 하고 있는 건데 정작 그 사실무근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신용하는 백범 김구 지사 기념사업협회 부회장,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장,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 독도학회장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사회학을 전공한 저명한 원로학자로서 특히 민족사회학 연구로 유명하다. 또 나와 같은 세대의 대중에게는 그 명성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학자다. 그는 내 청년기의 대학생들에게 널리 존경받았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신용하가 무슨 말을 했기에 송호정 같은 애송이에게 저런 욕을 먹고 있는 걸까? 물론 신용하 역시 나를 포함한 일반대중이 모르는 중대한 잘못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근거를 대야 할 게 아닌가? 신용하 같은 원로 학자를 근거 하나 대지 않고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게 말이 되나?
☞ 출처:김상태 저술『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고조선 연구와 상식의 몰락 그리고 역사의 상실」책보세 편찬(2013년 6월 3일 발행)제1장 ‘고조선 연구 그리고 상식의 몰락’